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오혜원·장하람 지음
거창 혜성여중 학생 3명
꼬박 일 년 공들여 준비한
<어긋나야 보이는…> 발간
일상에서 길어 올린 감성
때묻지 않은 시어에 녹여

2016년 12월 거창 혜성여중 2학년 오혜원 학생이 글쓰기 동아리를 지도하는 박정기 교사를 찾았다.

"선생님, 저 시집을 내고 싶어요." 난감한 고민이었다. 박 교사는 솔직하게 중학생이 시집을 내기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말해줬다. 그러면서도 혜원 학생의 꿈을 꺾어 미안하고 마음이 짠했다. 그러다가 2017년 책 쓰기 동아리 공모사업이란 게 생겼다. 박 교사는 혜원 학생이 생각났다. 이거면 가능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시집을 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니?"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혜원 학생 혼자서는 벅찬 일. 그래서 친구 장하람 학생과 글쓰기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박소영 학생이 함께했다. 더딘 걸음으로 꼬박 일 년. 이렇게 중학생 3명이 만든 시집 <어긋나야 보이는 것들>(2018년 4월)이 탄생했다. 시집에는 세 학생이 쓴 시 90편이 실렸다. 시어를 다루는 기교나 표현 능력이 아직은 부족하다. 하지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 속에 기성 시인 못지않은 감성이 가득하다.

시집 <어긋나야 보이는 것들> 표지. /이서후 기자

◇솔직함의 매력…박소영 학생

"지나가는 데/ 친구가 뒷담 하는 소리가 들린다/ 쟤는 뭐냐/ 나는 뒷담이 아니라 대놓고 말하고 싶다/ 책에서 봤다/ 남을 용서하는 법/ 지나쳐 보내라고 했다 (중략) 개뿔,/ 남을 용서하는 법대로 하다가/ 화병 나겠다" - '용서하는 법' 중에서

솔직함이야말로 시인의 기본 품성이 아닐까. 초라하고 모자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소영 학생의 솔직함은 잔잔하게 빛나며 감동을 준다.

"시는 정말 마음 안에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삶에서 사소한 일, 힘들었던 일, 감동받은 일, 한 맺힌 일까지 내 속에 담았던 이야기들을 시 쓰기로 풀어냈다." - '시인의 말' 중에서

◇풋풋한 사색…오혜원 학생

"덮인 어둠 속에는/ 빛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어둠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빛없이 방황하다가/마침내 발견한다// 빛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빛을 가렸다는 것을" - '암흑' 전문

아는 일과 사는 일은 다르다. 학교에서 배운 건 많지만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가득한 학창 시절. 오혜원 학생은 이런 두려움을 오히려 끌어안고 곰곰이 다독인다. 그리고 가만가만 미래를 꿈꾸어 보는 것이다.

"시는 심장이 뛰고, 글로 하여금 눈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느꼈다. 조금 오글거리는 문장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칠흑 같던 암흑 속에 누군가 구멍을 뚫어 햇빛이 내려앉게 해준 느낌이었다. 방황하고 있었지만 그 덕에 내 진정한 목표를 찾은 것 같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시집 <어긋나야 보이는 것들> 저자들. 왼쪽부터 장하람, 박소영, 오혜원 학생. 지금은 모두 고등학생이 됐다. /박정기

◇관찰의 힘…장하람 학생

"집으로 가는 6시 버스를 탈 때마다/정류장 옆에 있던/ 여러 가지 과일이 든 트럭/ 깊고 나지막이 들리는/ 아저씨의 깊은 한숨/ 과일을 팔지 못한 걱정일까?/ 아저씨의 시무룩한 얼굴을 보니/ 딸기 한 바구니라도 사주고 싶다/ 하지만 지갑에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뿐이다." - '과일장수 아저씨' 중에서

일상 속에서 예사롭지 않은 순간을 잡아내는 능력은 오랜 관찰에서 나온다. 장하람 학생의 반짝반짝하는 시선이 머무는 풍경 속에서 따뜻함이 잔뜩 묻어난다.

"등교할 때는 부모님 자동차로, 하교할 때는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정류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버스 정류장에서 드는 생각, 보이는 여러 풍경,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을 관찰해서 시를 썼다." - '시인의 말' 중에서

북인 펴냄, 124쪽, 8000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