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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타고 유라시아 횡단] (14) 사라진 아랄해와 2차 세계대전 격전지 볼고그라드

바다에 있어야 할 고기잡이배가 왜 박물관에…
카자흐스탄 아랄스크 인근
황무지로 변한 '아랄해'
물고기 멸종·어촌 사라져
러시아 남부 볼고그라드
2차세계대전 최대 격전지
스탈린 사후 지명 바뀌어

2018년 09월 05일(수)
시민기자 최정환 webmaster@idomin.com

날씨가 너무 더웠다. 오토바이 계기판에 외부온도가 4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을 통과해서 유럽으로 향하고자 했던 계획은 좀 더 시원한 곳을 찾아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다시 북쪽 카자흐스탄으로 입국하기 위해 국경에 도착했다.

많은 차량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도 차례를 기다리는데 근처에 기다리고 있던 현지인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에워쌌다. 우리가 한국사람이란 말에 웃으며 TV프로그램 <대장금> <주몽>이야기를 한다. 이곳에도 예전부터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했다. 요즘에도 TV를 켜면 어김없이 한국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우리 차례가 되어 국경으로 들어갔다.

▲ 카자흐스탄 아랄스크 야외박물관에 전시된 고기잡이배.

◇바다 흔적만 남은 아랄스크

우즈베키스탄의 국경은 짐 검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예전에는 휴대폰에 저장된 파일까지 하나하나 열어 검사했다고 한다. 우리 앞에 선 국경사무소 직원도 가방을 일일이 하나하나 다 열어 검색했다. 지갑 안에 든 돈도 세어 그 액수를 종이에 적었다. 그렇게 2~3시간을 소비하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에 들어와 가장 먼저 '투르키스탄'이라는 도시를 찾아갔다. 투르키스탄은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쉼켄트'에서 약 15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는 아주 유명한 유적지가 하나 있는데 바로 이슬람교에서 마호메트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다는 아사위의 영묘다. 아사위는 자신의 종교적인 깨달음을 투르크 토착어를 사용해 시와 설교로 풀어냈다. 사망 후 그의 무덤은 많은 이들이 찾는 성지가 됐고 1390년대 티무르 황제의 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내부에는 박물관처럼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투르키스탄을 지나오니 이번에는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졌다.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인지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에는 그저 잡초만 무성했다.

광활한 스텝지역을 사흘을 달려 '아랄스크'라는 도시에 닿았다. 아랄스크 옆엔 '아랄해'라는 바다가 있는데, 주변의 커다란 강줄기 2개가 이곳으로 흘러든다. 과거 소련시절 강 상류지점에 수많은 댐과 보가 건설됐다. 그렇게 가둬둔 물은 인근 목화밭에 사용되고 지금은 예전 10분의 1 수준의 물만이 바다로 흐른다고 한다. 그 때문에 아랄해 염도가 올라 각종 물고기들이 멸종했고, 한때 시끌벅적했던 항구는 이제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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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볼고그라드 '조국의 어머니상' 앞에서 아들과 함께.

현지에 오기 전 지도를 볼 때 아랄해는 아주 크고 선명하게 표시돼 있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이곳 아랄스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수백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었다. 한때 고기잡이를 했던 배들이 이제는 야외박물관의 전시물로 남아 과거 이곳이 항구였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이다. 이곳에는 목화밭을 일구어서 행복해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바다가 없어져서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다시 서쪽을 향해 달렸다. '악토베', '오랄'이라는 도시를 지나 다시 국경을 넘으니 러시아가 나왔다. 러시아가 정말 넓긴 넓은 나라인가 보다. 벌써 세 번째 러시아에 입국했다. 신기하게도 어디서든 북쪽으로 올라가면 러시아로 통한다. 우리는 조지아로 가기 위해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볼고그라드에서 만난 한국인

얼마간 달려 우리는 러시아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도시 볼고그라드에 도착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오토바이를 정비소에 맡겼다. 그간 거쳐 온 중앙아시아 국가에는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제대로 된 정비소가 없었다. 이곳에서 타이어를 교체하고 엔진오일도 갈았다.

오토바이를 정비한 후 우리는 볼고그라드에서 유명한 '조국의 어머니' 동상을 찾았다.

아래에서 위로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만큼 동상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그 주변을 둘러본 후 주차장으로 가는데 한국말을 쓰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동안의 여행경로는 한국인들을 보기가 어려운 지역이었다. 나는 반가워서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한국인들 중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계셨는데 서울 광화문 앞에 위치한 새문안교회의 정균오 목사님이라고 했다. 러시아에만 25년간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일행들은 한국에서 2주간 선교봉사를 하러 온 대학생들이라고 소개했다. 지훈이와 나는 목사님 일행을 따라 볼고그라드 전쟁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전쟁 박물관에 입장을 하니 목사님의 전쟁 박물관 가이드가 이어졌다. 과거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군과 소련군의 최대격전지였다고 한다. 치열했던 전투에서 결국 러시아가 승리하게 되고 독일인 포로가 9만 명 발생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아직도 많은 독일인들이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독일과 볼고그라드 간의 무역량이 현재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이뤄지는 무역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또 예전에는 지명이 스탈린그라드였으나 스탈린이 죽은 후 볼고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인근에 볼가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볼고그라드 사람들은 운전하는 습관이 러시아의 다른 도시 사람들과 좀 달랐다는 점이다. 보통의 러시아 도시에선 신호를 잘 지키고 보행자도 잘 보호를 해줬다. 그런데 여긴 신호등불이 노란색으로 바뀌면 정지를 하지 않고 너도나도 속력을 높여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교차로에서 일어난 접촉사고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었다.

격렬했던 전쟁의 영향이 도시의 교통 문화에도 영향을 주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꼭 우리나라처럼.

박물관 관람 후 목사님의 초대로 근처 유명한 러시아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았다.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 선교 활동 온 대학생들은 모스크바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고, 목사님은 이곳에 남아 선교활동을 계속하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배웅 속에 우리는 다시 남쪽으로 러시아 부됴놉스크를 향해 출발했다.

/글·사진 시민기자 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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