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참 좋았던' 정치인 노회찬
짓누르던 고뇌 내려놓고 영면하시길

변함없이 하루가 밝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멀쩡하게 떠오른 태양이 야속하다. 뜨거운 날에 차갑게 식어서 누워있는 그와 맞는 오늘 아침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계속 훌쩍이는 사람. 장례식장에서는 웃어야 한다면서 엉뚱한 얘기로 분위기를 독려하다가 제풀에 꺾이는 사람. 수십 년 만에 만나서 악수한 손을 쩔쩔 흔들다가 부둥켜안고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 그릇에 숟가락을 꽂은 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사람. 어딘가 억지스럽게 떠드는 사람. 줄어들지 않는 조문객들의 비통.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비보를 접하고서 생각은 갈피를 놓쳤고 가슴은 뻑뻑하니 숨이 막히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가 제 시간에 출발하고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게 갑자기 이상하게 여겨졌다. 내겐 현실이 아니었다. 근원도 불확실한 둔탁한 통증이 전신을 휘감았고 그것만이 현실이었다.

노회찬.

한 번 가면 누구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그가 먼저 간 것이 슬프다. 이렇게 사람을 아프게 하고 떠날 인간인 줄 알았다면 그와 보낸 내 시간 일부를 회수했을 것이다. 안타깝다. 장례식장에서 이런 식으로 만나야 할 줄 알았다면 지난달 있었던 인민노련동지회 정례 모임에 무리를 해서라도 갔었을 것이다. 전화라도 한 번 더 했을 것이다. 그의 아내 김지선과 통화만 할 게 아니라. 2010년 어느 날이었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그가 선거일을 앞두고 내가 사는 두메산골 장계에 왔었다. 조촐한 내 출판기념회에 와서 "서울시장 떨어지면 전희식이 때문이다"고 했었다. 작년, 또 다른 나의 출판기념잔치에 온 그가 "전희식이가 왜 정치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나는 "노회찬이 왜 아직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고받았다. 이런 그의 입담을 다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멘다.

노회찬은 내가 몇 다리 건너고 건너서도 도무지 인연이 닿지 않을 사람들과 통했고 모두에게서 사랑받았다. 그가 서울 목동의 어느 아파트에 살 때 하룻밤 잔 적이 있는데 밤이 늦어도 꼬박꼬박 귀가한다는 걸 알았고 농부인 내가 일어나기도 전인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는 걸 봤다. 용접공 때처럼 부지런했고 의지는 무쇠처럼 단단해 보였다. 누구에게나 공손했고 누구도 험하게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참 좋은' 사람이었다. 2004년이던가.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8번으로 입후보하여 새벽 2시가 넘어갈 때 3김 시대의 마지막 인물인 김종필을 밀어내고 국회의원이 될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가 도달할 정치 여정의 다음 선택이 늘 궁금했고 활약이 눈부셨으며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 그가 죽음으로 전해야 할 말이 무엇이었단 말인가. 죽음으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었단 말인가. 말과 행동, 일상과 과거, 모든 선택과 미래까지 그를 사랑하고 지지했던 월 1만 원 후원인의 한 사람으로서 죽음이라는 그의 선택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오늘이 너무 슬프다. 아파트 난간에 올라서서 그가 느껴야 했던 절벽과 깜깜함에 가슴 저민다. 귀한 집 자식으로 태어나서 작업복 기름밥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감옥살이도 기꺼이 감내하던 그가. 그가 지닌 양심으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의 올가미에 걸려서 몸을 던져야 했던 고뇌의 무게를 감히 가늠할 수 없다. 검찰과 언론의 밥이 되어서 당할 모욕은 견딜 수 있겠으나 스스로를 변명하며 자신의 말을 뒤집어야 하는 자기를 견딜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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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그렇게 가는가. 황망하게 가는 걸음 잠시 멈추고 벗들이 따르는 술 한 잔 받으시길. 사랑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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