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와 폭발 사고 위험 없는 배터리 기술을 국내 연구진 손에서 개발됐다.

최근 스마트폰 등 배터리 폭발 사고로 발화와 폭발 위험이 없는 안정화된 '전고체전지'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과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전고체전지 실용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활물질-고체전해질 경계에서의 높은 저항(계면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극 제조기술을 개발했다.

전기 전문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KERI·원장 최규하) 전지연구센터 하윤철 박사(책임연구원)팀은 자체 정부출연금 사업으로 '섭씨 160도 저온에서도 결정화가 가능한 고체전해질 원천 기술'과 이를 이용한 '슬러리 코팅 방식의 고용량 활물질-고체전해질 복합전극 제조 원천기술'을 개발했다고 19일 밝혔다. 활물질은 리튬이온을 흡수 또는 방출하면서 전기를 저장하거나 생성하는 소재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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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윤철 KERI 전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 도포된 슬러리(왼쪽)와 슬러리용액(오른쪽)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전기연구원

1991년 일본에서 최초로 상용화된 리튬이온전지는 높은 에너지밀도와 출력밀도, 뛰어난 충전과 방전 효율이 장점이어서 스마트폰 등 휴대용 전기·전자기기부터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까지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리튬이온전지는 불이 잘 붙는 액체전해질을 사용해 항상 화재·폭발 위험이 있다. 실제로 과충전이나 외부단락, 내부단락 등의 사고 상황에서는 전지 내부 소재들의 급격한 가열과 연소에 의해 발화와 폭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해 소형 셀에서부터 대형 모듈에 이르기까지 사고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KERI 연구팀은 이런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불에 타지 않는 전고체전지(리튬이온이 이동하는 전해질을 고체로 만든 배터리)에 주목했다. 전고체전지용 고체전해질 연구는 원료에 따라 크게 산화물 계열, 고분자 계열, 황화물 계열로 나눠 진행해왔다. 특히 황화물 계열은 리튬이온 전도도가 액체 전해질에 비견될 정도의 슈퍼이온전도체 특성을 보유해 실용화하려는 시도가 많고 관심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KERI 연구팀은 이런 황화물계 고체전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대면적 생산 핵심 공정인 슬러리 코팅 방식의 전극 제조 과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활물질-고체전해질 계면저항'이라는 어려운 과제 해결에 도전했다. 슬러리는 미세한 고체 입자가 액체 중에 섞여 움직임이 적은 상태의 혼합물을 이른다.

현재 우리가 쓰는 리튬이온전지 전극은 슬러리 코팅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보통 활물질·도전재·바인더를 용매에 일정 비율로 혼합해 만든 슬러리를 집전체 위에 얇은 막으로 코팅·건조·압착해 전극을 만든다. 집전체는 전극에서 전기를 모아 외부로 전달하거나 전달받고자 쓰는 금속의 얇은 막으로, 양극에는 알루미늄 시트·음극에는 구리 시트를 쓴다. 액체전해질은 전지 조립공정을 거치고서 마지막에 주입해 분리막과 전극에 스며들도록 해 리튬이온이 전달되는 통로와 활물질-액체전해질 계면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 슬러리 코팅 방식은 액체전해질 기반 리튬이온전지 산업에는 일반화돼 있지만 전고체전지용 고체전해질과 전극 제조 공정에 활용하기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고체전해질은 슬러리 제조 단계에서 함께 혼합돼야 해 활물질-고체전해질 계면 형성이 액체전해질보다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 접착력 향상을 위해 섞는 바인더(활물질이나 도전재 같은 고체분말이 서로 또는 집전체와 잘 접착하도록 돕는 고분자 소재)가 계면 형성을 방해하면서 계면저항이 크게 늘었다.

또한, 이온 전도도가 높은 고체전해질을 슬러리 제조에 활용할 때도 결정화한 고체전해질 분말을 미세한 입자로 분쇄하거나 용매와 혼합하는 과정에서 기계적·화학적으로 리튬이온 전도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슬러리 코팅 방식으로 제조된 전고체전지용 전극 성능은 실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KERI 연구팀은 리튬-인-황화물에 리튬-요오드화합물을 첨가한 고체전해질 합성 공정을 최적화해 160도의 낮은 결정화 온도에서도 슈퍼이온전도체 특성을 나타내는 '유리-결정질(glass-ceramic) 고체전해질'을 개발했다. 보통 슈퍼이온전도체는 황화물계에서 섭씨 250~450도(산화물계는 700도 이상)에서 열처리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연구팀이 개발한 고체전해질은 고분자 바인더나 리튬 금속 용융(melting) 온도인 180도보다는 낮은 160도에서 결정화할 수 있다. 따라서, 바인더나 리튬음극 손상 없이 전극이나 전지 제조 후 열처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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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인더, 고체전해질, 도전재, 활물질(이상 위쪽)과 이런 물질들이 혼합된 슬러리(아래). /한국전기연구원

연구팀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슬러리 제조 시에는 비정질 상태의 분쇄된 고체전해질을 혼합하고 전극 제조 후 섭씨 160도 저온에서 열처리함으로써 전극 내 고체전해질이 슈퍼이온전도체로 바뀌는 동시에 고체-고체 계면이 소결(고체 가루를 적당한 모양으로 압력을 가해 성형한 것을 가열하면 서로 단단히 밀착해 서로 연결돼 한 덩어리가 되는 현상)되는 새로운 공정을 개발했다.

이런 소재와 공정 혁신은 복합전극 내 활물질-고체전해질 계면저항을 크게 낮추고 동시에 계면의 기계적 내구성도 우수한 전극을 만들도록 해 전고체전지 실용화를 크게 앞당길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를 주도한 하윤철 책임연구원은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용 이차전지 시장이 본격화되면서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은 이미 안전하면서도 에너지 밀도가 높은 전고체전지 관련 기술을 선점해 나가고 있다"며 "이번 KERI 연구 성과는 전고체전지가 지닌 계면저항 등 난제를 해결하고 상용화를 추진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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