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 넘어 주도적 역할까지…높은 열의 본보기 되어
남편들보다 한참 늦었던 서훈…여성공훈 인정 힘든 현실 대변
박덕실 독립투사 비밀회합 돕고 항일운동 자금 모으기에 앞장
정금자 18살 또래들과 학생운동…방직회사 노동환경 개선 요구도
광복회 경남지부-경남도민일보 공동기획

이번에 소개할 박덕실(한규상)·정금자(송재홍)는 부부 독립운동가다. 부인들은 남편들보다 한참 뒤 서훈을 받았다. 그들은 한 여성이기보다는 '애국지사의 아내'로 불리며 조력자의 역할을 인정받지 못했다. 추경화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은 "조선시대 유교 영향으로 일제강점기 여성이 대외적 활동에 제약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여성들은 3·1운동은 물론 독립운동단체, 문화운동단체에 가입해 때로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며 "특히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는 등 항일전선 후방에서 후원자 역할을 한 것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추경화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이 진주지역 여성 항일운동과 인물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항일투사에 은신처 제공 = 박덕실(1901~1971)은 항일운동가들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남편은 진주지역 3·1운동 지도자 한규상(1896~1971)으로 1919년 9월 6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옥고를 치렀다. 당시 둘은 약혼 사이였다.

박덕실은 그동안 수감된 남편의 옥바라지는 물론 독립운동 단체 '혈성단' 조직을 도왔다. 혈성단은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했고 단원 30명 중 3명(박보교·박덕실·박현구)은 여성이었다. 그의 집은 소위 비밀회합 장소였다. 단원들은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 박덕실 선생. /추경화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

하지만 혈성단은 1년 만에 일제에 발각되고 박덕실은 각종 고문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남편 때문에 집중적으로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 향후 혈성단의 존재는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임시정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박덕실은 독립자금을 모으는 데도 앞장섰다. 1919년 9월 대한적십자회 진주지부 회원, 같은 해 11월 대한애국부인회원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았다. 그는 18살 대정8년 제령 제7호(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박덕실은 1920년 12월 결혼 이후 광림학교·시원여학교 교사로 일했다. 1923년 10월 합천군 삼가면에 삼가여자야학을 설립했고 1928년 근우회 진주지회 신임위원으로 활동했다.

◇노동약탈에 분개 = 1929년 11월 광주서 시작된 학생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졌다. 1930년 1월 17일 진주고등보통학교 앞.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독립만세"를 부르짖었고 그 울림은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로 퍼졌다.

정한영·조방제 남자 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함께 하자"고 외쳤다. 그들은 노예적 교육철폐·경찰 진입 금지·광주 학생 석방을 요구하는 격문 40여 장을 여학생에게 배포했다. 이때 운동장에 서 있던 정금자(당시 18살·1911~2012)도 학생 100여 명과 교문을 박차고 나왔다. 1월 25일에도 학생들의 시위는 이어졌다.

▲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정금자 선생 모습. /추경화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

"진주시내 안 간 데가 없었어. 독립만세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몰라. 그러다가 이을례하고 주동자라고 경찰에 붙들려 갔지. 무섭지는 않았어. 배후조종자가 누구냐 묻는데, 배후가 있나? 젊으니까 용기가 있어서 나선 거지." "분이 나서 몸이 벌벌 떨리고 그렇더라고. 내가 좀 열정적이었거든." (2001년 <경남일보> 9월 21일 자 보도)

정금자는 이 일로 옥고를 치르고 정학처분 됐다.

그는 노동운동에도 뛰어들었다.

1931년 1월 부산 조선방직회사에 취업해 김계정(1913~?), 제영순(1911~?), 조복금(1911~?) 등과 파업을 주도한다.

조선방직회사는 일본자본이 부산에 세운 가장 큰 공장으로 식민지 노동약탈의 상징이었다. 정금자는 적색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고 일경에게 붙잡혀 불구속 입건됐다.

그의 남편 송재홍(1905~1976)은 독립운동으로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참고문헌

<진주항일운동사>, 추경화, 진주문화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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