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내지 않고 소통하는 인기 게임 늘어
한반도 역사 게임 발달사처럼 변화 주목

게임은 승부를 내는 것이었다. 규칙을 정해놓고 상대와 경쟁해 이기거나 지는 것이었다. 대부분 전쟁놀이였다. 딱지치기는 약탈 게임이다. 체스와 장기는 고전적인 전쟁 게임이다. 컴퓨터 게임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거의 모든 게임은 전쟁과 전투를 모방한 것이었다.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개발되었다. 승부의 규칙만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현실감을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인터넷 온라인 기술이 게임에 도입되면서 유저 간의 소통이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가 됐다. 이제 승부를 내지 않고, 높은 현실감만으로도 인기를 누리는 게임이 많다. 시뮬레이션 게임이 대표적이다.

게임이 다른 문화 장르와 확연히 차별되는 것은 '쌍방향성(Interactive)'이다. 문학·음악·영화와 같은 장르는 읽고 듣고 보는 것이다. 내가 책 속에, 영화에 들어가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임은 내가 게임에 들어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된다. 현실감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던 시절에는 게임 속에서 내 행동에 반응할 상대가 필요했고, 짜릿한 재미를 느끼려면 경쟁을 해야 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그래픽, 무서울 정도로 발달하는 인공지능,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인터넷, 이런 기술의 발달로 획기적인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무기를 든 내 아바타가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 성장하는 것만이 게임은 아니다. 내 군대가 상대의 군대와 전쟁을 벌여 약탈을 하는 것만이 게임은 아니다. 평화롭게 농작물을 키우고 멋진 농장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는 게임이다. 내가 직접 롤러코스터를 설계해 멋진 놀이동산을 꾸미는 것도 재미있는 게임이다. 아기로 태어나서 학교에 다니고, 어른이 돼 직업을 갖고, 결혼해 가족을 꾸리는 것도 재미있는 게임이다.

한반도의 역사가 게임의 발달사처럼 바뀌고 있다. 승부를 가르는 전쟁 장르에서 시뮬레이션 장르로 변하고 있다. 내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 70여 년간 철천지원수, 악의 축으로 여겼던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첫 만남을 갖는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핵실험을 하고, ICBM 미사일을 발사하고, 화염과 분노로 응징하겠다며 최첨단 전략무기들이 한반도를 넘나들었다. 북한과 미국의 정상들은 마치 게임을 하듯, 서로 자기 책상 위에 '핵단추'가 있다며 으르렁댔다. 그랬던 두 정상이 평화와 번영을 논하기 위해 직접 만난다. 회담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알 수는 없다. 부디 대립이 아니라 평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합의되길 바랄 뿐이다. 한반도의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바람도 같을 것이다. 국내의 극소수 정치세력과 일본의 일부 정치세력은 다른 생각일 수 있겠지만.

한반도 평화 시뮬레이션 게임을 상상해보자. 철도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 도입부에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철도가 다시 연결돼 개통된다. 부산역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살 수 있고, 시베리아를 횡단해 모스크바, 파리, 런던까지 가는 기차표도 살 수 있다. 철도 수입이 많아져 더 빠르고, 더 쾌적한 기차들을 제작하고 배치하며 성장하는 게임이다. 옥류관을 배경으로 한 평양냉면 식당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도 재미있을 거 같다. 박정희 동상과 김일성 동상이 없는 '평화시티'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도 재미겠다. 그 게임 속 강가에서는 젊은이들이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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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재미는 승부만이 아니라 내가 직접 참여하는 '쌍방향성'에서 온다. 북미회담 다음 날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직접 참여해서 변화시키는 재미를 놓치지 말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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