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인에게 '여편네'란 어떤 존재였을까
아내 지칭한 시어로 사용
'반여성주의'비판 받기도
초청 강연서 맹문재 시인
"자본주의 체제 상징한 말"

지난 16일은 김수영 시인의 타계 50주기였다. 마침 휴일이기도 한 이날 전국적으로 시 낭송회나 문학강연이 열렸다. 이날 오후 7시 30분 진주문고 2층 여서재에서 '시인 김수영이 말하는 여편네들'이란 주제로 열린 맹문재 시인 초청강연도 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자리는 의미가 특별했다.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91) 씨가 참석했기 때문이다.

◇김수영의 아내를 만나다 = 작은 체구에 하얀 베레모로 멋을 낸 김 씨는 아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정해 보였다. 그는 강연장 입구에 마련된 접수대 겸 판매대에서 꼿꼿한 자세로 책을 산 이들에게 사인을 해줬다. 책은 김수영 시인 타계 50주기를 맞아 올해 2월 민음사에서 개정 출판한 김수영 전집 1, 2권이었다. 사인은 꿈 몽(夢) 자를 크게 적은 후 끝에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이라 적고 날짜를 붙이는 방식이었다. 30~40분 동안 사람들이 끊임없이 줄을 섰지만, 싫어하거나 힘든 기색은 없었다. 심지어 강연이 시작되고 나서 사회자가 인사말을 부탁할 때도 밖에서 사인을 하고 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김현경 씨는 정지용 시인에게 시를 배우고 일본 문학과 프랑스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문학소녀였다. 김수영 시인과는 시 선생과 제자로 만나 1950년 결혼했다. 김수영은 시를 완성하면 꼭 먼저 김 씨에게 보였다고 한다. 그에게 아내는 첫 독자이자 비평가였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졌다. 김 씨가 임신 중일 때였다. 미처 서울을 떠나지 못했던 김수영은 인민군에 징집됐다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그리고 남쪽 경찰에 잡혀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이 과정에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긴 경험들을 통해 김수영은 금기와 허위의식을 깨는 특유의 모더니즘과 정직성의 시학을 잉태한 듯하다.

포로수용소를 나온 김수영은 아내 김 씨를 찾았으나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아내는 처음에는 돌아가자는 김수영을 거절했지만, 결국 다시 서울에서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아마도 이런 상황 탓에 김수영은 아내에게 애증 같은 것을 품게 된 지도 모른다.

이날 인사말에서 김현경 씨는 김수영을 위대한 시인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남편으로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해 청중들 웃음을 이끌어냈다.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91) 씨가 지난 16일 진주문고 여서재에서 열린 맹문재 시인의 강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김수영에게 아내는 어떤 존재였나 = 김수영의 시에는 아내를 때리거나 비하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그가 '반여성주의 시인'이란 비판을 듣기도 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게 아내를 '여편네'라 표현한 것이다. 김수영의 시 중에서 여성을 지칭한 것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어다. 다른 여성은 일반적이거나 객관적인 시어를 썼는데 유독 아내에는 그러지 않았다.

강연에서 맹문재 시인은 김수영의 이런 시어를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고도의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양계업을 하던 김수영이 수입과 지출을 두고 아내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담긴 '만용에게'란 시를 예로 들었다.

"(전략)나는 점등을 하고 새벽모이를 주자고 주장하지만/여편네는 지금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아니 430원짜리 한 가마니면 이틀은 먹을 터인데/어떻게 된 셈이냐고 오늘 아침에도 뇌까렸다.//이렇게 주기적인 수입 소동이 날 때만은/네가 부리는 독살에도 나는 지지 않는다//무능한 내가 지지 않는 것은 이때만이다 (후략)" - 김수영 '만용에게' 중

맹 시인은 이 시에서 '여편네'를 자유정신에 대한 적, 즉 자본주의를 상징한다고 봤다.

"시에서 나와 여편네의 싸움은 단순히 부부 간의 대결이 아니라 양쪽 속성 간의 대결이다. 나는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무능하고 소외된 존재이고 여편네는 역시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지배받고 있지만 나를 조종하고 억압하는 전문가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나의 여편네에 대한 공격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항인 셈이다."

김수영은 솔직한 시인이었다. 못난 모습도 숨기지 않았다. 이 정도로도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시인이다. 만약 그가 시에 이런 상징까지 마련했다면 위대한 시인이라 불릴 만하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