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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알고도 과잉진압 용산참사 원인"

경찰 진상조사위 조사결과 발표
유가족, 김석기 수사·처벌 촉구

2018년 09월 06일(목)
제휴뉴스 webmaster@idomin.com

2009년 1월 용산참사 당시 경찰 지휘부가 화재 등 위험 발생 가능성을 예상하고도 무리한 작전을 강행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5일 이 같은 내용의 용산참사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당시 숨진 경찰특공대원과 철거민들에 대한 사과, 조사 결과에 대한 의견 발표 등을 경찰청에 권고했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19일 철거민 32명이 재개발 사업 관련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빌딩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하던 중 경찰 강제진압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 경찰관 1명과 철거민 5명이 숨진 사건이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경찰은 1월 19일 철거민들이 망루 농성을 시작하자 조기 진압과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 이어 서울경찰청 지휘부 회의를 거쳐 진입작전 계획서가 작성돼 당일 오후 11시께 최종 승인됐다. 작전계획서에는 망루에 시너, 화염병 등 위험물이 많고 농성자들이 분신·투신·자해 등을 할 우려가 있다는 예측이 언급됐다. 이런 판단에 따라 대형 크레인 2대와 컨테이너, 에어매트, 소방차 등 152개 장비가 계획서에 적시됐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 투입된 크레인은 1대뿐이었고, 에어매트는 설치되지 않았다. 소방차는 일반 화재 진압에 쓰이는 펌프차 2대만 투입됐고, 유류 화재진압용 화학소방차는 계획서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용산참사 조사 결과가 발표된 5일 경찰청 앞에서 열린 용산참사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한 유가족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특공대원들은 사전 예행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됐다. 특공대 제대장은 작전 연기를 특공대장과 서울청 경비계장 등에게 건의했으나 거절당했고, 이튿날인 20일 오전 6시30분께 작전이 개시됐다. 특공대가 옥상에 1차 진입하고,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지는 등 저항하는 과정에서 1차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 지휘부는 망루 내부에 인화성 유증기가 가득 찬 상황에서도 특공대원과 농성자를 위한 안전조치나 작전 일시중단·변경 없이 특공대를 2차 진입시켰고, 이후 참사로 이어진 2차 화재가 발생했다. 조사위는 "2차 진입 강행은 특공대원과 농성자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무리한 작전 수행이었다"며 "1차 진입 후 유증기 등으로 화재 발생 위험이 커진 점 등을 파악해 적절히 지휘해야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후 전국 사이버 수사요원 900명을 동원해 용산참사와 관련한 인터넷 여론을 분석하고, 경찰 비판 글에 반박 글을 올리는가 하면 각종 여론조사에도 적극 참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 지시가 발단이 돼 이뤄진 조치로 드러났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사건 파장을 막고자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다만 경찰이 이를 실제 이행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이하 규명위)는 당시 경찰 지휘부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규명위는 이날 서울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석기(자유한국당 의원)의 살인진압 지휘, 여론조작, 검찰수사 개입 등 위법행위가 확인됐다"며 "김석기를 즉시 수사하고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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