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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여행] (13) 창원 성산구 중앙동 저녁 마실

불그스레…푸르스레… 일렁이는 빛의 물결
어스름한 하늘 위 네온사인
묘한 대비가 돋보이는 대문
동네이름 흔하지만 개성적
낡은 주택·고층 빌딩 공존
삶만큼 복잡한 전깃줄 눈길

2018년 10월 05일(금)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도시의 저녁이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밥을 먹고 집을 나서 터벅터벅 향한 곳은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주택가. 길을 나서긴 했지만, 사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쓰겠다, 그런 게 없습니다. 일단 길 위에 선 그 자체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언가 규정을 해야 안심을 합니다. 모든 것에 이름과 의미를 부여하죠. 그래 놓고선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다는 것은 안심이 된다는 것과 연결이 되니까요. 하지만, 사실 이 세계는 '모른다'의 영역이 더 큽니다. 모르면 불안하죠. 하지만, 이 불안이야말로 삶을 고이지 않고 흐르게 하는 원천이 아닐까요.

◇중앙동 주택가 초입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뀝니다. 횡단보도 위로 사람들이 흘러갑니다. 사람들을 따라 길을 건너면 이제부터 중앙동입니다. 중앙동은 이마트 창원점, 창원종합운동장, 올림픽공원, 창원병원을 각각 꼭짓점으로 그린 거대한 사각형 모양입니다. 어느 도시를 가도 중앙동은 있기 마련입니다. 말 그대로 도시의 중앙에 있기 때문입니다. 창원 중앙동도 위치상 도시 한가운데입니다.

이제부터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야겠습니다. 일단 호텔, 상가 밀집 지역은 가지 않기로 합니다. 그리고 창원스포츠 파크, 교육단지도 제외. 그러고 나면 주택가와 중앙동 상가 지역이 남습니다. 먼저 이마트 옆 도로를 따라 쭉 내려갑니다. 오래전에 보아둔 풍경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이마트 후문 삼거리 근처에서 만난 풍경이지요. 저녁 어스름 하늘을 배경으로 붉게 빛나던 전당포 네온사인입니다. 2층 주택 옥상에 우뚝 솟아 볼 때마다 묘한 느낌을 줍니다. 전당포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빛나는 글자 자체만 남아 있는 것 같거든요. 뒤편으로는 오롯이 주택가이기에 네온사인의 배경이 되는 하늘을 가릴 게 없습니다. 저무는 하늘을 배경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연해지는 전당포 네온사인은 마치 어떤 의지의 상징 같습니다.

저문 하늘을 배경으로 선연한 전당포 네온사인. /이서후 기자

◇낡아서 멋진 풍경

네온사인이 있는 곳으로 해서 중앙동 주택가로 들어가 봅니다. 곧 중앙동평생교육센터가 보입니다. 오랜 주택가와 어울리지 않게 산뜻한 건물입니다. 낮에 보면 기분마저 좋아질 색깔을 하고 있습니다. 센터를 지나 그대로 골목을 따라 걸어봅니다. 큰 도로에서 한 블록 안쪽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군요. 문득 고개를 드니 전봇대에 매달린 전선이 사뭇 복잡합니다. 오래된 동네의 특징이라 할까요. 복잡한 삶들만큼이나 복잡한 전깃줄이 그물처럼 골목 위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다시 걷다가 운치 있는 대문들을 만납니다. 하나는 아주 낡았습니다. 낡았는데, 그 대문 너머로 미끈한 고층건물이 마치 배경처럼 서 있습니다. 그 묘한 대비가 중앙동의 개성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낡은 대문 맞은편으로 또 다른 낡은 대문이 있습니다. 양쪽으로 여는 큰 출입문은 선명한 주황색으로, 한 짝으로 된 작은 출입문은 선명한 파란색으로 칠해 대비가 멋집니다. 이 대비 때문에 볼수록 매력있는 대문이 되었습니다. 저녁 어스름, 가로등 불빛 아래지만 그래도 계속 바라보게 됩니다.

멋진 대문들을 지나 조금 더 동네 안쪽으로 들어가 봅니다. 가로등이 드문드문해서 제법 어둡네요. 쭉 걷다 보니 옛 꿈나무유치원 건물이 나옵니다. 꽤 큰 유치원 건물인데, 문을 닫은 지는 10년도 더 됐을 겁니다. 오랫동안 낡아서 이제는 마치 종교적인 느낌마저 납니다. 담벼락 위로 매매 전화번호 현수막이, 그마저도 낡은 모양새로 매달려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오싹한 느낌도 있네요. 중앙동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유령의 집이라고 부를 것 같습니다. 건물 옆으로 바로 공원이 이어져 있습니다. 유령 건물 영향인지 공원 자체도 뭔가 으스스한 분위기네요.

복잡한 삶만큼이나 복잡한 전깃줄. /이서후 기자

◇골목에 흐르는 삶

동네를 거의 디귿으로 한 바퀴 돌아 이제 처음 횡단보도를 건넜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인적 드문 주택가 골목을 지납니다. 가로등 아래 놓인 온갖 물건들이 왠지 무심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둠을 가르는 예리한 불빛이 하나 나타납니다. 편의점 간판입니다. 간판은 주택가 어둠과 대비되면서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편의점은 중앙동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변에 있습니다. 편의점을 지나니 골목으로 나와 앉은 어르신들이 있네요. 대화를 나누며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따뜻함과 편안함이 배어 있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기분입니다. 아마도 어둔 골목들을 지나오며 나름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이제 중앙동에서 가장 낡고 큰 건물인, 중앙시장에 도착했습니다. 중앙시장을 지나니 불빛이 환합니다. 중앙동 상가거리네요. 갑자기 환한 거리와 많은 사람을 만나니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골목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 잠시 쉽니다. 복잡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각자 목적지를 향해 갑니다. 그렇게 삶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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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