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되니 상류 계곡 온갖 쓰레기로 가득
군청부터 찾기보다 이 정도는 내손으로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상류' 사람이다. '하류' 사람들과 안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자주 어울리지는 않는다. 체질적으로 상류인간이다. 하류와는 달리 상류에서는 눈만 뜨면 산과 숲이요, 맑은 개울물과 깨끗한 공기가 넘쳐난다. 미세먼지도 훨씬 덜하다. 몸과 기분을 쾌적하게 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마당에 나서면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으랴 싶다. 산골 새벽은 여린 배추 속잎 같은 연둣빛 이미지다. 밭에 호미를 들고나가면 점점 투명하게 날이 맑아 온다. 날은 밝아오는 게 아니라 맑아온다는 것을 상류 사람만이 안다. 나는 체질적으로 이런 일상이 맞다. 천부적인 상류인간인 것이다. 해발 600 고지가 넘는 곳이니 극 상류인간.

상류 사람에게도 시련이 없는 건 아니다. 도대체 어찌어찌하여 이곳까지 이런 쓰레기들이 몰려오는지 알 길이 없다. 겨우내 반쯤 흙에 묻히거나 얼어붙어 숨죽이고 있다가 봄이 되어 세상이 가벼워지자 쓰레기들이 준동을 한다.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하다가 바람이 불면 위아래 없이 구르기도 하고 날리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검정비닐이다. 상점에서 종량제 폴리프로필렌 마대(일명 피피PP 마대)를 3000원씩 두 개를 사 와서 집 앞 도로 아래와 계곡 기슭을 탐지견처럼 샅샅이 훑었다. 한나절이면 될 줄 알았는데 이틀이 걸렸다. 마대 두 개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준비한 마대 두 개는 금방 차 버리고 일반 마대도 대여섯 개나 더 채워졌다.

검정비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웬걸 파란비닐, 빨강비닐, 노랑비닐도 있었다. 커다란 파란비닐 봉투에는 천안함을 두 쪽 냈다는 북한 어뢰추진체에 쓰여 있던 글씨체로 '강동구청'이라는 글씨가 찍혀 있었다. 500리 길을 달려 참 멀리도 왔다. 어떤 비닐봉지는 꽁꽁 묶여 있었는데 그 속에는 그야말로 백화점이었다. 삼겹살 살점이 말라붙은 은박지 접시도 여럿 있었고 양말 한 짝, 소주병, 고등어 굽는 석쇠, 사조참치 캔이 들어 있었다. 우산살이 다 꺾인 우산은 왜 비닐 속에 있어야 할까? 실패에 꽤 두툼하게 감긴 낚싯줄도 있었다. 깨진 유리병을 담다가 손끝에 상처도 났다.

이 낚싯줄을 보고는 집에 가서 낚싯대처럼 쭉쭉 뻗어나가는 로프식 고지톱을 가져와서 비탈길 아래로 굴러 가 걸려있는 쓰레기를 뽑기인형 게임하듯이 건져 올렸다. 폭포가 있는 곳까지 진출했는데 그곳은 참 가관이었다. 그 비싼 북어 한 마리가 제상에 놓여 있었고 막걸리 병이나 일회용 접시들은 바로 옆 바위틈새에 쌓아 태워버렸는데 타다 만 잔해들이 마구 흩어져 있었다. 누가 이랬을까. 무슨 액을 막고 무슨 복을 빌러 와서는 이토록 계곡을 어지럽혔을까. 읍내에서 농기계와 4륜 트럭을 몰고 와서 밭뙈기 농사를 짓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어이~ 거기서 뭐해? 하면서 차를 세웠다. 그렇다. 저 사람이 마구 뿌려대는 제초제 병과 농약 봉지도 여럿 주워서 따로 모아놨었다. 무슨 약초 캐는 줄 알았는지 차에서 내려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에게 쓰레기 치우는 중이라고 했더니 군청에 얘기하면 될 텐데 왜 그려~ 하고는 휭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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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군청에 얘기하면 된다. 요즘은 군청 공무원이 옛날 머슴만도 못한지 눈이 와도 군청, 길이 패어도 군청, 비가 와서 토사가 나도 군청, 옆집 강아지가 병아리를 물어 죽여도 군청을 부른다. 동네 사람 하나가 술 먹고 트럭을 길에 세워두고 주정을 해도 직접 해결하지 않고 119로 전화한다. 암. 나만이라도 참자. 군청 좀 쉬게 해야지. 이장님이 면사무소에서 50리터짜리 볼그레한 마대 두 개를 갖다줬다. 어림도 없어서 다시 읍내 상점에 나가서 피피 마대 두 개를 6000원 주고 더 사왔다. 이 정도는 해야 상류 사람답지 않겠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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