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주석 선생이 독립유공 훈장을 받는다.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유족과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는 이번 독립유공자 서훈 소식에 크게 기뻐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서양화가인 선생의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활동을 재조명해온 결과물로 함께 축하할 일이다. 지역민이 숨은 지역사를 발굴해낸 성과여서 의미가 더욱 크다.

선생의 소년기는 파란만장했다. 경성전기학교와 항일결사대 활동을 통해 그의 애국정신을 엿볼 수 있다. 선생은 항일결사대 학우동인회를 조직해 빼앗긴 강토와 자주독립 국가를 쟁취하고자 노력을 다할 것을 맹세하면서 애국심을 키워갔다. 개인투쟁록을 쓸 만큼 절박한 소년 시절을 보낸 것이다. 특히 당시 헌병대 고문인 손가락 사이에 나무를 끼우고, 곽 안에 몸을 쑤셔넣은 다음 수돗물을 붓고, 손톱 밑에 송곳으로 구멍을 내는 등 헌병대의 악랄한 고문을 기록으로 남겼다. 덧붙여 선생은 고문도구인 몽둥이와 수막줄, 고랑쇠, 혁대, 송곳, 물통도 상세히 그려넣어 그 시절을 증언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생은 고문을 당한 후 환청에 시달리며 잘 걷지 못하는 등 신체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출소 후에도 병마를 견뎌내며 진해, 마산 지역에서 40여 년간 마산여중과 마산제일여중고 등에서 미술교사를 했다. 1955년에는 마산 최초의 미술단체인 흑마회 창립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마산에서 작가 활동도 펼쳤다.

한편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유족들이 선생이 살았던 주택을 사비 4000만 원을 넘게 들여 '괴암 김주석기념관'으로 꾸며서 흔쾌히 사회에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생전 화실로 썼던 2층은 갤러리로 만들었고, 1층에는 선생의 기록물이 정리되어 있다. 선생이 독립유공 훈장을 받게 되면서, 선생의 가족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지역사를 재발견해 국가로부터 공인까지 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이참에 지역사 속에 묻힌 보석 같은 인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그 후손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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