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시대 인간존엄성 상실 우려
'자연으로 돌아가라'철학 숙고할 시점

인류가 처음 지구라는 별에 등장한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과학·기술개발이라는 수단을 통해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왔다. 이와는 달리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그들이 처해있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고자 수십억 년의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주변 환경에 최적화될 수 있도록 '진화'라는 끊임없는 자기혁신의 적응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각자 나름대로 최적화된 현재의 모습으로 자연생태계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삶의 한 방편으로 선택한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눈부실 정도로 찬란한 문명을 이룩해온 인류의 역사가 새삼 경이로울 따름이다. 가령 기원전 7000년경, 인류는 도구의 발명 및 곡류의 재배·가축 사육에 성공해 수렵·채집의 빈약한 경제로부터 생산경제의 농업사회로 전환해 안정된 식량자원의 확보를 가능하게 했다. 18세기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증기기관과 전기 발명을 통해 재화의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에는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지식정보혁명을 통해 생산의 자동화를 완성했으며 작금에는 사물과 사물, 인간과 인간, 사물과 인간이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 그물망으로 초-연결된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컴퓨팅, 블록체인, 자율주행 등의 신기술이 차세대통신망으로 등장한 5G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된 혁신적 과학기술시대로 이해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에 기반을 둔 기술들의 최종목적지가 어디인지 현재로선 가늠할 수 없지만 혁신성장을 통한 삶의 질을 고도화하고 재해·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인간중심의 '스마트사회'를 우선 실현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2년 전인 2016년 3월,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적 바둑대결에서 알파고의 일방적 승리 직후 인류는 적지 않은 탄성을 자아냈다. 그 탄성의 의미는 인류가 그동안 성취해온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찬사일 수도 있겠지만 인류의 창조물에 추월당한 인류 지성의 쓰라린 패배에 대한 두려움과 씁쓸함이 녹아있는 깊은 탄식의 한숨일 수도 있다. 요즘 세간에는 10년, 20년 이후의 인공지능 및 로봇으로 대체될 일자리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적지 않다. 또한 하루가 달리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기술 영향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기술 관련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빠르게 재편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4차 산업혁명기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지는 등 기술적 열등감에 사로잡힌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필자의 생각으론 인류가 추구해온 과학·기술은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조화로운 삶의 방식에 비하면 미완에 불과하다. 비록 과학·기술의 영향으로 인류의 보편적 삶의 수준이 수천 년 전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삶의 질' 측면에서도 그러한지는 냉철히 곱씹어 볼 일이다. 결국, 편익추구를 위해 더 나은 과학·기술을 개발하려는 인류의 도전은 끝없이 지속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도전과정 속에 원래의 순수한 취지와는 다른 암묵적 위해요소가 내재해 있지 않은지 면밀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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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는 인류를 온전한 이상향의 세계로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을까?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윤리·도덕적 측면에서의 인간존엄성 상실이나 폐해는 없는 것인가? 효용성과 편익을 우선시하며 전광석화 속도로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과학·기술의 속성을 고려할 때, 인류의 문명발전이 불평등의 기원이 됐다고 주장했던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철학적 명제를 냉철히 숙고할 시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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