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예술인 공생관계인 경우 많아
전혁림 작 '통영항' 사례 모범 삼아야

청와대는 지난 9일부터 7월 말까지 청와대 사랑채에서 주요 소장 미술품을 일반에 공개하는 특별전 '함께, 보다'를 열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과 인왕실, 세종실과 충무실 등에 걸려 뉴스 등을 통해 자주 노출됐던 그림들로 1966년부터 2006년까지 40년에 걸쳐 수집된 작품들이다. 종류별로는 한국화 4점, 서양화 8점, 조각 4점 등 총 16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 중에 우리 경남 사람들에게 반가운 그림 하나가 포함됐다. 바로 통영 출신 전혁림 화백이 그린 작품 '통영항'이다. 이 그림은 작년 10월 청와대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됐다. 원래 노무현 대통령 때 청와대가 구입해 걸었던 것인데 이명박 씨가 청와대 주인이 되면서 사라졌던 그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그림을 기억하고 다시 찾았다고 한다. 그림은 이명박 박근혜 시대에 국립미술관의 어두운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이 그림을 주목하는 이유는 사연 때문이다. 2005년 11월 12일 토요일 90세 노화가 전혁림은 경기도 용인 이영미술관에서 개인전 '구십, 아직은 젊다'를 열고 있었다. 그날 아침 YTN 뉴스로 전 화백의 전시 소식을 확인한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 청와대 버스를 준비시키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전시장에서 노 대통령은 '한려수도'라는 작품에 마음이 뺏겨 구매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크기가 너무 커서 청와대에 걸 데가 없었다. 청와대는 전 화백에게 적당한 크기의 그림을 부탁했고, 화백은 노구를 이끌고 4개월 동안 그림에 매달렸다. 그 결과물이 가로 7미터, 세로 2.8미터의 1000호짜리 '통영항'이다.

전혁림 화백의 아들 전영근 화백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에서 변호사 하던 시절부터 전혁림의 그림을 좋아했다. 노 대통령의 친구가 전 화백의 그림을 수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호감을 갖게 된 것이었다. 2005년 그날 아침 뉴스에서 전 화백 소식을 들은 노 대통령은 무척 반가워했다 한다. 나이가 많아 돌아가셨을 줄 알았는데 정정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한달음에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미술계에 공공기관은 중요한 '고객'이다. 건물 벽면 하나하나가 그림을 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공공시설에 지역 미술가의 그림을 얼마나 어떻게 구입해서 거느냐에 따라 지역 미술계는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실제 공공시설의 벽면은 대부분 지역 미술가들의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2005년 노 대통령의 청와대가 구입한 '통영항'도 큰 맥락에서는 다르지 않은 사례다.

그러나 '통영항'이 가진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주말 아침 뉴스를 보고 대통령이 바로 찾아가 그림을 구매한 스토리. 아무개 화가의 작품이라서 호당 얼마를 받아야 한다는 식의 가치가 아니라 대통령 되기 훨씬 전부터 좋아했던 화가의 그림을 대통령이 돼서 우연히 발견하고 달려가는 이야기를 통해 '대통령이 사랑한 화가', '대통령이 애정한 그림'이란 가치를 얻은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며 나는 '정치인과 예술'의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인과 예술은 사실 생각보다 가깝다. 그런데 보통은 예술인들이 정치인 주변을 '얼쩡거리는' 경우가 많다. 지지선언도 하고, 유세 현장에도 쫓아다니며 눈도장을 찍는다. 혹시 당선되면 한자리를 얻든 어딘가에 선정이 되든 이득을 취한다. 정치인도 예술인을 병풍처럼 세워 교양 있는 척 '폼'을 잡는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공생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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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통영항' 사례는 예술인과 정치인의 친소 관계가 아니라 예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정치인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일부러 찾아가구매하는 과정을 통해 전혁림 화백과 그의 그림이 얼마나 소중한지 대중이 직관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조만간 새 지도자가 우리 지역에도 등장할 것 같다. 정치 지도자는 지역사회와 문화의 가치를 높일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새 지도자는 이 '통영함'에서 통찰을 얻었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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