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록이 준 영감 담은 국내외 서예 600점 모아

글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붓으로 써내려간 거친 필획은 함성이고 외침이다.

'서예를 읽다'가 아니라 '서예를 보는' 전시. 2018 문자문명전 '즉사즉서(卽事卽書):문자는 역사다'전이 8일 오후 5시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개막한다.

매년 '다호리에서 디지털'까지라는 대명제가 붙는 문자문명전은 붓이라는 도구가 지닌 미학성을 실험하고 검증하는 문자 중심 전시다. (사)문자문명연구회가 2009년에 시작해 창원을 중심에 두고서 국내외 작가들과 함께 열고 있다.

왜 창원이 뿌리일까? 지난 1988년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발견된 붓 다섯 자루는 한반도 문자 문명사 출발점이 됐다. 당시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붓만으로도 기원전 1세기에 중국 전한과 교역하며 문자를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호리 유적 출토 붓은 최초 문자 사용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붓은 고고학에만 이바지한 게 아니다. 예술가들에게 상상력을 안겨줬다. 그 시대 사람은 어떤 높낮이와 음성으로 말을 했을까, 문자는 그 음성을 어떻게 담아냈을까 하는 물음을 던졌다.

예술가들은 문자문명전에서 이를 풀어냈다. 올해는 역사적으로 남은 기록과 글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가마다 즉각적으로 반응해 즉흥적으로 표현한 서예 600여 점을 성산아트홀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오롯이 한자만 쓴 것부터 글인지 그림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작품, 글은 온데간데없고 선으로만 이뤄진 그림도 있다.

본 전시라고 할 수 있는 1~3전시실은 순서대로 △독사유감(讀史有感·역사를 읽고 느낀 바를 쓰다) △방필종횡(放筆縱橫·종횡무진으로 붓을 휘두르다) △의재필선(意在筆先·뜻이 먼저 이루어지고 뒤에 붓으로 쓰다)이라는 주제를 달았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작가 20여 명은 상형문자에서 출발한 한자의 미적 요소를 더할 나위 없이 드러내며 자신만의 글을 창조해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등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풀어낸 작품이 몇몇 있는데, 어느 하나 같지 않다. 1980년을 현재화해 일회성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을 1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김성덕 '표승배-마산 2018년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지점에서'

중국 작가 10여 명의 작품을 모아놓은 2전시실도 마찬가지.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예술 탄압에 대한 작가들의 거친 항의를 붓의 리듬에서 느낄 수 있다.

3전시실에서는 시와 문학적으로 빼어난 문장에 일렁거린 작가 10여 명의 내면을 만날 수 있다.

부대 전시로 나뉘는 4전시실은 일물일서(一物一書·한 사물에 하나의 문자 쓰기)라는 주제로 도내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작품을 내놓았다. 또 5전시실은 신예 작가들이 독시서의(讀詩書意·시를 읽고 그 의미를 쓰다)에 맞게 참신한 글을 내걸었다.

이와 함께 6~7전시실에서는 창원문자예술공모대전 입상작 전시 작품을 볼 수 있다.

최규태 '등(登)'

김종원 2018 문자문명전 기획·운영위원장은 "글을 읽는 전시가 아니다. 작가들의 심미 방법을 보는 자리다. 하나의 사실을 하나의 표현으로 창작했다는 점을 고려해 관람하면 좋겠다. 그림을 보듯 그저 바라보면 된다. 그러다 내용까지 알게 된다면 더 좋다"고 설명했다.

필획의 움직임을 따라 붓의 리듬을 느끼고 공간의 구성을 보는 것. 붓이 지닌 예술성과 마주하는 게 문자문명전 관람의 핵심이다.

전시는 18일까지. 여는 행사는 오후 5시에 시작하고 이에 앞서 오후 4시에 창원문자예술공모대전 시상식이 열린다. 문의 055-719-7833.

노상동 'Snow(눈)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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