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 숲에서 당신과 오늘도 안녕
친구같은 노부부 인생이야기
자연과 공존 느린 삶 고스란히

노부부를 먼저 만난 건 영화관이 아니라 서점이었다. 무엇 하나라도 제 손으로 만들고 싶은, 그러면서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을 동경할 무렵 만난 책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

노부부는 일본 건축가 츠바타 슈이치, 그리고 그의 아내 츠바타 히데코.

이들은 일본 아이치현 가스가이시 고조지 뉴타운 아파트 숲 사이에 단층 주택을 짓고 산다. 영화 속에서 슈이치는 90살, 히데코는 87살이다.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 이들의 나이 합은 173세였다. <인생 후르츠>로 2년 후의 이들을 다시 만났다.

▲ 자연을 벗삼아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노부부를 그린 영화 <인생 후르츠> 주요 장면들. /스틸컷

고조지 뉴타운을 내려다보면 유독 나무가 빽빽한 집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들이며 숲이다. 딸기, 감자, 옥수수, 아스파라거스, 라임, 매화, 무화과….'작약, 미인이려나?', '여름밀감, 마멀레이드가 될 거야', '작은 새들의 옹달샘, 와서 마셔요'처럼 귀여운 노란 표지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노부부가 키우는 건 과일 50종과 채소 70종.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영화 중간마다 반복하는 내레이션처럼 이들은 순리대로 살아간다.

영화는 노부부의 삶처럼 둘의 이야기를 천천히 차근차근히 들려준다. 슈이치는 젊은 나이에 일본에서 인정받은 건축가였다. 고조지 뉴타운 조성 사업에 참여하게 된 그는 숲을 남겨두고 바람 길을 만든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하지만 뉴타운 조성 사업은 경제성이 우선시됐고 대규모화로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만들어졌다. 산은 아파트에 묻히고 계곡은 깎여나갔다.

▲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 주요 장면들. /스틸컷

슈이치는 크게 실망한다.

그러곤 히데코에게 말한다. 우리가 숲을 만들자고. 사람마다 작은 숲을 만들면 산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둘은 아파트 옆에 자신들의 공간을 마련하고 나무를 하나씩 심어나갔다. 또 당시 민둥산이었던 다카모리산에 도토리나무를 심자는 운동을 했다. 당시 1만 그루가 심겼단다.

히데코는 슈이치의 제안을 언제나 허락한다. 오래된 양조장 집안 딸로 태어난 그녀는 결혼 후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말할 수 있었다. 슈이치도 언제나 그녀의 말을 신뢰하고 지지했다.

둘은 땅을 키워나갔다. 자식과 손녀에게 물려줄 것은 오로지 비옥한 땅.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장소를 물려줘야 한다는 슈이치와 히데코의 철학이다.

▲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 주요 장면들. /스틸컷

영화에서 맛깔스럽게 차려진 상을 보는 재미도 좋다. 노부부의 집에서 때마다 거둬들이는 수확물은 히데코의 요리를 거쳐 멋진 음식으로 탄생한다. 일본 정식뿐만 아니라 케이크, 푸딩, 요구르트 등 다양한 디저트로 완성된다. 이는 언제나 이웃과 나눠 먹는다.

<인생 후르츠>는 아주 단순하지만 풍만한 일상을 내내 보여준다.

그리고 슈이치는 아주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든다. 밭일을 끝내고 든 낮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은 그.

하지만 히데코의 일상은 변함없다. 언제나 맛난 음식으로 슈이치의 밥상을 차리고 밭일을 하고 나무를 가꾼다.

'집은 삶의 보석 상자여야 한다'고 말하는 슈이치. '역시나 집이 좋아'라고 안도감이 들어야 한다는 히데코.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있나, 내가 진정 원하는 공간인지 자꾸만 묻게 되는 영화 <인생 후르츠>다.

▲ 자연을 벗삼아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노부부를 그린 영화 <인생 후르츠> 주요 장면들. /스틸컷

한편 영화 내레이션은 일본 배우 기키 기린이 맡았다. 지난해 9월 별세한 그녀는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일본의 '국민엄마'로 불린 원로 배우다.

그녀의 나지막한 음성과 싱그러운 집, 그리고 슈이치와 히데코의 자연을 향한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일상은 가슴을 차오르게 한다.

영화는 창원 씨네아트 리좀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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