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젠더의식 드러낸 경찰 제작 웹툰
공공기관 성폭력 문제 인식 달라져야

얼마 전 뉴스를 보다 경찰이 성폭력을 예방하겠다며 제작해 각 교육청에 배포한 웹툰 관련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어이가 없었다. 다음날 관련 웹툰을 찾아보았다. 전체 웹툰의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이미 내려진 상태였고 관련 기사를 통해 일부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경찰청이 왜 이런 웹툰을 제작했는지는 짐작 가능하다. 교육에 소극적인 학생들에게 더욱 친밀하게 접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학교 내 몰카와 청소년 성매매 등의 주제를 선정적으로 다루고, '야짤', '엉만튀' 등의 비속어를 사용해 학생들의 시선을 끄는 데서 성공한 듯 보였다. 문제는 시선을 끄는 것에 멈춰 버렸다는 점이다. 일상적인 성폭력에 대한 어떠한 문제의식도,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 웹툰은 성폭력을 예방하는 것이 목적인지, 성폭력을 조장하는 것이 목적인지 불분명해지고 말았다.

이 웹툰이 시도교육청으로 전달됐고 일부 학교에서 이를 활용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실제로 이를 게시한 대전교육청 관계자의 인터뷰는 더욱 놀라웠다. 교사가 상황에 맞춰 그 자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바로 그 이유로 이 웹툰이 위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낮은 젠더의식을 보여주는 교육기관의 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교육부가 학교 성교육을 체계화한다며 개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남자와 단둘이 여행을 가지 않는다' 등 개그에나 나올 법만 내용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은 학생들에게 왜곡된 성인식을 심어줄 뿐 아니라 성역할 고정관념을 오히려 재생산하고 고착한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올해 전면 재개정이 결정되었다.

최근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것처럼 우리사회 성폭력은 성별 권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아무렇지 않게 공유하는 성차별적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교사에 의해, 학생들 간에 이루어지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은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해자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남학생들의 장난, 성장 과정의 통과 의례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학교 내 성폭력은 우리사회 성폭력과 똑같은 모습으로, 일상으로, 문화로 자리 잡아 왔다.

학생들에 대한 성교육은 기존의 왜곡된 성인식, 일상이 되어버린 성폭력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 원치 않는 신체 접촉, 성적 농담, 괴롭힘을 '좋아서 그러는 것'으로 이해하고 묵인해서는 안 된다. 성폭력이 장난이 아닌 폭력임을 인지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성의 욕구를 참을 수 없는 것으로 전제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왜곡된 성인식을 그대로 둔 채 어떻게 하면 성폭력 당하지 않을 수 있는지 가르치는 교육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피하는 방법보다는 무엇이 성폭력인지, 어떻게 가해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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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우리사회 성인식,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어쭙잖게 접근하는 성교육, 성폭력 관련 홍보물이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나아가 오히려 성폭력을 조장하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교육기관을 비롯한 공공기관들은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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