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사격 고샅고샅] (1) 주인 없는 실탄 이야기
당시 조직위서 지원 받고도 북측 못가져가…창원사격장에 보관

오는 31일부터 창원국제사격장에서 2018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열린다. 본보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경남 사격 역사에 걸쳐있는 흥미·감동 스토리를 발굴해 연재한다.

경남 사격은 국내에서도 최강에 속한다. 5년 연속 전국체전 종목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 중심에는 경남대-창원시청으로 이어지는 선수 연계육성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조현진 대구시설공단 감독은 3대 사격 가족으로 유명하다. 고 조경래 경남사격연맹 부회장이 아버지이고, 아들 조용성과 며느리 김민지는 창원시청 현역 선수로 뛰고 있다. 조 감독은경남대·창원시청 감독과 국가대표 코치·감독을 역임했고 올해 초 대구시설공단 클래이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조 감독의 입을 통해 경남 사격 역사 곳곳에 스며있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창원국제사격장 탄약고에는 주인 없는 실탄이 수천 발 있다. 처음부터 주인이 없지는 않았지만 특수한 상황 때문에 쓰지도 버리지도 못해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 아닌 애물단지다.

조현진 감독. /경남도민일보 DB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은 선수단과 함께 대규모 응원단까지 파견해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될 때였다.

부산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는 북한 사격 선수단에 경기용구 지원 차원에서 2000만 원을 들여 이탈리아산 실탄을 사줬다.

당시 북한 선수단은 중국제 실탄을 가지고 왔는데 이탈리아산보다 품질이 낮았다. 그런데도 북한 선수들이 이탈리아산 실탄을 아끼면서 잘 안 쓰더라. 나중에 알고 봤더니 좋은 실탄을 많이 남겨 북으로 갈 때 가져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북한 선수단은 남은 실탄을 가져가려 했지만, 우리나라 법령에 가로막혀 그럴 수 없었다.

어느 나라든 총기류의 국제 이동은 엄격히 제한된다. 사격대회 특성상 총과 실탄 운송이 필요하지만 엄격한 관리 아래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데 북한 선수단이 가지고 들어오지 않은 탄약을 가지고 나갈 수는 없었다. 당시 남북관계가 좋았으니 가져갈 수 있게 하려고 여러 경로로 알아봤지만 결국 가져가지 못하고 대회가 열렸던 창원국제사격장 탄약고에 보관하게 됐다.

이후 부산아시아드 조직위가 해산되면서 주인 없는 실탄이 되고 말았다. 시설공단과 경남사격연맹은 이후 이런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고 전부 불용처리했다. 이 실탄은 있으면서도 없는 실탄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북한 선수단이 이 실탄의 존재를 알고 있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북한 선수단이 당시 일을 말하면서 이번 대회에서 쓸 수 있는지 물어보는데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벌써 16년이 지난 탄약이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창원사격장 탄약고에 있는 '임자 없는 실탄'은 남북 분단의 흔적이자 화해 협력의 단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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