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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루트 따라 떠나다] (17) 그 정신의 아름다움을 이 시대가 품는다면

웅장한 거석문화 유적에 가슴이 뛰었다
스폴레토 '로마 수도교'서
2000년 전 건축 과정 상상
온전히 보존돼 더 가치 있어
철강도시 테르니 오벨리스크
역시 예전 문화·권력 보여줘

2018년 10월 30일(화)
시민기자 조문환 webmaster@idomin.com

절대화된 가치관에 사로잡히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으리라. 순교를 각오한 초대 기독교의 사도들도 그랬으니까. 괴테 또한 익시온(Ixion)의 불 수레에 묶여서 로마로 끌고 간다고 해도 투덜대지 않겠노라고 말할 정도였다.(익시온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살리아 왕으로 인류 최초의 친족 살해자이다. 데이오네우스의 딸 디아와 결혼한 뒤 구혼 당시 약속한 결혼 선물을 주지 않으려고 장인 데이오네우스를 살해하였다.) 바울 사도가 그런 사람이었다. 죄수의 몸으로 잡혀가는 마당에도 두렵기는커녕 영적으로 충만했었다.

어쩌면 그는 순교를 각오한 선교자와 같았다. 하인도 없이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대담한 일인지, 돈도 다르고, 마부들, 물가, 나쁜 숙소들로 인해 매일 어려움을 겪는 여행이 불행하다고 느끼기에 충분하지만 무슨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이 나라를 꼭 한 번 보겠다는 소망밖에는 없었다는 그의 각오는 불같이 뜨거웠다. 그러니 장인을 살해했던 전설의 익시온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다.

◇스폴레토 수도교

스폴레토는 작은 도시다. 인구가 3만이나 될까? 하지만 작다고 예사로 보면 큰일 난다. 우리의 경우 도시를 말할 때 인구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결코 인구가 도시의 전체를 가늠하는 척도는 아니다. 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렇게 보였다. 역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조형물은 이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게 했다. 스폴레토에 도착한 후 다른 것들은 모두 제쳐 두고 로마의 수도교를 찾았다. 오래전에 프랑스 리옹 지방을 지나면서 로마 시대의 수도교를 본 적이 있다. 2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어지지 않는 거석문화의 대표작이었다.

스폴레토의 수도교는 여러 개의 성당과 고성을 지난 후 산 너머 계곡에 놓여 있었다. 수도교 자체가 산과 산 그러니까 골짜기를 연결하여 물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함이었으니 높은 산 속에 있는 것은 당연했다. 높이가 80m, 길이가 230m이다. 멀리서 보면 꼭 요즘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나 철도를 건설할 때 쓰는 공법처럼 거대한 교량같이 보였다.

▲ 스폴레토 시의 고대로마 수도교. 괴테는 이를 두고 베로나의 아레나와 아시시의 미네르바 성당과 더불어 제2의 자연이라 지칭했다.

그 수도교가 바로 내 발 아래, 아니 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곳에 우뚝 서 있었다. 가슴이 떨리고 감동이 되었다. 흔들림 없이, 상처도 없이 완벽한 모습, 당당하지만 산과 산을 연결한 계곡 위에 위험하고도 겸허하게 서 있었다. 수많은 희생자를 가져왔을 대 역사(役事), 저 높은 벽을 사람들이 타고 올라가 벽돌 하나하나를 붙이고 쌓았을 것이다.

나의 여정이 대부분 역사(歷史)와의 대화로 이어지고 있지만 2000년 전의 거대한 건축물이 내 앞에 있다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누가, 어떤 공법으로, 물은 어디에서 가져 왔는지 등과 같은 나의 궁금증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단지 내가 그 앞에 홀로 서 있다는 것, 현재 내가 그 증인이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오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괴테가 방문했을 당시의 스폴레토 수도교를 통하여 물이 시내 곳곳에 공급되었다. 수도교 입구에는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로 쓴 간판이 있는데 여기에는 1786년 10월 27일 괴테가 다녀간 역사적 기록이 적혀 있다. 괴테가 밟았던 땅을 내가 그대로 밟고 있다. 그가 보았던 그 기념비적인 거석문화를, 사람이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여겨졌던 위대한 업적을 바라보면서 그가 느낀 그 감흥을 같은 심장의 박동으로 느끼고 있다. 그와 내가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은 시대를 달리하지만 내게는 하나의 의미로 다가왔다.

◇제2의 자연

괴테는 이 수도교 앞에서 그가 그동안 여정을 통해서 보았던 고대 로마의 세 가지 위대한 작품, 즉 베로나의 원형경기장과 아시시의 미네르바 성당, 이곳 스폴레토 수도교를 일컬어 제2의 자연이라 지칭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내적인 존재의 이유를 갖지 못한 것은 생명력이 없어 위대할 수가 없고 위대해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독일의 바이센슈타인에 있는 거대한 8각형의 성인 빈터가스텐(Winterkasten)을 예를 들면서 핵심이 없이 그냥 거대한 장난감뿐이라고 폄하했다.

▲ 테르니 시의 고대원형극장.

마침 내가 이 수도교 앞에서 한없는 영감에 젖어 있을 때 고향 땅의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는 괴테와 대화 중이라고. 한없는 영감에 빠져 있노라고. 제2의 자연 앞에서, 내가 하는 일들이 참다운 내적인 존재의 이유를 갖고 있는지 자문자답하고 있노라고.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고대의 유물은 드물다. 오히려 여러 곳의 고대 유물들은 후손들에 의해 복원이라는 명분하에 행해지는 행위들이 그 본 모습을 알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기가 일쑤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복원이라는 명분하에 저질러지는 행위는 차라리 파괴에 가깝다 할 것인데 괴테는 산 크로체피소(San Crocefisso)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한 교회를 보고서는 어딘가에서 폐허로 발견된 기둥과 들보들을 가져와 한데 모아 지은 멍청하고 정신 나간 짓으로 규정해 버렸다.

그의 고전과 고대 유물에 대한 이런 관점은 상상력과 감정을 억누르고 지질학적인 관점과 지형적인 시선을 가졌기에 가능했으니 비록 여행이 직관과 주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일지언정 유물을 바라보는 것만큼은 그런 것들이 허용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는 로마에 도착하면 타키투스의 역사책을 읽고 싶어 했다. 상상력과 감정이 아닌 현실과 같은 역사적 사실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철강도시 테르니

테르니(Terni)는 근대 시대에 들어와 철강 도시가 되어 이탈리아 산업의 근간을 형성한 도시다. 역 앞에는 꼭 우리의 옛 만화에 나왔던 로봇 태권브이처럼 수천 t의 철로 만든 조형물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시내 중심지에도 철로 만든 오벨리스크가 회전 교차로에 자리하고 있는데 테르니는 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철로 무기를 만들었던 군수기지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오벨리스크 옆에는 허물어져 내리고 있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거석문화의 산물 중 하나였던 오벨리스크는 로마 시대에만 하더라도 이집트에서 12개 정도가 약탈되어 옮겨졌다고 한다. 대부분 기원전 15세기 전후에 만들어졌던 거석문화의 상징들이다. 가장 큰 것은 높이가 32m, 밑바닥 4면의 길이가 2.7m이며 무게는 230t이다. 테르니는 돌로 지어진 원형극장 바로 옆에 철로 만든 오벨리스크를 만들어 둠으로써 거석문화와 철기문화를 동시에 정복했다는 사실과 당시 문화와 권력을 상징하는 거석과 철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려 했을 것이다.

▲ 테르니의 철로 만든 오벨리스크. 테르니는 거석문화와 철기문화를 동시에 정복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오늘날 첨단 물질문명의 시대에 무쇠로 만든 오벨리스크나 로봇 태권브이 식의 조형물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이들이 2000년 후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떤 정신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까? 그들은 이 무쇠로부터 어떤 감흥을 느낄까? 내가 수도교 앞에서 떨렸던 가슴처럼 그들도 그런 가슴을 움켜잡고 말을 잇지 못할까?

괴테가 하는 말이 들려온다 "그대여, 그대가 하는 일에 내적인 존재의 이유가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시게!"

/글·사진 시민기자 조문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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