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운동의 발상지
문화예술 수도로 꽃폈지만
괴테는 의아하게도 스쳐가
나흘간 골목·광장 등 누벼
작가마다 달리 표현한 다윗
몸매·표정 등 차이 '뚜렷'

피렌체의 혈액형은 무엇일까? A형? 사상 체질로 한다면 태양인? 아닐 수 있다. 피렌체가 하나의 인간이라면 그는 모든 혈액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든 체질을 다 가진 통합형 인간 일 수 있다. 이 도시를 거쳐 가지 않은 인물이 없을 만큼 수많은 사건과 화제를 남겼고 결국에는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문명의 꽃을 피워 냈으니 어느 하나의 체질이나 혈액형으로는 감당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괴테는 이곳 피렌체를 스쳐만 갔다. 르네상스적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그가 르네상스의 발상지를 돌아보지 않았다니. 문학은 물론 건축, 미술, 지리와 토양, 심지어 색채까지 손대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 해박했던 괴테라 그와 체질이 비슷할 것 같은 피렌체를 깊이 보지 않고 스쳐만 갔다는 것은 그를 따라 여행을 하는 나 같은 사람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어쩌겠는가? 그의 머리에는 오로지 로마뿐이었던 것을. 하지만 그가 스쳐만 갔던 피렌체에 나는 4일간 머물렀다. 비록 괴테가 피렌체에 대하여는 논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피렌체를 무시하거나 그 가치를 몰라서였겠는가? 비록 그는 스쳐 갔지만 나는 그의 눈과 가슴이 되어 피렌체를 누빈다. 골목에서 그와 대화하고 그의 눈빛과 표정을 읽는다. 그가 머물렀을 법한 장소에 쪼그려 앉아 그의 생각을 듣는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다윗상.

그중에 괴테도 발걸음이 멈췄을 법한 사건이 나를 이끌었다. 이틀 연속 시뇨리아 광장으로 나갔다. 메두사의 머리를 벤 페르세우스상 아래에 오랫동안 앉아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윗상

그 바로 맞은편에 있는 다윗상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했다. 다윗의 몸매와 얼굴은 이상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조각상에는 비대칭의 미감이 충만하게 흘러내렸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이 이 하나의 작품에 모조리 압축되어 있어 보였다.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그 또한 나의 여행처럼 주관이나 직관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예술에 객관이 붙어 버리면 무엇이라 불러질까?

하체에서 상체로 올라갈수록 미감과 안정감은 뚜렷해지고 균형은 더욱 절묘하다. 사람의 육체를 저토록 황홀하고 매력에 빠져 들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신이 내린 천재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예술적 표현에만 집중한 까닭인지 저 자세와 몸매로 골리앗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얼굴 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제압했던 다윗이라면 분명 뭔가 그 얼굴에 나타나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쉽사리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10분, 20분,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응시한 나의 시선과 그의 시선이 마주치고 불꽃이라도 튀길 듯이 시선이 부딪쳤다.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리면 이루어지듯이 나의 시선 속에는 그런 간절함이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진지한, 그 속에서 차갑게 빛나는 다윗의 시선은 살아 있었다. 그 시선은 분명 골리앗을 향하고 있었다.

바르젤로 미술관의 도나텔로 다윗상. 마치 소녀처럼 어여쁘게 조각되어 있다.

팔과 다리와 같은 육체 간의 비대칭이 육체와 표정 간의 비대칭으로도 표현되어 있었다. 다윗의 부드럽고 황홀한 몸매와는 달리 그의 얼굴과 표정을 읽게 된 순간 나의 우려는 다소 풀어졌다. 미켈란젤로는 이런 것까지 숨겨 놓았을 수 있다.

점심을 거른 채 꼬박 두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내가 본 모사품이 과연 실물에도 그렇게 표현이 되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멀리서부터 광채가 밀려왔다.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된 다윗상 자체만으로도 빛을 발할 수 있었지만 돔형의 지붕으로부터 밝은 빛이 들어와 다윗상에 비치고 이것이 미려한 몸매와 합쳐져 뿜어 나오는 광채가 온 미술관을 빛으로 덮어 놓았다.

과연 실물의 그 얼굴에도 골리앗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연에 차 있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물맷돌, 그리고 왼쪽 어깨에 짊어진 물맷돌 주머니, 그의 차가운 시선은 왼쪽으로 45도 돌려져 있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500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는 바르젤로 미술관에는 다른 다윗상이 두 점이나 더 있다. 도나텔로의 다윗상과 그의 제자 베로키오의 다윗상이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표현해 놓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바르젤로 미술관은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와 이들 두 예술가들의 지명도가 다르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 작품들은 미켈란젤로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이었다. 청동으로 제작되어 검은색 계통의 색상일 뿐 아니라 체구도 왜소하고 연약해 보였다. 심지어 도나텔로의 작품에 나타난 다윗의 몸매는 여자를 연상시킬 정도로 예쁘고 약해 보였다. 나는 바로 곁에 서 있는 두 개의 다윗상을 번갈아 보면서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비교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미켈란젤로의 다윗상과는 대조적으로 이들의 몸매는 왜소하지만 단호했고 반면 얼굴에는 만면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승리 후의 안도감, 승리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실적인 것보다는 이상적인 것을 더 선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바르젤로 미술관에 입장하는 데에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뇨리아 광장.

◇문화예술의 수도

나는 다시 메두사의 목을 자른 페르세우스 청동상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바라만 봐도 돌로 변해 버린다는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 세상을 향해 자랑삼아 들어 보이는 페르세우스의 용맹이 살기 넘치게 드러나 있다. 이를 조각한 사람은 폰테 베키오 다리에 흉상으로 서 있는 벤베누토 첼리니다. 저녁 무렵에 폰테 베키오 다리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페르세우스 청동상을 그려보았다.

시뇨리아 광장의 다윗상과 페르세우스상은 불과 3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마주보고 서 있다. 성경 속의 다윗, 그리스 신화 속의 페르세우스, 이들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을 리 만무하다. 오로지 메디치가와 반메디치가의 대리자일 뿐인 이들, 사람들이 신과 성경 속의 인물들을 그들의 전선에 내 세운 것이다.

꽃의 도시라고 불리는 피렌체. 인간의 정신을 일깨운 르네상스를 일으킨 도시. 로마가 정치적 수도였다면 피렌체는 문화와 예술의 수도가 되어 매년 수천만 명이 찾아와 감상하는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이 되기까지는 10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정복과 정복의 피의 전쟁, 흑사병으로 인한 도시 멸망의 위기, 다윗과 페르세우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가슴 쓰려 했던 단테와 베아트리체, 평생 경쟁적 관계로 지내야만 했던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 메디치가와 반메디치가의 운명적 원수들, 이들이 함께 어울려 피어낸 꽃이다.

괴테에게 물어본다. 과연 꽃은 아름다운 들판에만 피어나는가? 한 인간의 삶도 그렇듯이 도시나 국가, 인류 전체를 통틀어 바라본 역사 또한 진흙탕에서 뒹굴고, 쓰러지고, 그 가운데에서 꿈틀거리는 새로운 세력이 올라왔으니 꽃인들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글·사진 시민기자 조문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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