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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잎의 말> 정목일 지음·<그가 비껴갈 때> 황광지 지음

흔들리는게 마음인지 저 바람인지
낭독·필사 부르는 수필집 2권
자연과 일상 탐독하는 기회
  단순하지만 묵직한 정목일의 잠언
  담담하면서 깊은 황광지 수필

2018년 10월 12일(금)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형식은 단순하지만 내용은 가만히 음미할 부분이 많은 수필집 두 권을 읽었다. 정목일(73) 수필가의 <잎의 말 : 어디에 서 있는가>(2018년 4월)와 황광지(66) 수필가의 <그가 비껴갈 때>(불휘미디어, 2018년 7월)다. 둘 다 창원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정목일 수필가는 1975년 <월간문학>, 1976년 <현대문학>에 수필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그가 막 삼십대로 접어들던 때였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났다. 이제 그는 경남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수필가 중 한 명이다.

이번 수필집은 아포리즘(잠언) 형식이다. 몇 줄의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글들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형식이라 꽤 즐기면서 읽었다. 오랜 사색과 연륜에서 나온 글들이 많았다. 묵직한 성찰이 담긴 까닭에 굳이 긴 글이 필요 없겠다 싶다.

〈잎의 말〉 정목일 지음.

"꽃만이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잎눈 하나씩 눈을 틔어서 세상을 바꿔버린다. 잎은 꽃의 배경색이다. 꽃은 한순간의 영화와 절정이지만 잎은 산의 빛깔, 세상의 빛깔이다. 꽃이 사랑의 말이라면 잎은 생명 그 자체이다." ('잎의 말' 전문)

"나무는 지상의 키와 둘레만큼 지하에 뿌리를 갖고 있다. 나무는 낮에 받았던 햇빛만큼 밤에 어둠을 갖고 있다. 나무는 꽃의 환희만큼 낙화의 시름을 갖고 있다. 불행은 행복을 키우는 바탕이다. 슬픔은 기쁨을 밝히는 심지이다." ('명암' 전문)

화려한 꽃보다 잎의 묵묵한 생명을 응시하거나, 아름드리의 풍성하고 빛나는 가지보다 땅속 깊고 든든한 뿌리에 대해 생각하고, 식물의 뾰족한 가시에서 위협보다는 긴장과 첨예함을 발견한다. 이를 통해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를 알 수 있다. 이제 누가 세상의 주인공이냐고 작가에게 묻는다면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대답할 것만 같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생각해라, 저렇게 행동해라 직접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 대신 살아보니 그렇더라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포리즘의 울림이 더욱 깊은 곳에서 묵직한 이유다.

황광지 수필가는 1995년 <한국수필>로 등단했다. 오랜 교직생활을 거친 후 정식 작가가 됐으나 그의 글에는 권위적인 구석이 전혀 없다. 그가 청소년을 상담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단체에서 일한 것도 그의 성정과 관련이 있지 싶다.

〈그가 비껴갈 때〉황광지 지음.

그의 수필을 읽으며 이렇게 도란도란 흐르는 글도 있구나 싶었다. 가만히 그 흐름을 타고 가다 보면 어떤 따뜻함이 잔잔히 솟아오른다.

"출근길만 재촉하던 나는 어느 날 학교로 향해 가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더니, 잠깐이라도 아이들을 눈여겨보고 싶어졌다. 사무실에 갇혀 적막한 시간을 보내기 전에, 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 행복으로 느껴졌다. 아이들의 움직임은 다채롭고 재미있다. 희망적이다. 이 횡단보도에서 내 앞 차가 지나가고, 노란불이 들어와도 달아날 생각하지 않고 나는 빨간불을 반갑게 맞아 '야호'하고 정차한다." ('아이들이 있는 길' 중에서)

글을 읽다 보니 무엇보다 그 첫 문장에 반할 때가 잦았다.

"텅 빈 야구장에 취해버렸다." ('물꽃 놀이' 첫 문장)

"화려한 거리가 버거워 우리는 자꾸 후미진 곳을 찾았다." ('우리는' 첫 문장)

이런 식으로 시작하면 글의 내용이 무척 궁금해진다. 황광지 수필가의 야무진 글솜씨가 가감없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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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