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대, 조형물 건립 제안
마산출신 명도석·김명시 선생
"오동동 광장에 역사성 부여"

"오동동 문화광장에 명도석 선생·김명시 장군 동상 건립하자."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에 마산 출신 항일독립운동가 동상을 세우자는 제안이 나왔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4일 오후 2시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명도석 선생·김명시 장군을 소개하고 이들의 동상을 건립할 것을 제안했다.

명도석(1885∼1954) 선생은 1885년 옛 마산시 중성동에서 출생했다. "주권 잃은 나라는 주인 없는 빈집과 같다. 내 나라가 주권국이 될 때까지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며 지은 호가 '허당'(虛堂)이듯 선생은 1945년 해방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선생은 1907년 옥기환·구성전 등과 함께 마산노동야학교를 운영하며 민족의식을 높이는 데 앞장섰다. 1919년 3월 21일에는 이형재·최용규 등과 협의해 만세운동을 벌였으며, 1927년 신간회 마산지회를 설립하는 데 참여해 활동했다. 원동무역주식회사를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으며,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마산지부 위원장을 맡았다. 선생의 집(중성동 64-2)은 광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 열린사회희망연대가 4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독립운동가 명도석 선생, 김명시 장군의 흉상(동상)을 오동동 문화광장에 건립하자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린 김명시(1907∼1949) 장군은 1907년 옛 마산시 동성동에서 태어났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이끈 장군은 1927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한 후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고 상해한인지부 조직부·선전부 책임자가 됐다.

1930년 재만조선인반일본제국주의동맹 결성에 참여한 장군은 기관지 <반일전선>을 제작하다가 귀국, 1932년 경인지역에서 오빠 김형선과 함께 <콤뮤니스트>, <태평양노조> 등 비밀 기관지를 발행하고 여성 노동자들을 교육했다.

장군은 체포돼 7년간 옥고를 치르고 1939년 중국으로 건너가 톈진·베이징 등에서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대원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때 '여장군', '백마 탄 여장군' 등으로 불렸다. 1945년 귀국해 조선부녀총동맹 선전부 위원, 1946년 남조선민주여성동맹 선전부장을 했다. 장군의 집(동성동 189)은 문화광장 뒤편이다.

이순일 열린사회희망연대 공동대표는 "창원지역에는 시인을 기념하는 시비나 기념비는 곳곳에 세워져 있지만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흉상이나 동상은 없다"며 "문화광장 자투리땅에 명도석 선생·김명시 장군의 조형물을 세우자"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분들이 태어나 자라고 활동한 곳에 기념 조형물을 세우는 일은 광장에 역사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공간 미학적으로도 잘 어울릴 것"이라며 "50m 옆에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이 있고 그 정면에서 10m 건너편에 3·15의거 발원지 건물이 있어 도시 스토리텔링 요소가 저절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의 일상생활 영역이었으며 현재 우리가 삶을 이어가는 활동 영역이기도 한 이곳에서 애국선열 형상을 만나게 된다면 동네 어른을 만난 듯 친밀감을 느끼는 동시에 자주독립 정신에 감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라도 온갖 고난을 겪으며 조국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고자 몸을 던진 선열을 기념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의무이거니와 미래 세대를 교육하는 일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고문은 김명시 장군의 독립운동 공적이 인정돼 서훈이 추서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명도석 선생과 달리 대다수 시민에게 생소하기 때문이다. 김 고문은 "조국 광복과 민족을 위해 일제와 목숨 걸고 싸웠지만 이데올로기로 우리의 기억과 역사에서 잊히고 감춰진 김명시 장군 같은 분들도 이제는 합당한 재평가를 통해 명예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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