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왕년 톱스타 리건 꿈·명성 위해 연극 도전장
말러 교향곡 9번 제1악장 잊힘에 대한 덧없음 메시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재기 노리는 주인공 응원

한때 잘나가던 액션 히어로 배우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그는 영화 <버드맨>으로 할리우드를 지배하던 스타였다. 하지만 지금은 잊힌 배우로서 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오직 '버드맨'으로 돌아오느냐 마느냐일 뿐이다. 이제 그는 상업적 영화를 떠나 브로드웨이에 진출함으로써 자신의 새로운 커리어, 예술가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대역으로 들어온 마이크(에드워드 노튼)는 사랑받는 배우이기는 하나 제멋대로이고 재활원을 다녀온 딸 샘(엠마 스톤)은 아버지의 연극에 대하여 회의적이며 흥청망청했던 결과로 통장도 비어 딸에게 물려주기로 되어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할 지경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다. 점차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자신을 바라볼 자신이 없는 것이다. 잊히는 것은 곧 죽음이라 여기는 리건. 자신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자아 '버드맨'은 끊임없이 그에게 속삭인다. 다시 찬란했던 우리들의 시대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미 육체적인 매력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날아오르는 리건, 하지만 현실은 위태로운 옥상 끝이다. /스틸컷

세 번의 프리뷰 공연 동안 계속해서 불안한 해프닝들이 벌어진다. 연극 도중 실제로 술을 마셔버린 마이크는 리건의 멋진 대사를 망쳐버리고, 침대장면에서 마이크는 실제로 여배우에게 애정행각을 시도한다. 급기야 마지막 프리뷰 공연에서는 참극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마는데 잠시 공연장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중 입고 있던 가운이 끼워진 채 공연장 문이 그만 닫혀 버린 것이다. 자신이 등장해야 하는 장면이 임박한 리건은 가운을 벗고 팬티만 입은 채 공연장을 한 바퀴 돌아 극장으로 들어가고 결국 관객석에서 대사를 시작하게 된다.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근사하게 만들고는 말이다. 알몸의 리건이 뉴스를 장식하고 술집에서 우연히 공연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평론가를 만나 대화를 시도하지만 그녀는 혹평을 예고하고는 떠나버린다. 절망스러운 그는 한동안 끊었던 술을 마신다. 취한 리건은 길거리에서 잠이 들고 아침이 되자 '버드맨'은 그를 깨운다. 그러고는 속삭인다. 모두가 환호하는 버드맨으로 돌아가자고. 이 때 멋지게 날아오르지만 현실은 옥상 끝에 위태로이 서 있을 뿐이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그는 공연장으로 돌아와 첫 공식공연을 성공리에 마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의 권총은 가짜가 아닌 진짜다.

버드맨 모양의 붕대를 감고 있는 리건, 그는 살아있다. 예상된 혹평은 호평으로 바뀌었고 세상은 새로운 예술가의 탄생에 호의적이다.

그는 붕대를 풀고 '버드맨'에게 '꺼져'를 외치곤 창문으로 간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딸 샘은 병실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불안함을 느끼며 창 밖을 내다본다. 아래를 살피던 샘의 시선은 서서히 위쪽으로 향하고 얼굴에는 점차 웃음이 번진다.

자아 속의 '버드맨'은 늘 찬란했던 과거로 돌아가자고 주인공을 종용한다.

◇죽음의 교향곡 = 영화는 잊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하다. 화려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자아와 잊히지 않을 새로운 자아 만들기 사이에서의 갈등을 보여주면서 과연 보여주기 위한 자아가 진정한 자아인지에 대한 문제제기 또한 잊지 않는다. 영화는 잊힘과 사랑받지 못함은 곧 죽음이라고 연극 속 대사와 영화 속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말하지만 사실은 그 허무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곤 타인의 관심과 사랑에 얽매이지 말라 한다.

"아빠의 연극, 관객은 신경 쓰지 않아요, 단지 공연이 끝나고 어디서 커피를 마실지가 그들의 관심사일 뿐이에요."

첫 번째 프리뷰 공연 날, 사랑에 관해 논하는 리건, 장면의 배경음악은 오스트리아 작곡가 '말러'의 '교향곡 9번' 제1악장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죽음의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 곡이 고결한 사랑에 관한 대사의 배경음악인 것이다. 이 교향곡의 악보에는 '젊음이여 사라졌구나 사랑이여 가버렸구나'라는 문구로 죽음의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그 선율이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고별'의 선율과 닮아 있어 이별의 주제로 불리기도 한다. 작곡 당시 말러는 건강상태가 좋지 못했다. 늘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던 그는 9라는 숫자에 너무나도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의 9번째 교향곡에 번호를 붙이지 못하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교향곡에서만큼은 9라는 숫자를 피하지 못했다. 여러 측면에서 죽음과 연결된 음악임에는 분명하다. 어쨌든 이러한 역설적인 배경음악을 두고 어느 노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의 사연을 설파하는 리건, 이때 술에 취한 마이크가 왜 자신의 술을 가짜(물)로 바꿨느냐며 술잔을 집어 던지고 무대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그러고는 관객에게도 주정을 부린다. '가짜 삶을 살지 말고 진짜 삶을 살아'라고 무대의 배우가 관객에게 말이다. 뭔가 거꾸로 돼도 한참 거꾸로인 셈이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제2악장 = 길거리에서 잠이 깬 리건의 뒤를 따라오며 '버드맨'이 속삭인다. 화려했던 과거로 돌아가자고. 이때 날아오르는 리건, 하지만 현실은 옥상 끝에 위태로이 서있는 자신이다. 정신을 차리고선 돌아서 가려던 그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그는 빌딩 숲을 자유로이 날아 극장에 도착한다. 이때 신비롭게 흘러나오는 음악은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의 제2악장이다. 이제 리건은 바뀌어 있다. 늘 불안하던 그의 모습에 평온함이 넘친다. 왜 이 곡을 사용했을까?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의 참혹한 실패로 인한 깊은 트라우마에 오랜 시련의 시기를 보낸다. 그러던 그는 정신과 치료를 통해 극복의 시간을 보내고 피아노협주곡 2번을 통해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하지만 아직도 교향곡은 자신에게 두려운 영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보란 듯이 명작을 탄생시킨다. 그러곤 차이콥스키의 후예라는 칭호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교향곡 작곡가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따라서 이 곡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날아오르는 리건에게 보내는 응원가가 아닐까? 다른 악장도 아닌 활기로 가득 찬 2악장을 사용함으로써 말이다.

클래식은 아니지만 이 영화의 OST에 관련해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이 있다. 바로 멕시코 작곡가 '안토니오 산체스'.

팻 매스니 재즈그룹의 드러머였던 그는 현재 '마이그레이션'이라는 자신의 재즈그룹을 창단해 활동하고 있는 실력 있는 재즈 드러머이다. 드럼 작곡가라는 말이 생소하겠지만 그의 음악과 연주는 영화에 몰입도와 긴장감, 그리고 생동감을 주는 데 큰 역할을 하며 영화를 관통하여 흐르는 그의 드럼 소리는 영화의 재미를 더해 준다. 영화에 클래식이 너무 많이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니 참으로 융통성 없는 처사다.

옥상 끝에 서 있는 리건을 조심히 끌어내린 이가 묻는다.

"도와줄까요? 어디로 갈지 알고 있어요?"

끊임없이 '사랑받지 못하니 나는 존재하지 않아'라고 말하던 리건, 이제 그는 과거의 '버드맨'에게 작별을 고한다. 다시 날아오를 준비가 된 것이다.

"예, 어디로 갈지 알고 있어요."

/시민기자 심광도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