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왼쪽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문학대상 수상작]꿈을 밝혀줄 신기루

[제17회 경남청소년문학대상]고등부 대상

2018년 06월 14일(목)
김리향 김해 경원고 3학년 webmaster@idomin.com

'도시에는 그런 곳이 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태양보다 멀리 떨어진 곳.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 학교 하나조차 제대로 서 있기 힘든 곳이었으니 그곳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은 온통 죽을 맛인. 아이보다는 노인분들이 더 많은 그런 곳이 있다. 안타깝지만 이런 곳에서의 아이들 인생은 뻔했고…….'

안 읽을래. 왜? 너무 우리 상황 같아서 재미없어. 짜증 나잖아. 난 되게 재밌게 읽었는데. 처음만 그런 거야 계속 읽어봐. 아 됐어. 첫 문단부터 마음에 안 들다니 이 책은 탈락이야. 여느 고등학교와 다를 것 없는 분위기였다. 교과서에 머리를 박고 암기만 죽어라 해야 했던 공부방식보다는 자유분방하게 뛰어놀고 돌아다니는 게 더 좋은 아이들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조그마한 책 한 페이지를 읽지 못하고 그대로 덮어 버렸다. 언젠간 읽어봐야지 하고 손에 쥐었던 책이, 불쌍한 우리의 상황을 직설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 같아 읽은 대로 기분이 나빴다. 차라리 소리 내어 읽지 말 걸 그랬어. 옆 친구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물함에 책을 던져 넣었다. 다시 꺼내 볼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내가 졸업하기 전까지는, 쾅.

그날 오전 수업이 끝나갈 때쯤, 전학생이 왔다. 해가 중천에 가까워질 시간이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밝은 햇볕이 교실을 통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칼이 빛을 받아 더욱 갈색 빛으로 물들여졌다. 되게 예쁘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고 그녀가 걸을 때마다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며 내 눈앞에 짧은 잔상을 남겼다. 물론 만화처럼 내 옆에 앉는다든가, 그런 일은 없었다. 나보다 한 세 칸은 앞에 앉았으려나.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곱상했다. 왜 온 걸까? 왜, 굳이, 여기를? 차라리 나랑 좀 바꾸지, 아 나가고 싶다. 난 이곳이 죽도록 싫었다.

우리 학교와 다른 학교들의 차이점은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정확히는 않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거였다. 이 동네에 제대로 된 가로등이 몇 개나 있다고 어두운 밤에 안전장치 하나 없이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정말 한심하지 않은 게 없는 동네였다.

5시쯤이면 학교의 정규 수업은 모두 끝나지만 나는 한 시간 정도 교실에 머물다 집에 돌아가고는 했다. 아이들이 모두 교실 밖을 나선 걸 확인하고 난 후면 가방 깊숙한 곳에 꽂아둔 책을 꺼내 들었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야지만 마음 놓고 책을 펼쳐들 수 있었다. 이런 생활엔 꽤 익숙했다. 사실 뭔가 대단한 일은 아니었고 책을 읽는 정도. 그러니까, 아무도 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내 꿈을 편히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이런 거 좋아해?"

전학생과 만난 지 5일째. 아마 딱 그 정도 지났던 것 같다. 분명히 모두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 책을 펼쳤는데 어느샌가 뒤에서 나를, 내 책을 지켜보고 있던 전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침묵만이 맴돌았던 교실 가운데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렇게 표현하기 조금 웃기지만 감미로웠다. 전학생은 전학생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반 아이들 대부분의 관심을 받아내야만 했다. 어디서 왔어? 좋아하는 아이돌은? 나는 굳이 그 북적거리는 틈바구니를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늘 많은 아이들에게 가려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전학생. 하지만 그런 전학생은 자기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멀찍이 제자리를 지키는 나에게는 관심이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금요일이 되기까지 서로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분명 낯설게 느껴져야 할 전학생의 부름이 어째서인지 익숙했고, 꼭 들어본 목소리 같은 게, 조금 그립기도 했다. 꼭 그런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방송작가가 되고 싶구나?"

늘 머릿속에서만 그려오던 단어. 결코 입에 담지 않았던 단어였다. 창피했다. 어릴 때부터 바라왔지만 꼭꼭 숨겨야 했던 꿈을 친하지도 않은 전학생에게 들킨 것이다. 이제 와서 누군가에게 알리기는 부담스러운 꿈이었고, 자신이 없는 꿈이었다. 더군다나 현실성도…없는 꿈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말로 하지 마. 쪽팔리니까."

"왜? 얼마나 멋진 직업인데 그래."

"이 바닥에서 방송은 무슨. 더군다나 돈도 못 버는 작가를 하고 싶다는데 뭐가 멋있어?"

말투에 날이 선 것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 전학생에게 화풀이하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알고 있었지만, 웬만하면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는 남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그녀가 낯설었지만 분명 반가웠다. 반가웠지만 같잖은 위로는 필요 없었기에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이런 친구들의 위로는 내가 아니라 자신들을 향한다. 어쩌면 날 놀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이 위선적인 것이 내게서 물러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위로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그런가? 난 되게 멋있던데. 글이라는 거 아무나 쉽게 쓰는 건 아니잖아."…….

"사실은 나도 방송을 하고 싶거든. 난 무대 연출을 하고 싶어. 머리 쓰는 거 말고, 발로 뛰면서 말이야."…….

"지금 꿈을 이야기하는 내가, 쪽팔려 하는 것 같아?"

사실 그 순간, 말은 안 했지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게 물어보지도 않을 자신의 꿈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녀를 말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그 순간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를 만난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손가락질만 받던 꿈인데, 멋있다고, 나도 그곳을 바라본다고 말해주는 친구를 만났다. 마음이 통한다는 건, 생각보다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그녀와 친해진 건 딱 그때부터였다. 가족에게조차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 꿈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고, 당연하게도 그녀에게 흘러들어 갔다. 분명 잘하지는 못하지만 글 쓰는 걸 무척 좋아한다고, 나중에는 꼭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고, 만약 내가 음악 방송 작가를 맡게 된다면 그 무대는 네가 꾸며줬으면 좋겠다고. 웃다가도 울었으며, 울다가도 웃었다. 입 밖으로 드러내는 감정들이 낯설어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느꼈다. 마음속에 꾹꾹 눌러왔던 말들이 한꺼번에 다 표현하려니 그 순간순간이 언제나 벅차오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미래를 상상하며 꿈을 그려내는 사이,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지나왔더라.

"넌 졸업하면 어디에 갈 거야?"

"난 일단 무조건 여기를 떠날래. 더 큰 곳으로 가서, 더 많은 걸 배울 거야. 죽어도 방송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너는?"

"나도 당연히 방송을 위해 가고 싶어. 내가 지휘하고 꾸민 무대를 볼 수 있다면. 그 무대 위에서 빛나는 사람들과 환호하는 관객들을 마주하면 얼마나 기쁠까, 그런 날을 얼른 만나 보고 싶거든."

이제 끝인가 싶다가도 끝나지 않았고, 조금 어두워지나 싶다가도 어디선가 반짝, 불이 켜졌다. 더는 혼자 숨어서 바라보는 꿈이 아니었다. 함께하는 누군가가 생겼고 친구들이 모두 떠난 빈 교실은, 더는 내게 필요하지 않았다. 발길이 닿는 대로 그녀와 함께 걸었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희미하게 흔들리는 가로등마저도, 이제는 불편하지 않았다. 남들과 같지는 않지만 결국 빛을 내는 건 똑같다고 그녀가 가르쳐줬기 때문에. 더이상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도 얼른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 나랑 같이 갈 거지?" 그녀는 잠깐 말없이 미소를 머금다 나와 눈을 맞췄다.

"난 있잖아, 네가 정말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장담할 수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남들의 말을 계속 받아내느라 잠시 어지러웠을 뿐이야. 너라면 분명 꿈을 이룰 거야. 꼭 그런 느낌이 들어."

앞으로도 그 꿈 잊지 말고 계속 나아가 줘. 누가 뭐라 해도,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꿈이야. 네가 원하는 미래의 너를 그리며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여기 태어난 게 뭐 어때. 이런 환경이 뭐 어때서. 쪽팔린다며 말하지 말라고 눈을 피하던 네가 아니라, 네 꿈을 사랑할 줄 아는 네가 보여. 지금의 너는 처음과 다르게 빛이 나.

따뜻함을 쓰는 예쁜 방송작가가 되기를 응원할게. 몇 년 후에 네 이름을 텔레비전에서 들을 수 있기를. 넌 분명 멋진 작가가 될 거야. 나중에 방송 쪽에서, 사회에서 성공한 모습으로 만나자.

눈앞이 아른거렸다. 이게 순간적으로 반짝이던 빛에 의한 진상인지, 눈물이 드리웠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 마법처럼 나타나더니 또다시 마법처럼 사라졌다. 그녀가 우리 학교에 온 지 정확히 석 달 만의 일이었다. 교실 안에서는 물론, 이 좁은 마을에서조차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그 모든 게 다 꿈이었던 것처럼. 분명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그 어디에도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전학생 있잖아. 전학생!"

"여기에 전학 오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이름이 뭔데?"

"어, 그러니까……."

후에 생각해보니 난 그녀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더랬다. 첫 만남 때 예쁘다는 생각을 하느라 이름을 듣지 못했던 건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지워진 것처럼 내 머릿속에서 그 아이의 이름이 자연스레 모습을 감춰버린 건가. 난 그 아이와 생활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누구야, 누구야 하고 말해본 적이 없다. 그걸 새삼스레 깨닫고 난 후에는 그녀를 찾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다 그것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결국, 그녀로 인해 많이 바뀐 내가, 그녀가 내 곁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될 가장 큰 증거와 다름이 없으니까.

대청소를 위해 사물함을 싹 다 비워야 하는 날이 있었다. 생각 없이 열어젖힌 사물함 안에서 가장 먼저 떨어져 나온 건, 석 달 전, 첫 페이지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걸 처음 읽던 날 그 아이가 왔었는데. 마치 그 책이 그녀를 대신할 수라도 있다는 듯,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나갔고 처음과는 달리 가장 마지막 부분을 펼쳐 읽었다.

'…결국은 나 자신을 믿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 원하는 꿈을 꾸길, 나의 꿈을 사랑하길. 그런 나를, 사회에서 마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구절을 읽는 순간만큼은 그녀가 다시 나타나 처음처럼 몰래, 내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미 같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책에 적힌 문구와 비슷한 말을 나에게 남기고 갔었다. 어디에선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을 그녀가 내게 건넨 최고의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말.

'사회에서 만나자.' 얼마나 감동적인 말인가. 나에게 기대를 걸어준다는 것이, 각자가 가장 사랑하는 분야를 통해 미래에서 만나자는 그 약속이.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인가.

오늘 밤도 늘 그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흘러간다. 밤조차도 그녀가 이 동네에 존재했고, 나에게 있어 가장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몽땅 잊어버린 듯했다. 오늘 밤도 고요하다. 시끌벅적한 마음은 늘 혼자만의 소음이다. 창밖의 오래된 가로등은 여전히 희미하게나마 빛을 내뿜으며 이어가고 있다. 그런 가로등을 보며 한소리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시 꾹 다문다. 그래도 저 빛이 내가 그녀와 담았던 빛 중 가장 따스하고, 아름다우며, 찬란했기에.

"언제나 각자의 분야에서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그리고 같은 마음을 나눈 네가 하는 모든 것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야. 고마워."

책을 품에 꼭 안아 들었다. 졸업하기 전까지는 다시 볼 일 없겠다 생각했던 그 책을 꼭 안았다. 마치 그녀라도 되는 것처럼 꼬옥. 그녀는 한순간의 꿈이었던 걸까? 아직도 어찌 된 영문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추억이었다. 하지만 마냥 엇나가던 내 생각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경험이었고, 그때 돌아섰던 내 마음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했다. 그것을 이유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가치 있는 순간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9월의 나. 나는 이제 모두의 앞에서 보란 듯이 연필을 잡는다. 새하얀 배경, 아득하게 먼 흰 우주의 끝자락에서부터 한 자 한 자 글을 써내려가며 나의 우주를 채운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고개를 돌리던 그때의 나는 없었다. 방송작가가 되고자 하는 내가 선택한 첫걸음, 실기를 응원해 주는 부모님과 친구들, 선생님, 그리고 나 자신의 믿음 속에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창문을 가로막는 회색 블라인드의 틈새를 햇볕이 비집고 들어온다. 책상 위, 내 손등을 지나쳐 머리칼에 잠시 머물다 가는 볕은 그녀로부터 잘 지낸다는 온기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아, 기분 좋은 신기루였다.

신문 구독을 하지 않고도
경남도민일보를 응원하는 방법

전체선택후 복사하여 주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