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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성평등을 말하다.

최소한 성별 대표성 왜곡 말아야
진정한 평등은 인간 존중의 길

2019년 01월 10일(목)
박정훈 시사평론가 webmaster@idomin.com

2018년 신문과 방송매체, 인터넷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아마 성평등일 것이다. 필자는 꽤 오랜 시간을 아동과 여성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 의식 전환 운동을 해왔다. 필자가 이렇게 스스로 방어하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의 성평등이 왜곡되어 가고 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먼저 우리 사회는 '여성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여성중심주의의 줄인 말이다. 즉, 여성을 중심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사실 이런 여성주의나 남성주의 등의 말은 타 성별에 대한 차별적 언어다. 페미니즘이 인권운동에 그 시초를 두고 있음에도 이런 차별적 언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19세기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1차 페미니즘 물결의 시대적 상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여성다움'이라는 언어로 남성들은 여성을 가정과 남성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고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페미니즘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페미니즘 물결을 거쳐 현재의 3차 물결까지(학자에 따라 4차로 주장함) 페미니즘은 현장과 이론을 통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발전과 동시에 초심을 잃어 가는 현상도 보인다고 생각한다.

작년 10월 경남도의회에서 성평등 토론회가 있었다. 토론회에는 경남지역의 다수 여성단체가 참여했고, 남성 참가자는 필자를 비롯한 단 3명, 그중 기자와 공무원을 제외하면 필자 한 사람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성평등을 말하면 그것은 곧 여성권리를 말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참 우스운 일이다. 성평등이란, 모든 사람이 성별에 의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평등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그러한데, 한 성별만 다수인 토론회에서 어떤 성평등 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지 필자는 의문스럽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아무리 열심히 공을 차도 결국은 기울어진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성평등 정책이 이러한 것이다. '여성중심' 필자는 그동안 여성이 우리 사회로부터 억압받고, 차별받은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여성이기에 남성이기에, 성소수자이기에 존중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차별이다.

우리는 생명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 존엄에 대한 존중을 받는 것이고, 인간 생명 가치의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

경남도 양성평등위원회가 기능 강화를 위해서 기존 20명의 위원에서 30명으로 늘리려 한다고 한다. 필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성평등을 말한다면, 적어도 성별의 대표성이 왜곡되어서는 안 되고,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즉, 위원들의 수를 성별에 맞추어 골고루 분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의 비율 어느 한쪽이 기울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 말이다. 끝으로 UN은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 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을 1981년에 발효하였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 필자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바로, 인간평등 즉 인본주의(humanitarianism)를 말하고자 함이다. 인간생명 존중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모든 성별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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