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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데려온 후 생긴 일

한 번도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내가 고양이를 세 마리나 데려오다니

입력 : 2018-05-21 16:09:35 월     노출 : 2018-05-21 16:27:00 월
정원한 시민기자 amiha2000@idomin.com
지난 5월 11일 금요일이었다. 오후 5시쯤 집 앞 골목길을 지나던 중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대 재질의 제법 큰 쇼핑백이 보였고, 그 안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울고 있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버린 게 분명했다.

순간 망설였다. 여기 두었다간 오늘 밤을 못 넘길 것 같았지만, 집으로 데리고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을뿐더러 가족들이 뭐라고 할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고 가기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세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집에 데려온 고양이들에게 일단 종이박스로 집을 만들어주었다. 중3 아들녀석이 반색을 하며 반겼다. 아들은 이미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학교 선생님에게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선생님은 새끼 고양이에게 먹일 우유병과 초유를 직접 가져와서 먹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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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 뜨지 못한 채 기어다는 고양이 세 마리

5월 12일 토

아들은 좋아했지만, 중1 딸과 아내는 질겁을 했다. 이걸 어떻게 키우려고 데려왔냐며 핀잔을 줬다. 아내와 딸에겐 신경쓰지 말라며 안심을 시켰다. 하지만 나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고양이 관련 상식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보낼 곳도 없었다.

페이스북에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글을 올렸더니 몇몇 페친이 조언을 해줬다. "이렇게 어린 새끼 고양이는 동물보호소에 보내도 살아남긴 어렵다", "수유를 잘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넘기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찾는 것도 난망한 일. 결국 우리가 책임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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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이 씻기고 나니 털도 뽀송뽀송, 눈물과 눈곱 때문에 뜨지 못하고 있던 눈도 떴다

5월 14일 월

고양이를 데리고 온 후 첫 평일이다. 주말에는 몰랐던 상황이 닥쳤다.
평일은 가족들이 모두 일터와 학교로 가기 때문에 낮 시간에 분유를 챙겨줄 사람이 없다.
그리고 집사람과 딸은 고양이를 만지지도 못한다.

고민 끝에 내가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나의 점심과 고양이 우유를 같이 해결하기로 했다.

5월 15일 화

녀석들이 이제 좀 살만한지 엄청 울어댄다.
세 놈이 같이 울어대니 이제 시끄럽기까지 하다
슬슬 한계가 오는 건가?


오~~드디어 한 놈이 혀를 이용해 분유를 먹기 시작했다. 덩치가 제일 작아 걱정했던 놈인데 대단하네. 우리는 그를 '막내'라 불렀다.

5월 16일 수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들 친구가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겠다고 한다.
예전에 개와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있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제일 얌전한 놈으로 달라고 하는데, 세 놈 중에 가장 덩치가 좋고 덜 우는 놈으로 분양하기로 했다. 바로 이 녀석이다.

젖병빠는-첫째.jpg
아들 친구에게 분양된 첫째.

고양이가 물을 무서워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울기만 하던 녀석들이 물에 들어가니 엄청 좋아한다.

목욕하는-고양이.jpg
세숫대야에 담겨 좋아하는 고양이 세 마리

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온지 5일이 지났다.

처음엔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만 앞섰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될지 조금씩 윤곽이 잡힌다.

나름 내린 결론은 보호소 보다는 지인을 통해 분양하는 편이 낫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 마음이 더 편하니까.

그리고 이 고양이 세 마리로 인해 동물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집사람과 딸아이가 조금은 동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열렸으면 좋겠다.

5월 17일 목

고양이 한 마리를 맡아서 키우겠다는 분이 또 나타났다. 아들녀석의 학원 여선생님이다. 내가 '둘째'라고 이름 붙여준 녀석을 보냈다. 직접 집까지 찾아온 선생님 품에 안겨드렸다.

이제 '막내' 한 녀석만 남았다. 이 녀석은 덩치가 제일 작아 분양도 쉽지 않을 듯하다. 도저히 안 되면 결국 내가 키울 수밖에 없는 일. 다행히 녀석은 젖꼭지를 물려주지 않고 종이컵을 낮게 잘라 초유를 부어주면 혀를 이용해서 날름날름 잘 먹어주었다.


그렇게 사흘이 더 지났다.

5월 20일 일

오전 10시경 녀석의 울음소리가 평소와 좀 달랐다. 야옹~ 야옹~ 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끙~끙~ 앓는 소리 같았다. 안고 배를 만져보니 온기보다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기력도 없었고 숨쉬기도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녀석과 함께 녀석을 데리고 차를 운전해 회사 인근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의사 앞에 내려놓는 순간, 의사가 청진기를 댔다. 그러더니 의사가 말했다.

"조금 전에 심장이 멈췄습니다."

순간 믿어지지 않았다. 좀 전까지 살아있던 녀석이었는데, 죽을 거라고까진 생각하지 못했는데...

고양이-무덤-1.jpg
막내 고양이의 무덤

녀석의 사체를 다시 수건에 싸서 집으로 데려왔다. 삽을 챙겨나와 다시 차를 운전해 15km 거리에 있는 함안군의 아버지 소유 밭으로 갔다. 밭 모서리 한 곳에 터를 잡아 녀석의 무덤을 팠다. 수건에 쌓여 숨진 사체를 아들과 함께 뭍었다. 아들녀석이 꺼억꺼억 울었다. 나도 아들을 등진 채 살짝 눈물을 훔쳤다.

경험 없이 갓난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한 며칠이었다. 잘 가라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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