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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사각지대 '이주노동자'] (3) 스리랑카·태국 노동자 이야기

쓰고 버리면 그만인 일회용품인가요
회사에 기계 고장 알렸지만 무시하고 계속 일 시켰어요
죽을 고비 넘겨 살아났더니 치료비 감당도 못해요…
회사는 이제 연락도 없고요

2018년 10월 12일(금)
우귀화 기자 wookiza@idomin.com

고장 난 기계로 무리한 작업 요구는 사고를 불렀다. 이주노동자가 말한 사고 이유는 똑같았다. 태국,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는 "문제가 있는 기계만 고쳤어도, 우리는 다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꿈을 안고 태국에서 온 청년 아룬(29) 씨는 일하다 사고를 당해 이제 걸어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죽을 고비를 넘긴 스리랑카인 디판(가명·33) 씨는 화상을 입은 얼굴로 가족을 만나야 한다.

스리랑카인 디판은 김해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온몸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그는 온몸에 남은 화상 흉터 때문에 무더운 여름에도 긴 소매 옷만 입는다. /김구연 기자 sajin@

◇"회사에서 연락이 없어요" = 아룬 씨는 지난 2012년 4월부터 6년째 병상에 누워있다. 창원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한 지 3개월 만에 사고를 당했다. 고용허가제(E-9)로 한국에 와서 두 번째 직장이었다. 함안에 있던 첫 직장은 반장, 조장의 구타와 욕설이 심했다. 다행히 사업주가 아룬 씨를 포함해 함께 일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요구를 들어줬다. 그런데, 어렵게 얻은 새 직장에서 더 큰 불행이 닥칠 줄 몰랐다.

아룬 씨는 "센서가 고장 났는데, 그 상태에서 일하다가 다쳤다. 몸을 기계 안에 밀착해서 작업을 한다. 사고 당일에도 사장이 일을 하라고 해서 일을 했는데, 센서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기계가 머리를 쳤다. 그 뒤로 쓰러졌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룬 씨는 머리를 심하게 다치면서, 경수 손상을 입어서 몸을 하나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언어 소통은 가능하지만,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아룬 씨는 같은 공장의 다른 노동자도 손을 다치는 사고를 입었지만 당시 공장 이전을 앞두고 있어서 새 기계를 들여놓지 않았다고 했다.

힘없이 누워있던 그는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아룬 씨는 "치료를 해도 몸이 좋아지지 않으면, 치료를 끝내야 한다고 한다. 언젠가는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 태국 집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하다. 게다가 이제 나는 걸어서 갈 수도 없다"고 했다.

회사도 아룬 씨가 병원에서 지내는 햇수가 길어지면서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공장에서 다치고 2∼3년 정도는 1년에 1번 공장 사람이 병원에 왔다. 그런데 3년 지나고는 연락도, 방문도 없다. 태국 가기 전에 공장에서 보상은 해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생활비와 두 동생의 학비를 벌고자 찾은 한국은 청년의 꿈을 앗아 가버렸다. 그는 "원래 꿈이 많이 있었다. 전기 관련 공부를 해서 그 분야 일을 하려고 했다. 돈을 벌어서 집안 생활비, 학비도 대고, 집도 짓고 하려고 했다. 이제 아무것도 못 한다"고 했다. 아픈 부모님을 대신해 이모가 와서 24시간 아룬 씨의 간병을 하고 있다. 그는 "이모마저 없었다면,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태국인 아룬은 창원 한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사고를 당해 2012년 4월부터 6년째 병상에 누워서 지낸다. /김구연 기자 sajin@

◇"계속 들어가는 화상 치료비 걱정" = 김해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스리랑카인 디판 씨는 지난 2014년 11월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자동차 시트 패킹 작업을 하던 중 기름이 새는 낡은 기름 탱크가 폭발하면서 사고를 당했다. 한국인 동료, 사장에게 기계(기름 탱크)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회사는 기계를 새로 사지 않고 용접해서 쓰려고만 했다. 폭발 사고가 나서야 회사는 기계를 다 바꿨다.

디판 씨는 사고로 얼굴, 머리, 팔 등의 온몸에 2·3도 화상을 당했다. 체표면적의 33%에 극심한 중화상을 입은 그는 온몸을 붕대로 감은 채 의식 불명 상태의 중환자였다. 생사를 오가던 그는 다행히 깨어났다. 하지만, 온몸에 남은 화상 흉터 때문에 무더위에도 긴 소매 옷만 입을 수밖에 없다. 얼굴도 다친 그는 녹아내린 귀까지 덮는 모자를 한동안 쓰고 다녔다.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서 치료비 걱정도 커지고 있다. 얼굴은 피부가 어색하지 않게 치료를 계속 받고 있는데, 병원비 일부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처음에는 사고당한 공장에서 자부담인 레이저 치료비를 내줬지만, 이제는 소식이 없다고 했다. 그는 치료비를 받고자 민사 소송을 생각하고 있다.

스리랑카인 디판은 김해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온몸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그는 온몸에 남은 화상 흉터 때문에 무더운 여름에도 긴 소매 옷만 입는다. /김구연 기자 sajin@

디판 씨는 "친구가 한국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스리랑카보다 월급을 2∼3배 더 주는 한국에 일하러 왔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손 절단된 친구, 골절 사고 입은 친구가 있다. 다친 이주노동자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후에 한국에 온 아내가 화상 입은 내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다. 수술도 치료도 고통스럽지만, 지금은 화상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는 상태"라며 "고향에 돌아가서 문방구를 여는 게 꿈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활동가는 "디판 씨 사고는 근본적으로 공장 작업 환경이 위험한데 방치한 것이 문제다.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상태로 일한 것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가장 밑에 있는 영세 기업이 낡은 기계를 사용하다 발생한 사고"라고 지적했다.

활동가는 이주노동자 등이 일하는 영세사업장에 대한 안전 교육,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디판 씨는 안전 교육을 한 차례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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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귀화 기자

    • 우귀화 기자
  • 시민사회부 기자입니다. 경남지방경찰청, 법원, 검찰, 진해경찰서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