마림바, 천재의 감성을 울리다

실로폰의 일종인 마림바는 타악기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다. 웅장함을 자랑하는 마림바를 처음 본 순간이었을까, 연주할 때 건반을 때리는 스틱인 말렛을 쥐는 순간이었을까? 마림바도, 이두암(16) 군도 운명처럼 제 짝을 만났다. 울림 파이프 진동과 함께 퍼지는 마림바의 깊고 부드러운 소리는 천재의 감성을 흔들었다. 피나는 노력을 동반한 두암 군의 성장은 유명 콩쿠르에서 입증되고 있다. 안주하지 않는 '마림바 영재'는 더 큰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밀양에서 배출한 마림바 영재

두암 군은 밀양에서 유명한 기타리스트이자 작곡, 편곡에 뛰어났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젓가락을 잡고 두드리는 것에 익숙했다. 5살 때쯤 가지고 놀았던 작은 장난감 드럼은 테이프로 몇 번을 붙여 사용할 정도였다. 밀양 예림초등학교 관악부에 가입해 음악적 소질을 드러내기 시작한 3학년 때는 음악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는 게 좋았다.

두암 군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접했던 터라 흥미로만 여겼던 음악이었지만, 5학년 때 관악부 지휘를 맡은 윤신현 교사를 만나면서 전공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윤 교사는 두암 군 첫인상을 '또래보다 작은 키와 검은 피부, 운동장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하던 개구쟁이 시골 초등학생'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5학년 임에도 스네어 드럼을 연주하는 관악부 합주의 핵심 단원이었고, 리듬과 선율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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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암 경북예술고등학교 학생. / 김희곤 기자

두암 군은 6학년이 되면서 음악인의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윤 교사 권유로 대구에서 타악기 레슨으로 유명한 김동준 선생님을 만났다. 테스트 삼아 간 대구 연습실에서 두암 군은 마림바라는 악기를 처음 봤다.

"클래식이 아닌 실용음악 드럼을 하고자 테스트 삼아 대구를 찾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이름도 모르는 큰 실로폰이 있어 당황했어요. 마림바는 클래식 전공으로 해야 한다는 상담을 받고 진로 고민으로 두세 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황했지만 마림바 모습과 음색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끌림으로 말렛을 잡고 건반을 두드렸는데 하면 할수록 재밌고 신비로웠어요."

진로를 결정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 대구행 기차를 타고 레슨과 연습을 하고 자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반복됐다. 중학교 1·2학년 때는 대구에 레슨을 받으러 가는 날을 제외하고 예림초 관악실에서 학교 측 배려로 1주일에 두세 번 늦은 시간까지 개인 연습을 했다. 두암 군은 초교 후배들을 지도하는 등 재능 기부로 보답하기도 했다.

두암 군은 마림바를 잡은 지 8개월 만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회 주최 '관악 실기 경연대회'에서 당당히 중등부 1위에 입상했다. 이후 음악교육 신문사 중등부 타악기 1위, 우현 음악콩쿨 중등부 타악기 1위, 벨기에 세계주니어타악기 대회(Universal marimba competition) 1위로 입상하면서 화려한 프로필을 쌓아나갔다. 특히, 지난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금호영재오디션에서 음악 영재로 선발돼 7월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고등학생도 하기 어려운 1시간 독주회를 타악기만으로 이끌어 나간다는 건 재능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림바뿐만 아니라 스네어 드럼, 팀파니 등 양손을 사용해야 하는 타악기 특성상 60분 동안 연주할 악보를 모두 외우고 표현한다는 건,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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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암 학생과 어머니. / 김희곤 기자

마디마디 굳은살이 증명하는 열정

두암 군 손가락 마디마디는 굳은살로 흡사 혹이 튀어나온 것 같다. 한 손에 2개 스틱을, 양손에 총 4개 스틱으로 연주하는 마림바를 연주하면서 스틱이 닿는 부분에 살갗이 벗겨지고 아물고, 또 벗겨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굳은살이 됐다. 두암 군은 이 고통을 "불에 데인 듯, 화상 입은 상처에 땀이 닿은 듯한 아픔"이라고 표현했다.

밀양에서 대구를 오가는 일정에서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홀로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두암 군을 곁에서 지켜본 윤 교사는 "두암이를 보면 재능이 우선인지 노력 때문인지 가늠할 수 없다. 재능이 없었다면 시작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가 없었을 것"이라며 두암 군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암 투병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집안 환경을 생각하며 두암 군은 빨리 성과를 내고자 자신을 또 다그치고 다그쳤다.

두암 군은 "2000만 원 상당 마림바, 교체 주기가 잦은 말렛 구입부터 대회 참가비 등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늘 있다"며 남들과 비교해 쳐지지 않는 재능에도 안주하고 않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 노력하는 이유를 가족으로 꼽았다.

마림바를 주전공으로 하고자 경북예술고등학교를 택한 두암 군은 새벽 6시에 일어나 등교 전 연습실에서 한 시간 남모를 연습을 한다. 경북예고 입학에 앞서 제33회 경북예술고등학교 전국 음악경연대회 중등부 최우수상, 전체 대상을 받아 3년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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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은살이 박힌 이두암 학생의 손마디. / 김희곤 기자

전국·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두암 군은 8월 생애 가장 큰 대회를 앞두고 있다. 제주국제관악제로 중고등부·대학부 경계가 없는 그야말로 음악으로만 겨루는 경합이다. 고교 1학년이 포(4) 말렛이 아닌 식스(6) 말렛으로 대회를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이슈가 될 정도다.

두암 군은 이번 제주국제관악제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과 동시에 음악대 교수를 꿈꾸고 있다.

"마림바는 마음을 울리는 것 같아 칠 때마다 힐링되는 것 같아요. 지역사회 많은 이들의 기대와 도움을 받아 음악을 이어갈 수 있었던 만큼, 지도자가 돼 마림바를 전파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요."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울퉁불퉁한 발을 보며 그 노력에 사람들은 감탄을 마지않는다. 말렛을 쥐는 수가 늘면 늘수록 두암 군 손가락 역시 굳은살로 울퉁불퉁해지고 있다. 이후 어떠한 결과와 상관없이 두암 군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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