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경상남도기록원, 기록자치 시대를 열다
국내 첫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중앙집중 벗어난 작업 기대
관리기준·자생력 확보 숙제, 대화·협력으로 고민 나눠야

얼마 전 모 대학 교수님과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분은 지방의 기록을 수집하는 일을 하는 한편 중요한 기록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분을 알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에는 경상지역의 중요기록을 많이 가지고 계신 분이 그 기록을 마땅히 보존할 장소가 없어 지방의 대학교와 도서관에 기증(위탁)의사를 전했지만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결국 서울권으로 기록을 보냈다는 말씀을 하셨다. 지역을 알리는 중요한 기록이 지역에 속하지 못한 점을 많이 아쉬워하시며 기록관리라는 업무가 활성화되지 못함을 진심으로 걱정하셨다.

이 이야기는 경남을 알고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들이 상당수 경남 땅을 벗어나 있다는 것과 곳곳에 숨은 '기록'의 달인들이 기록 '관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가능하게 해준다. 굳이 중요자료가 경남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고정관념일 수 있지만 경남의 중요자료가 이 지역을 벗어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지역에서 기록관리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며 그 기록을 가지고 우리 지역 우수성을 알리는 작업 또한 할 수 없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또한 지금도 곳곳엔 중요기록을 가진 달인들이 그 관리라는 분야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21일 개원한 경상남도기록원.

2016년 옛 보건환경연구원을 리모델링하면서 경상남도기록원이 시작됐다. 기록관리 선진화, 기록문화 확산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서 지방의 기록자치 시대를 여는 최초의 기록원이 만들어진 것이다. 경상남도기록원 설립은 10년 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의무화' 조항 이후 첫 사례이며 일상의 기록을 관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렇다면 기록원은 왜 생겼을까?

단순히 생각하면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의 30년 이상 기록물을 수집·보존·활용으로 경남도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경상남도의 역사를 알리는 일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문구가 모호하다 보니 해석은 중구난방이다.

혹자는 '기록' 자체의 보편성을 이유로 기계적인 이관과 확인만을 주장하며 이 일을 10여 년 해도 알 수 없는 기록과 역사를 단 몇 개월 만에 정리해버렸다. 이 상황에서 만약 내가 그 말과 행동에 반하지 않고 그 뜻에 동조해 일을 해버리면, 굳이 즐거워야 할 내 인생이 '고민'이라는 시간과 '반대'라는 사건으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된다. 또한 '기록원이 왜 생겼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이 새벽에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즐거움을 마다하고 '기록'과 '기록관리'를 고민하는 이유는 이제 업이 돼버린 지난 10년 기록관리 업무에서밖에 설명할 수 없다.

기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4살 된 나의 막내아들도 알 수 없는 글을 종이에 적으며 편지라고 들고 오니, 기록은 인간에게 본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기록의 '관리'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어려운 숙제가 된다. 특히 관리해야 할 기록의 양은 방대하고 그 유형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 매일 연구하지 않으면 기록 '관리'는 앞서 말한 무례한 혹자와 같은 부류에 업신여김을 받을 것이다.

21일 열린 경남도기록원 개원식에서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 등 참석한 인사들이 기록원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경남도

기록원은 기록관리의 '고민'을 공유하고자 만들어진 거로 생각한다.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무엇을 보존할 것인가? 이렇게 보존된 기록물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라는 기록관리 대상의 명확화, 기준의 설정, 목표의 구체화는 기록을 관리하는 자나, 관리하는 곳이나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공동의 목표다.

흔하디 흔한 기록이 체계적인 관리를 만나게 되면 이순신 장군의 일기처럼, 민주열사의 열전처럼 귀중한 세계유산이 될 수 있다.

가치 없는 기록을 단순히 문자로 규정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남기고 보존한다면 활용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모든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기록원(관리)이 고민하는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의 요즘 일상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다. 익숙해진 기록관을 떠나 무엇이든 새로운 기록원을 만나게 되었다. 또한 다종다양한 인간을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뜻에서 일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지만 기록관리가 업이 된 입장에서 만난 다종다양한 사람은 기록의 일반화를 이유로, 스스로 지식의 범위에서 기록관리를 평가절하하며 규칙 없이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경남도기록원 개원을 기념해 기관장 휘호 등이 전시된 모습.

변화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끔 소주잔을 붙들며 울기도 하지만 좋은 것도 내 일이고 나쁜 것도 내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이는 기록원이 내게 주는 선물이며 앞으로 이 선물을 관리해야 할 나에게 이 외에도 있을 환경에 적응하는 맷집을 주는 거로 생각한다.

기록원이 제 사명을 다해 도민에게 칭찬받을 때까지 우리는 모두 노력의 경주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중앙에 집중된 기록관리가 아니라 지방에서도 스스로 기록을 남기고 보존하여 이 지역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지방의 기록자치시대를 열어야 한다.

공공의 중요기록은 안정적으로 이관·보존되어야 하며, 민간의 기록(관)은 스스로 자생력을 가지도록 협력하고 지원하여야 한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청소기 같은 기록원이 아니라 기록을 관리하는 대상의 이해를 통해 경남 요소요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록의 문화가 확산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경상남도기록원은 이를 통해 기록의 힘을 실현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해 나간다면 제2, 제3의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이 생길 것이며 지금보다 더 나은 생각과 결과물을 남기게 될 것이다. 지금 하는 이 모든 일은 최선일 따름이며 정답은 아니다. 기록 '관리'의 '고민'을 공유하는 많은 사람의 끊임없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이 땅의 기록관리가 요소요소에서 꽃을 피우도록 노력할 것이다.

2018년 5월 21일 개원을 한 경상남도기록원은 이것의 출발이지만 그 성공적인 결과는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 출발에 도민들의 응원을 요청한다. 나와 우리의 기록이 내일의 경상남도를 만들어 갈 것이다.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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