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역에 앉아서도 세계로 달음질하던 그의 시간을 따라

우리는 지난 3일 타계한 허수경(사진) 시인의 고향 진주로 향했습니다. 그는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지난 8월 재발간된 그의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난다, 2018)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사춘기 시절, 나는 뚱뚱하고 우울한 소녀였다. 뚱뚱하다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자주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다. 숨어 있다고 한들 뚱뚱한 나를 다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숨길 수가 없어서 어디에 갔다가 누가 뚱보라고 놀리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었다. (중략) 나는 혼자였고 외롭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놀림을 당하는 실존을 가졌다. 그것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우울했던 소녀' 중에서)

진주는 시인의 문학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울했던 소녀가 시인이 되기까지 그가 머물렀을 것 같은 공간, 그가 걸었을 것 같은 길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고향 진주에 두고 간 할 말을 가늠해보았습니다.

남강

◇진주 남강 = 진주 남강은 자주 시인의 유년 시절과 연결된다. 여느 진주 사람들처럼 그의 삶 한편에는 항상 남강이 있었을 테다. "탯줄은 강에 띄워 보내고/간간이 강풍에 진저리치며/나는 자랐다." 독일에 머물며 어느 해 질 녘 강가에서 바람이 불면 문득 떠올렸을 남강의 풍경들.

"기다림이사 천년 같제 날이 저물세라 강바람 눈에 그리메지며 귓불 불콰하게 망경산 오르면 잇몸 드러내고 휘모리로 감겨가는 물결아 지겹도록 정이 든 고향" 그 순간 풍경 너머로 아련한 시절의 어린 시인이 그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자라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강 저편보다 더 먼 나를/건너온 쪽에 남겨두었다." 시인을 떠올리면 화려한 유등마저 쓸쓸해지는 남강의 저녁 무렵이다.

◇진주문고(진양호로240번길 8) = 진주문고는 1층 카페 옆 진열대에 허수경 시인의 책들을 모아두고 있다. 진열대 위에 시인의 잔잔하고 조용한 얼굴이 나란하다. 시인의 책을 훑어본다. 시집은 물론 장편소설과 산문집도 제법 많다.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 첫 페이지 그의 친필 사인은 이렇다. "2018년 허수경입니다." 앞으로 영원히 기억될 그의 이름이다.

옛 진주역

◇옛 진주역(진주대로891번길 57) = 시인은 저녁 무렵이면 자주 옛 역사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세계를 향해서 나가고 싶었던 마음"을 누렸다. 시인이 "가난한 역"으로 기억했던 옛 진주역은 폐역이 되었고, 새로운 자리에 다른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다. 옛 역사는 현재 식당으로 쓴다. 시인은 "나는 이 지상에 아직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내가 살았던 어느 곳은 이미 사라져버렸다"고, 서늘하고 아프다고 말했다. 지상에 어슬렁거리던 시인은 사라졌으나, 마침 우리에게는 시인의 흔적이 남아있다.

중앙시장
◇중앙시장(진양호로547번길 8-1) = 시인의 그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것은 "장대동 중앙시장에는 새 상가가 들어"선다는 사실이다. 상점 하나 문을 닫으면, 다른 상점이 들어선다. 옛 모습 남은 시장 어느 자리에는 신식 카페가 자리를 잡았다. 그대로인 것도 있다. 시인이 기억하는 진주의 맛난 것 하나는 꽃밥이라 불렀던 진주 비빔밥. 시인은 노모와 함께 시장 한가운데 비빔밥 집에 들러 그 밥을 마주앉아 먹었다. "햇빛이 어수선한 시장의 난전으로 들어오는 것을 엉금엉금 보면서 우리는 꽃밥을 먹었다." 비빔밥 집은 여전히 발길이 잦다. 우리가 간 날 마침 어느 엄마와 아들이 마주앉아 꽃밥을 먹고 있었다.
경상대 칠암캠퍼스

◇경상대 칠암캠퍼스(진주대로 816번길 15) = 시인이 경상대 국문학과에 다닐 적에는 강의실이 현재 의과대학이 있는 칠암캠퍼스에 있었다. 지금은 국문학도들이 가좌캠퍼스에 있다. 칠암캠퍼스는 옛 진주역과 가까운 곳이라 시인은 완행열차가 수시로 떠가는 것을 봤을 테다. 철길 따라 도착한 예하리에서 벗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는데, 수필 문학 강의가 대수였을까. 그럼에도 서러웠던 그 시절, "댓가 없는 땀과 역사 속에/댓가 있는 철장과 현실 속에/취직은 진리보다 멀고 진리는/내 살붙이들의 뼈를 갈았네"라고 썼던 '국립 경상대학교' 시에서 시인도 벗들도 국립 경상대학교도 한 귀퉁이에 따로 서서 울었을 테다.

◇주약동 일대 = 고향을 떠나온 학생들이 지는 해를 보며 걷던 동네. 지금은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지만 그 시절 값싼 자취방이 많은 곳이었다. 시인은 벗들을 부르러 주약동에 자주 갔을 것이다.

이곳에서 시인을 기억할 수 있는 법을 생각했다. 폐선이 된 철길을 따라 걷자. 아파트 뒤편 작은 마을과 밭, 과수원을 지나치면 터널이 나온다. 저 멀리 빛을 향해 걸으면 시인의 후배를 만날 수 있는 가좌캠퍼스다. 유난히 어둡고 그늘진 인문대학에서 시인의 시를 읽는 누군가를 만나면 좋겠다.

※참고문헌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실천문학사, 1998)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난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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