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여자 사무관이 결혼을 하지 않고 임신한 경우 그 여성을 향해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이는 정말 미개인이다. 비혼모들을 축복해주고, 마음을 열어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저출산 대책 주무부처 수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이다. 박 장관은 지난달 19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 전환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언급했다.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 전환이 있어야 비로소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다는 파격 발언이다.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비혼 출산을 언급한 것은 기존의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현 정부의 첫 저출산 대책이 여성의 삶에 집중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했고, 비혼 가족에 대한 인식 개선은 진일보한 측면이다. 하지만 과거의 정책을 추가 지원하는 방식으로만 간다면 저출산을 극복하기가 어렵다. 요즘 여성들은 자아실현 욕구가 아주 강하다. 국가가 주관하는 각종 시험에서 거센 여풍이 부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어려서부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생존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철저히 사회화하고 준비해 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부당한 차별에 대해선 무섭게 분노하고 자신의 경력은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결기나 의지가 강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도 취업은 무척 어렵다. 괜찮은 일자리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거니와 남성 선호 관행 때문에 은밀한 차별과 배제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결혼을 하게 되면 경력 단절의 위험에 노출될 공산이 크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결혼할 경우 남성은 배려 대상이 되지만 여성은 배제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독박 육아도 경력 단절의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최근 통계청은 혼인 건수와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5월 출생아 수가 2만 7900명으로 3만 명을 밑돌았는데, 이는 월별 출생아 수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81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정부는 저출산 해소를 위해 2006년부터 126조 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저출산 현상은 날로 심화했고 급기야 월별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제 저출산 대책에도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재정을 투입해 경제적 지원을 늘리면 당연히 출산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도식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비혼주의와 저출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집단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일과 경력에 대한 고민이 크고 불합리한 차별을 용납하지 못하는 젊은 고학력 여성들이다. 따라서 결혼과 출산에 매우 소극적인 이 여성들의 분노를 달래고 자아실현의 열망을 담아낼 수 있는 여성 친화적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데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점점 나빠질 개연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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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2030세대 여성은 엄마 세대가 다른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고 희생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을 그리며 또래 남성들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살며 실력을 쌓은 이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넋 나간 짓으로 여기지 않도록 세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 초저출산 현상도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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