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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렬의 생태이야기] (45) '무식한 놈'에서 벗어나는 법 가르쳐 드립니다

입력 : 2018-10-30 13:47:19 화     노출 : 2018-10-30 13:54:00 화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mrbin77@hanmail.net

그토록 무덥던 여름을 뒤로하고 어느새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가을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난다. 산에는 억새 물결과 단풍이 한창이다. 들판엔 코스모스와 쑥부쟁이 꽃이 나들이 나온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문득 예쁘게 핀 들꽃들 이름이 궁금해지는 계절이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 시인의 '무식한 놈'이란 시다. 시에서 말한 것처럼 쑥부쟁이와 구절초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구별이 쉽지 않다. 안도현 시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쑥부쟁이는 음력 8월 무렵, 구절초는 음력 9월 무렵에 핀다.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먼저 잎을 살펴보는 것이다. 쑥부쟁이 잎은 길쭉한 타원형이다. 톱니도 있다. 쑥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쑥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또 쑥부쟁이 꽃은 자주빛을 띠고, 구절초보다 작고 꽃잎도 가늘다. 꽃이 줄기 끝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여러 송이가 핀다. 반면에 구절초 잎은 쑥 모양을 하고 있다. 잎끝이 더 뭉툭하면서 둥글고 잎에 윤기가 있다. 구절초는 쑥부쟁이보다 꽃이 크고 대부분 흰색이다. 간혹 분홍색을 띤 경우도 있는데 처음 피어날 때 모습이다. 꽃이 줄기나 가지 끝에 한 송이씩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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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색 구절초(오른쪽)와 보라빛 쑥부쟁이(왼쪽).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가을을 상징하는 꽃으로 대개 코스모스를 든다. 하지만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들었다. 들에 산에 핀 국화. 들국화의 주인공들이다. 들이나 야산에 피는 국화 닮은 가을꽃을 보통 들국화라고 통칭해서 부른다. 감국이나 산국, 참취 꽃도 가을 들판과 야산에 피는 꽃들이다. 얼핏 보면 잎사귀는 비슷비슷한데 꽃 색깔은 흰색, 노란색, 보라색 등으로 다양하다. 대부분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는 시기. 9월에서 11월 사이에 피어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들국화의 대표 선수 하면 구절초를 먼저 떠올린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따야 약효가 좋다해서 구절초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구절초는 5월 단오엔 줄기가 다섯 마디가 되고 음력 9월 9일이 되면 아홉 마디가 된다 해서 구절초로 불린다고도 한다. 야생 구절초는 대부분 하얀 꽃인데 가끔 연보라색이나 분홍색도 있다. 주로 산지의 능선에서 자라는 산구절초와 구절초, 높은 산 바위틈에서 자라는 바위구절초, 한라산에서만 자라는 한라구절초 등 여러 종류가 있다.

하얀 꽃 구절초는 꽃이 신선처럼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선모초라 부르기도 한다. 선모초란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에 시집온 지 한참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한 여인이 있었다. 온갖 방법으로 무던히 노력해 보았건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스님이 한 사찰을 가르쳐주며 그곳에서 치성을 드리면 아이가 생긴다고 일러주었다. 스님이 일러준 사찰에 당도한 여인은 지극 정성으로 사찰 안에 있는 약수로 밥을 해먹고, 사찰 주변에 활짝 핀 구절초 달인 차를 마시면서 노력한 끝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구절초 달인 차를 마시고 아이를 가지게 되어 선모초(仙母草)라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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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 틈에 핀 감국.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구절초는 산비탈이나 계곡, 풀밭 같은 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꽃이다. 주로 낮은 산과 마을 주변에 산다. 그래서 더욱 흰 꽃을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사랑을 듬뿍 받은 꽃이기도 하다. 꽃 피는 기간이 꽤 길어서 오랫동안 꽃을 감상할 수 있다. 달빛 밝은 밤에 은은하게 빛나는 구절초 꽃 감상은 하늘에 빛나는 별빛 이상이다.

봄날에 펼쳐지는 화전놀이의 주인공이 진달래라면 1년 농사를 마무리하는 가을날 화전놀이의 주인공은 구절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은 구절초의 날이었던 것이다. 국화전과 화채로 조상께 차례를 올렸다고도 전해진다. 2018년 올해의 중양절은 양력 10월 17일이다. 이처럼 구절초는 사람들에게 이로움도 많이 주고 쓰임새도 많은 꽃이다. 관상용으로도 심고 요리나 약으로도 이용한다. 우리 조상들은 구절초로 술도 빚고 차로 달여 마시기도 하고, 나물로 만들어 먹고, 꽃 떡을 만들 때도 이용했다. 환약을 만들어 배앓이 할 때 먹기도 했다. 또 베개 속에 넣어 탈모 방지와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는 것을 예방하기도 했다. 구절초가 지닌 향은 세균 번식을 억제해서 부패를 막아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절초를 말려서 옷장 안에 넣어두거나 책갈피에 끼워두면 좀 벌레가 생기지 않고,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에 머리도 맑아진다고 한다. 구절초에서 추출해낸 방향 물질을 이용해서 화장품이나 향수도 만들고 또 목욕물에 넣으면 약탕이 되기도 한다.

구절초와 함께 가을 언덕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들국화의 하나가 쑥부쟁이다. 쑥부쟁이라는 말 속에는 애절한 옛 여인의 삶이 담겨 있다. 쟁이는 장인에게 붙이는 낮춤말인데 옛날에 가난한 대장장이 큰딸은 동생들 끼니를 채우기 위해 매일 쑥을 캐려 들에 나갔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쑥 뜯으러 다니는 대장장이네 딸'이라는 호칭으로 쑥부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쑥부쟁이가 쑥을 캐러 나갔다가 사냥하다 함정에 빠져 봉변을 당한 한양 총각을 구해주었고,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는데 서울로 돌아간 그 총각은 다시 오지 않았다. 오매불망 총각을 기다리던 쑥부쟁이는 시집도 가지 않은 채 쑥을 뜯다가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죽은 언덕에서 나물이 많이 났는데 쑥부쟁이가 죽어서까지 동생들 주린 배를 채워주려고 나물로 돋아났다고 해서 동네 사람들은 그 나물을 쑥부쟁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다.

쑥부쟁이는 양지바르고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특징이 있다. 4월쯤부터 어린 순을 뜯어 나물로 먹는다.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수많은 나물 반찬 중에도 쑥부쟁이 나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쑥부쟁이 잎은 소화를 잘되게 하고 혈압을 내리게 하는 약효가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해열제와 이뇨제로 쓴다. 기침과 천식에도 좋아 즙을 내서 마시기도 한다. 그 옛날 보릿고개 시절, 배고픔에 허덕이던 시절에는 민중들의 귀한 반찬이 되어주기도 했던 고마운 풀이 바로 쑥부쟁이였던 것이다.

산국과 감국도 국화란 이름이 붙은 식물이다. 산국은 예부터 신령스런 꽃으로 영초(靈草)라 불렸다고 한다. 봄에는 어린 순을 나물로, 여름엔 쌈으로, 가을엔 관상용 꽃으로, 겨울엔 뿌리로 차를 우려내 몸을 보양하는 데 쓰였던 식물이다. 반면에 감국은 산국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데 꽃잎을 따서 먹어보면 단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이름도 달 감자를 써서 감국이다. 감국은 황국이라고도 하는데 흔하게 보이진 않는다. 감국은 반그늘을 좋아해서 야산 수목 밑에 자생하고 향이 진하고 않고 줄기가 반쯤 누워있는 경우가 많다. 바닷가 바위 절벽 위에서 자라는 감국도 종종 볼 수 있다. 산국은 볕이 잘 드는 양지를 좋아해서 산 아래쪽 밭이나 언덕에 주로 서식하는데 향기가 아주 강하다. 꽃에서 자극적인 향기가 느껴지면 산국일 가능성이 높고, 남쪽 지방이거나 바닷가 쪽 또는 야산 수목 밑에 피어있다면 감국일 가능성이 높다. 얼핏 보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감국은 꽃대가 가늘고 길게 올라와서 끝에 한두 송이가 피는 데 반해 산국은 굵은 꽃대 위쪽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여러 송이가 다닥다닥 달려있다. 꽃이 풍성하게 피어있다면 산국, 썰렁한 느낌이라면 감국일 가능성이 높다. 제일 쉬운 구분법은 산국 꽃은 크기가 50원짜리 동전만하고, 감국은 50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다.

산국은 해열, 해독 작용, 진정 등의 효능이 있어 감기몸살, 폐렴, 두통, 현기증, 위염, 구내염, 고혈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비염에도 좋고, 동맥경화, 심장 질환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산국 차는 감기뿐만 아니라 머리가 맑아지는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약으로는 산국이 많이 이용되고, 차로는 감국이 많이 이용된다. 가을 수확이 거의 다 끝나는 11월 초쯤 산국, 감국이 절정으로 꽃 피는 시기다. 요즘엔 도로변 절개지에 대량으로 심어 가꾸기도 한다. 서리가 내리기 전 꽃이 활짝 피었을 때 채취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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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 광포만에 핀 산국꽃.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흔들리는 몇 송이 구절초 옆에

쪼그리고 앉아본 적 있는가?

흔들리기는 싫어, 싫어, 하다가

아주 한없이 가늘어진 위쪽부터 떨리는 것

본적 있는가? 그러다가 꽃송이가 좌우로 흔들릴 때

그 사이에 생기는 쪽방에 가을 햇빛이

잠깐씩 세들어 살다가 떠나는 것 보았는가?

구절초, 안고 살아가기엔 너무 무거워

가까스로 땅에 내려놓은 그늘이

하나같이 목을 길게 빼고, 하나같이 북쪽으로

섧도록 엷게 뻗어 있는 것을 보았는가?

안도현 시인의 '구절초의 북쪽'이란 시다. 다가오는 주말에 깊어가는 가을 정취에 취해 근처 야산으로 구절초 만나러 가보는 것도 좋겠다. 산청 동의보감촌 부근에는 사람들이 가꾸는 구절초 군락지가 있다. 산청과 합천에 걸쳐있는 황매산에도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피어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조금만 눈여겨 야산 주변 둘러보면 꽤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가을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구절초 만나면 쪼그리고 앉아 안도현 시인의 '구절초의 북쪽'이나 최해준 시인의 구절초란 시 한번 떠올려 보시길….

삼짇날

지지배배 제비 오던 길

세마디 들풀로

옹크리고 있던 너.

시월의 들녘에

아홉마디 줄기로

별처럼 피었구나.

구절초 흐드러진

바람 언덕에

하얗게 이우는 늦가을 햇살.

어느새 돌아오는

다른 계절에

구절초 성긴 마디 마다에

따스한 온기로

머물고 싶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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