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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문](20) 의령 선비의 자취를 찾아서

난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국의 사명감 움텄네
부림면 백산 안희제 생가
재력 비해 소박함 눈길
세간리 곽재우 고향집
느티나무 늠름함에 매료
충익사서 의병 넋 기려

2019년 02월 12일(화)
이서후 김민지 이미지 기자 who@idomin.com

노블레스 오블리주. 높은 신분이나 큰 권력 혹은 엄청난 부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입니다. 의령에는 시대는 다르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목숨을 내걸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선비들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왜병에 맞서 싸운 망우당 곽재우(1552~1617). 그는 단순히 글공부에 열중한 선비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의(義)를 실천한 대장부였습니다. 일제강점기 교육자로 또 사업가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백산 안희제(1885~1943). 그 역시 한학을 하던 선비였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춰 신학문을 익히고, 나라가 망하자 사업을 일으켜 독립 자금을 댔습니다. 실천 지향적인 이들의 삶은 어쩌면 요즘 같은 시대에 필요한 리더의 품격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의령 곳곳에 새겨진 이 선비들의 자취를 찾아봤습니다.

▲ 의령군 부림면 백산 안희제 생가./이서후 기자
▲ 순흥 안씨 문중이 조성한 의령군 부림면 효충원 내 백산 안희제 순국 기념비./이서후 기자

◇안희제 생가(의령군 부림면 입산로2길 37), 효충원(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박물관서 본 안희제(1885~1943) 선생의 매서운 눈빛이 인상적인 터라 그의 생가도 궁금했다. 안희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자금책으로 백산상회를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인물이다. 백범 김구, 백야 김좌진 장군과 함께 삼백으로 불렸다. 그의 생가로 가던 중 '효충원(孝忠園)' 이라는 표지석이 눈에 띄었다. 높이는 족히 2m는 돼 보였다. 뒤편에 보니 '이곳은 순흥안씨 탐진군파 헌납공 문중 선조의 충과 효를 간직한 신성한 장소'란다. 글을 읽다 보니 앗! 반가운 이름, 안희제 선생도 있었다. 이곳 가문 출신이었다. 표지석 뒤편에 있는 효자·열녀·충신의 정려비와 유허비를 둘러봤다. 안씨 가문 후손들의 '부심'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안희제는 입산마을 출신이다. 이곳은 탐진 안씨 집성촌. 마을 길목에 입산마을을 빛낸 인물들이 벽면에 적혀 있다. '안기종, 안효제, 안희제, 안창제, 안준상, 안호상, 안균…'. 땅의 기운이 남다른가 보다. 차를 타고 좀 더 들어가니 독립운동 관련 벽화가 보였고 부근에 안희제 생가가 있었다. 들어가면 초가인 사랑채가 먼저 반긴다. 뒤에는 나무로 지은 기와집 안채가 있다. 그의 집안이 부호라고 생각해 화려한 무언가를 생각했었는데 소박한 느낌이었다. 뒤편으론 장백산이 병풍처럼 자리 잡아 생가를 지켜주는 듯하다.

▲ 의령군 유곡면 의병장 곽재우 생가 사랑채. /이서후 기자

◇곽재우 생가(유곡면 세간2동길 33), 의령 세간리 현고수 기념물(유곡면 세간리 736-1), 의병박물관(충익로 1-25), 충익사(충익로 1)

1592년 4월, 의령 세간리에는 비장함이 나돌았다. 곽재우는 일찍이 급제했지만 임금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고즈넉한 고향집(곽재우 생가)에서 학문에 매진했다. 그의 집은 조선 중기 사대부의 전형적인 사저다. 2005년 의령군이 복원한 양반가는 그의 직설적이고 호탕한 성격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곽재우는 마냥 앉아있을 수 없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9일째, 노비 10여 명과 부대를 만들어 의병을 일으켰다.

▲ 의령 세간리 현고수. 의병장 곽재우가 이 나무에 북을 매달고 의병을 모아 훈련했다./이서후 기자

"벼슬아치나 백성이 나라의 보살핌을 받은 지가 200년이나 되었는데도 나라가 위급함에 모두 자기 보전 계책만 세우니, 이제 나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라고 말하며,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느티나무(현고수)에 큰 북을 매단다. 의병의 훈련이 시작된 것. 이는 전국 처음이었다. 그의 의병은 2000명이 넘었고 이들은 낙동강과 남강을 거점으로 왜적을 물리쳤다.

느티나무는 여전히 늠름하다. 의병의 발상지라는 의미를 품은 수령 600년이 넘은 노거수는 오늘도 세간마을을 지키고 섰다.

"어찌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죽음을 기다린단 말이오."

늘 앞서 행동에 나섰던 그의 성품은 오늘날에도 빛을 발한다.

의병박물관에는 그를 기리는 많은 이야기가 펼쳐져 있고, 바로 옆 충익사에는 그를 닮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다짐이 방명록에 남아있다.

우리는 곽재우와 여러 장수의 위패가 봉안된 사당 앞에 서서 향 하나 피웠다.

그리고 이름이 남아있는 장수들뿐만 아니라 의병으로 의롭게 죽음을 맞이한 아무개에게도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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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