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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을 호령했던 물의 도시 베네치아

[괴테루트 따라 떠나다] (10) 시간 앞에서만 굴복했던 나라
중세시대 강대국 베네치아, 120개 섬 410개 다리로 연결
거미줄처럼 곳곳 이은 운하…화려한 궁전·성당 '인상적'

2018년 07월 03일(화)
시민기자 조문환 webmaster@idomin.com

해 질 무렵 나는 아카데미아다리 위에 걸터앉았다. 저 멀리 리도섬 너머 아드리아 해가 넘실거린다. 다리 아래에는 택시와 버스, 곤돌라가 쉼 없이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고 있다. 여기는 차원이 다른 세상, 그 누구도 이 나라를 정복할 수 없었던 오로지 시간이라는 대적에만 굴복했던 나라 베네치아 공화국이다. 결국 우리는 시간 앞에 항복할 것이다. 가장 느리지만 가장 빠른 발을 가진, 보이지 않지만 최강의 힘을 가진 시간 앞에 그대 또한 무릎을 꿇게 될 테니까.

14·15세기의 베네치아에 비하면 오늘날 베네치아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엄청난 부와 해상 권력을 손에 쥔 초강대국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인구를 20만 이상으로 추정한다. 눈을 감고 그날을 상상해 본다. 골목마다 가득 찬 세계 무역상, 금융업자, 선박 건조 기술자를 비롯해 밀수업자, 수입상과 이들을 꼬드겨 한탕 치는 잡배들까지 그 화려했던 시간을 상상해 보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괴테의 말을 빌리자면 베네치아는 우연히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이 합류하여 나라를 이루어 낸 일상의 나라가 아니라 필연성에 따라 가장 불리한 장소에서 그것을 가장 유리한 것으로 바꾸어 놓은 가장 영리하고 새로운 피조물이다. 모래와 늪지대가 견고한 바위로 바뀌고, 좁은 공간을 서로 나누며, 분리시키고 단절시킬 수밖에 없었던 바다를 오히려 연결하는 천재성을 발휘해 놓았다.

베네치아의 실핏줄과도 같은 운하. 베네치아는 180개의 작은 운하에 410개의 크고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나의 베네치아 첫 여정은 운하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물 가까이 가서 운하를 보는 것에 집중하였다. 가끔 운하로 접하지 못하고 좁은 막다른 골목길로 들어가더라도 다시 운하로 접하는 골목길로 찾아 들어오곤 했다. 결국 산타루치아 역과 리알토 다리를 지나 아카데미아 미술관과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광장으로 빠져나왔다.

올라오는 길은 운하를 건너 산마르코 광장에서 역순으로 올라와 산타루치아 역으로 올라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다음 날에는 운하와 접하지 않는 골목길을 무작정 걸었다. 걷다가 막다른 골목길이 생기면 어김없이 곁길로 빠지는 또 다른 골목길을 만나게 되었다. 설사 그렇지 않을 때라도 되돌아 나와 새로운 길로 접어들면 그만이다. 어디로 가든 연결이 되는 좁은 골목길이기 때문이다.

120개의 작은 조각 섬, 180개의 작은 운하, 410개의 크고 작은 다리로 연결된 물 위의 도시 베네치아. 거미줄 같은 운하 때문에 자칫 분리와 단절로 도시 자체가 형성되지 못할 처지를 오히려 연결과 통합의 논리로 바꾸어 놓았다. 기계적인 나눔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모래와 늪지대뿐이었던 바다에 말뚝을 박은 후 이를 견고한 바위로 대체시키고 역발상으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냈으니 분명히 그들은 이 땅의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이집트인들은 영원을 꿈꾸었고 바벨론인들은 지상의 천국을 꿈꾸었으며 로마인들은 세계 정복의 꿈을 꾸었지만 이들 베네치아인들은 그들만의 낙원을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리알토 다리에서 본 베네치아 대운하, 3.5km에 이르는 베네치아의 대동맥이다.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걷다가도 수많은 성당 안에 있는 무한정 가치 있는 보물보다 내 눈에 더 박히고 시선이 멈추는 곳은 허물어진 담장, 이끼가 끼고 때 묻은 대문, 오래된 호텔, 수십 년간 대를 이어 그 자리에서 음식을 파는 카페나 식당, 나아가 운하를 연결하는 수많은 다리였다. 베네치아를 베네치아답게 만든 것은 보석으로 꾸민 궁전이나 성당, 그 안에 장식된 그림 몇 점이 아니라 바로 나뉜 곳을 잇는 그 연결의 속성, 그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이 베네치아를 있게 한 것이다.

이튿날에도 운하를 따라 내려가기 위해 산타루치아 역 앞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역 광장이 소란스러웠다. 수천 명의 군중이 역에서 쏟아져 나와 대오를 지어 스칼지 다리를 건너 운하를 횡단하더니 다시 올라가 코스티투치오네 다리를 건너 역 광장으로 내려와서는 거대한 군중집회를 했다. 군중의 손에는 깃발과 피켓,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는데 행진하는 무리에 들어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맙소사 백신에 대한 자유를 요구하는 집회였다. 지금까지 이 도시에서는 10가지의 백신만 처방이 허용되어 시민들의 자율권이 훼손당했다는 주장이었다. 세계의 상권을 주름잡다시피 했던 대 베네치아공화국의 21세기 현주소를 보는 듯했다.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비우지 않고 채워져만 있는 도시다. 이곳에는 비움이라는 단어는 없지 싶다. 아카데미아 미술관과 산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의 미술관과 같은 곳의 캔버스나 천장, 벽면에 한 점의 빈틈도 없이 꽉 채워진 현란한 색상의 그림들과 사흘 내내 산마르코 광장에 운집했던 수많은 인파로 말미암아 머리가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아시아권 특히 우리나라의 전통 미술품들은 비움이 미덕이다. 새나 닭 한두 마리로 작품을 마감했던 우리 선조의 미적 감각이 얼마나 뛰어나고 철학적인지, 풍자와 해학이 가득했던 신윤복이나 김홍도와 같은 우리 선조가 위대하게 여겨질 뿐이다.

강자에 의해 쓰이는 역사, 뉴스조차도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 역사 속의 대가들은 왜 이들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일까?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지오반니의 그림들이 멈춰 서 있는 '동작 그만' 형이라면 우리 선조의 그림은 펄떡이며 뛰어다니는 생명체와 같다. 24유로짜리 미술관 통합 카드로는 입장하지 못해 12유로 입장권을 추가로 구입해서 배운 바다.

산마르코 종탑에서 본 산마르코 광장. /시민기자 조문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시간이 많다거나 시간이 없다거나 하는 말들은 시간이 내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망각한 것에서 나온 말들일 수 있다. 그러니 세상 모든 사람들은 시간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것을 깨달았던 베네치아인들은 시간에 무릎 꿇지 않아도 되는, 그 너머의 세상을 꿈꾸었을 수 있다. 이런 그들의 이상, 그들의 꿈, 그 꿈은 또 다른 꿈을 낳고 그 이상은 새로운 이상을 탄생시켰다. 도달된 꿈에 머문다면 그들은 베네치아인들이 아니리라. 동방을 정복하고 세계 무역을 주름잡았던 그들. 그들은 또 다른 이상과 이 세상 너머 또 다른 세상을 향한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일까? 은하수 너머 어느 별에 그들만의 별을 만들어 별을 연결하고 은하수를 연결하여 저 너머의 새로운 베네치아를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죽음과 같은 감옥에서 탈출했던 카사노바, 별과 같은 티치아노, 젠틸레 벨리니, 조르조네, 틴토레토, 베로네세, 티에폴로 같은 무수한 영웅과 함께 이미 그곳에서 운하를 놓고 있으리라.

이 작은 동네, 물로 나뉘었던 좁은 땅을 발판으로 삼아 수상 낙원을 이루었었던 그들, 지금쯤 그 어느 은하수에서 또 다른 운하를 만들고 다리를 놓고 있으리라. 나 언젠가 오늘 이렇게 좁은 골목길을 누비는 것처럼 곤돌라 하나 만들어 그곳에서 뱃놀이나 하련다. /시민기자 조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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