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왼쪽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사회단체인] '노회찬의 정치'가 다시 시작됩니다

박창규 노회찬재단 실행위원

입력 : 2019-01-02 13:37:39 수     노출 : 2019-01-02 13:42:00 수
고동우 기자 kdwoo@idomin.com

지난 7월 23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노회찬(전 국회의원·정의당)의 꿈과 삶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1월 말 출범할 노회찬재단 실행위원을 맡고 있는 박창규 씨도 그중 한 명으로,

그날 그 일이 있기 전까지 그는 노 전 의원 국회 보좌관으로 일했다.

박 씨는 "노회찬이라는 사람, 선배, 진보정치 리더를 만난 건 내 인생에서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20181215010002.jpeg
▲ 박창규 노회찬재단 실행위원. /고동우 기자
 

노회찬재단 후원회원 더 많은 참여 절실

Q. 노회찬재단을 추진하게 된 배경과 지금까지 추진 과정이 궁금합니다.

"지난 7월 의원님이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고 나서 여러 사람이 이심전심 느낀 게 있었습니다. 우리는 진보정치를 대표하는 정치인 정도로 생각했지만 그보다 훨씬 폭넓은 지지와 사랑을 받던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다양한 연령·계층에서 정치 성향을 초월해 많은 분이 조문을 오셨거든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애도하는 차원을 넘어 그분의 철학과 노선을 계승하는 재단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의원님을 가까이서 보좌하고 지지했던 사람들이 모여 '노회찬재단 추진모임'을 가졌고 유족의 동의를 얻어 본격 설립에 착수하게 됐죠. 이후 추진모임은 9월 20일부터 재단설립 실행위원회로 전환됐고 준비위원회 구성, 설립승인 신청서 제출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Q. 공식 출범은 언제입니까. 또 재단 후원회원을 계속 모집 중으로 아는데 반응은 어떻습니까.

"1월 말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부터 후원회원 모집을 시작했는데 올 연말까지 목표인 5000명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재단 운영의 기본 재원이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에서 나오는 만큼 더 많은 참여가 필요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의원님의 정치철학과 업적 계승을 위한 여러 사업을 하려면 후원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평소 의원님을 좋아하고 응원해오신 많은 분들이 재단 홈페이지(www.hcroh.org)나 전화(02-713-0831)를 통해 후원회원에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Q. 재단은 향후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요?

"공식 출범하면 최종 확정되겠지만 지금까지 이야기된 건 다양한 행사와 출간 사업, 의원님 활동 데이터베이스화, 노회찬 정치학교 등입니다. 우선 재단 창립기념 문화행사와 내년 7월 23일 1주기 추모 행사 등을 계획 중이고요, 또 의원님이 지난 14년 동안 계속해온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장미꽃 전달식도 이어받으려고 합니다. 출간 사업 관련해서는 일단 내년 1월 의원님 유고집 2권이 나올 예정이고, '난중일기 2', '어록 모음', '의정활동 모음'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또 의원님은 뜨거운 정치 공론의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분입니다. 그에 맞춰 다양한 연구 활동, 포럼·토론회 등도 구상 중이고요, 나아가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제2, 제3의 노회찬을 양성할 수 있는 시민 정치학교도 개설하려고 합니다."

20181215010001.jpeg
▲ 노회찬재단 홈페이지(www.hcroh.org). 재단 후원회원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지역 민생, 약자들의 삶 꾸준히 챙겨

Q. 길지는 않았지만 창원·경남과도 인연이 깊은 분이었습니다. 지역과 관련해 재단에서 따로 준비 또는 계획 중인 게 있습니까?

"재단 설립 제안문에 담긴 '노회찬이 몸 바치고자 했던 노동존중사회와 선진복지국가 실현을 우리들의 꿈과 삶이 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의원님이 2016년 총선 창원 사무실 개소식 때 한 말입니다. 창원에서 밝힌 그 정신과 지향이 재단 기본 노선이자 사업 방향인 거죠. 또 각 지역별로 다양한 추모 및 계승 사업을 할 때 재단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정관에 명시돼 있습니다. 창원·경남은 의원님 지역구라 더 각별하게 신경을 쓸 것 같고 더 많은 사업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원지역 노회찬 정치학교 같은 것도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Q. 의원님에게 창원·경남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생활요금 인하, 무상급식 실시 등 지역 현안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는데요.

"의원님은 창원 성산에 출마하면서 기존 자유한국당 일색 정치를 창원과 경남에서부터 갈아엎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큰 의미에서 정치 활동뿐 아니라 도시가스 요금 인하, 주차공간 확보, 천변 데크로드 설치 등 시민 피부에 구체적으로 와닿는 활동도 꾸준히 펼쳤습니다. 거의 매주 창원 성산을 찾기도 했죠. 지역행사 참여도 있었지만 노동자, 실직자, 장애인, 자영업자 등 약자들의 어려움을 주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유권자들이 진정 '내 삶을 바꾸는 정치'를 경험했고, 의원님은 또 그렇게 노력하며 조금씩 실현해나가는 과정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입니다. 임기 4년을 마쳤다면 그냥 '노회찬 잘했다'가 아니라 '정의당 정치인도 이렇게 민생을 잘 챙기는구나' 좋은 평가를 받았을 텐데…."

20181215010003.jpeg
▲ 지난 5월 지방선거 때 여영국(왼쪽) 등 정의당 후보를 지원하고 있는 노회찬(가운데). /정의당

대한민국 진보 정치의 상징 노회찬

Q. 의원님은 진보정치의 상징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생애를 간략히 소개해주십시오.

"한마디로 진보정치를 개척하고 진보정당 건설을 주도했던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하던 중 광주항쟁 등을 목격하면서 세력화된 힘이 필요하고 그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창립하고 이후 진보정당추진위원회,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등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거죠. 87년 항쟁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민주주의는 공고화되어 갔지만 여전히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정치는 태동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지난 2000년 민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며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사람도 노 의원이었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는 17대(2004년) 총선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19대(2012년)와 20대(2016년)까지 총 세 차례 의정활동을 했죠."

Q. 특히 의원님은 대한민국에서 '소수세력'인 진보정치 활동을 하면서도 대중적 인기가 매우 높았는데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노회찬 정치'란 과연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의원님은 부당한 권력에 반대하고 세상을 바꾸는 싸움을 하면서도 늘 국민 눈높이에 맞는 진보정치를 강조했습니다. 진보정치의 세속화란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가,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많은 국민들이고 당연히 그들 목소리를 듣고 그들 눈높이에서 정치를 말하고 이슈를 제기하는 게 기본이 되어야 했습니다. 노회찬은 또 굉장히 전투적이고 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관심 영역이 폭넓고 세상일을 부지런히, 열심히 보려 했던 것도 강점이었습니다. 매일 다섯 개 일간지를 구입해 보고 또 보고 했으니까요. 이런 것들이 소위 진보정치인이면서도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Q. 관련된 얘기지만 진보 논객으로서 탁월한 입심과 표현력 등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많은 방송토론에 나갔는데 준비 시간 절반은 내용을 숙지하고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했던 분이었습니다. 토론자들만 알아먹는 단어, 표현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했죠. 그를 더욱 유명하게 한 6411번 버스 관련 연설도 뛰어난 눈썰미와 예술적 감각 등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죠. 그는 또 어떤 경우에도 국민 탓, 유권자 탓을 하지 않는 정치인이었습니다. 심지어 선거에 지고서도 그렇게 말하며 남 탓을 하는 순간 나 자신은 할 게 없어진다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Q. 이런 질문도 드리고 싶습니다. 의원님 국회 보좌관 등으로서 오랫동안 곁에서 보좌해왔는데 노회찬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분입니까.

"노회찬 같은 사람, 선배, 그리고 진보정치 리더를 만난 건 행운이었죠. 학생운동하던 시절 1992년경 처음 얼굴을 봤던 것으로 기억하고 2000년대 초반 민주노동당 때부터 도왔는데 주변에서는 저를 '노빠'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당직자 생활을 너무 오래 해 그만두고 싶다고 했더니 따로 불러서 말리더군요. 제가 생각을 안 바꾸니까, '야 이럴 때는 선배가 말하는데 알았다 그래라' 하시더군요. 중간중간 함께하지 못한 시간도 있었지만 어쨌든 총선이나 지방선거 출마할 때 도우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잘돼야 진보정치가 성공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에 대한 자책도 큽니다. 유서를 보는 순간, 이 사람은 이런 선택을 할 사람이었는데 왜 내가 몰랐을까 미안했습니다. 너무 무능한 보좌관이었습니다."

Q. 앞으로 할 일이 많겠습니다. 노회찬재단은 향후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요.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이 남긴 업적·기록을 잘 정리해 후배 정치인들이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노회찬 정치'가 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대학이나 대학원에 '노회찬 정치' 관련 교육과정이나 강좌가 생겼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선 재단이 잘해야죠. 저도 보좌관으로서 노회찬의 의정활동을, 그 방대한 기록을 압축적으로 잘 정리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신문 구독을 하지 않고도
경남도민일보를 응원하는 방법

전체선택후 복사하여 주세요. 닫기

고동우 기자

    • 고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