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 논의 재개
환노위 개정안 신속 논의…선거 지나면 원점 '부담감'
노동계, 상여금·식비 등 포함 시 인상 효과 무의미
저임금 노동자 '타격'…"복잡한 임금 체계 단순화 먼저"

24일 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가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를 포함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기존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았던 상여금, 숙식비 등을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넣으려는 논의를 했다. 노동계는 국회가 아니라 노동자가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국회 앞에서 환노위 소위, 전원회의를 거쳐 환노위 통과 시 국회 본회의(28일)까지 법안 통과를 막고자 5일간 농성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선거 전 부담 덜어내기? = 왜, 5월 중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를 국회에서 마무리하려는 것일까.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해 말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포함한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TF팀 보고를 받고 올해 3월까지 논의했다. 하지만, 노사 위원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논의를 더 이어갈 수 없었다.

이후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여야 대립으로 한동안 마비됐던 국회가 정상화되면서 지난 21일 국회 환노위에서 최저임금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

김명환 위원장 등 민주노총 지도부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저지를 위한 지도부 대국회 농성을 시작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고,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액 결정 기한이 6월 28일인 점 등이 국회가 신속하게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 결정 등을 하려는 이유로 꼽힌다.

특히 지방선거 직후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이 교체되면 다시 원점에서 최저임금 논의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여야 모두 선거 표심 등을 염두에 두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이 커지는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덜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경영계는 수년 전부터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손봐야 한다고 해왔다. 최저 임금이 높아졌는데, 안 지키면 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기업이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정치권이 자영업자, 기업 등을 고려했을 때 부담이 많다. 지금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조정하지 못하면, 지방선거 때문에 9월 국회까지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여야(정의당 제외)가 의견이 맞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산입 범위 확대되면 저임금 노동자 피해 = 노동계는 상여금, 숙식비 등이 최저임금에 들어가게 되면, 명목상 임금은 오르지만 실제 임금 인상 효과는 없어진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한 노동자가 현재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 160만 원에 매월 월급의 10%인 식비를 추가로 16만 원을 받았다면,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식비가 포함되면 내년 최저임금이 10% 인상되더라도 임금이 동결되는 셈이 된다. 기본급에 식비를 더한 금액이 최저임금이 되기 때문에 176만 원으로 임금은 제자리걸음에 머문다. 현행대로라면 기본급이 최저임금 10% 인상에 따라 176만 원이 되고 식비 16만 원을 더해 192만 원이 되지만, 산입 범위가 확대되면 최저임금을 굳이 올리지 않아도 법을 위반하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산입 범위 확대가 '줬다가 뺏는 최저임금 삭감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산입 범위 확대안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노동자는 제조업 등에서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다.

기업이 노동자에게 연장근로 수당 등에 영향을 주는 기본급이 아닌 상여금, 수당 등으로 임금을 보전해왔는데, 이 부분이 최저임금에 산입되면 최저임금은 오르지만 전체 임금액은 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김정호 노동사회교육원 소장은 "작년 하반기에 이미 조선소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상여금을 기본급에 넣었다. 그러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많은 사업장에서 그렇게 했다. 먼저 상여금을 기본급에 산입한 곳은 저임금 노동자 중에서도 미조직 노동자가 많았다. 취업규칙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곳도 많다"고 했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24일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 임금 삭감 효과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올해 청소, 경비, 주차 등 사업관리·지원, 제조업, 도소매업 등의 업종에서 일하는 조합원 602명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은 최저임금 1.2배 이하 저임금 노동자다.

조사 결과 2019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15%로 결정되더라도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 급식비, 통근비를 포함하면 산입 범위 확대만으로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가 최대 96.8%에서 45%로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입 범위 확대가 실제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한다고 분석했다.

◇"왜곡된 임금 체계 간소화 위한 준비 필요해" = 현재 왜곡된 임금체계를 개선하려면 산입 범위 확대가 아닌 실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입 범위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는 적은 기본급에 각종 상여금, 수당이 붙은 복잡한 임금 체계 때문"이라며 "임금 체계가 단순해지면 산입범위는 논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하면 기업들이 각종 수당을 유지할 수 있게 돼 복잡한 임금체계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올해 최저임금이 오르자 많은 기업이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기본급은 높이면서 각종 수당을 없앴다. 이것이 당장 해당 노동자에게 유리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민간이 자율적으로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도록 유도했다는 점은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등의 문제를 노동자 당사자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희태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조직국장은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통상임금 등 임금체계를 간결하게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다. 임금 체계를 단순화, 간소화하는 게 맞지만, 그 때문에 이전과 비교했을 때 실제 임금이 저하되면 안 되지 않나. 국회에서 법을 확정할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자와 협의하고 의견을 반영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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