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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만나다] (2)경남도민일보 창간기자들

'약한 자의 힘'사시 지켜온 역사를 보여줘라

2019년 02월 20일(수)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창간 20년 <경남도민일보>와 함께 했던, 혹은 함께하고 있는 독자들을 지면에 모셨다. 서슬 퍼런 '감시자의 눈'을, 때로는 죽마고우의 막역한 '정'을 기대하면서. 그들이 신문에 대해 담담하게, 혹은 매몰차게 전달할 제안이 창간 20년 이후 <경남도민일보>의 방향타가 되지 않을까.

오늘은 창간기자 두 분을 모셨다. 황원호(57·황두목의 창동모꽁소 목수) 씨는 1990년 옛 <경남매일>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1999년 <경남도민일보> 창간 당시 정치팀장이었다. 김해연(46·한국경제신문 기자) 씨는 1999년 3월 경남도민일보에 입사해 창간 때 지역여론부 기자였다.

▲ 이일균(왼쪽) 기자가 창간기자였던 두 사람을 만났다. 황원호(오른쪽) 황두목의 창동모꽁소 목수와 김해연(가운데)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은상 기자

◇가장 기억 남는 일

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뭘까? 황원호 목수에겐 나쁜 기억이 먼저였다. 연달아 둘을 제시했다.

"예상을 깨고 (당시 신문사 대표가) 창간 직전에 인사를 했어요. 주식공모 실적을 갖고. 취재기자야 손을 벌릴 때가 많았지만, 내근들은 그렇지 못했어요. 인사를 할 타이밍도 아니었고. 저는 그걸 분열적 리더십이라고 봤죠."

"창간 전에 제가 3가지 사업제안을 했어요. 벼룩시장 같은 생활정보지 사업, 수익 1%를 심장병 어린이 등 약자에게 기부하는 것, 마라톤대회를 하는 것. 전부 기각됐죠. 품위가 없다는 이유로. 그때 생활정보지 했으면 빌딩 하나 사지 않았을까. 창원 교차로도 3년 만에 빌딩 샀으니까. "

좋은 기억은 없느냐고 되물었더니, 금방 답이 나왔다.

"처음 경영계획 세울 때 사옥 임대료로 3억 정도 들 걸로 예상했어요. 그 돈으로 마산 봉암동 빌딩 1~2층을 구두로 계약했죠. 그런데 그 뒤에 그 건물을 통째로 쓰겠다는 사람이 생겨서 아예 못쓰게 됐어요. 허탈해 있는데 그 건물주가 마산역 밑에 삼성전자 건물이 비어 있으니 그냥 공짜로 쓰라는 거예요. 덥석 받아들일 수는 없어서 살짝 뻣대다가 현장에 가보니 이게 쓸 만해요. 전세보증금을 3억 정도 생각했는데 고스란히 남은 거예요. 그 돈을 썼다면 시작과 동시에 부도가 났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가장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장만한 마산역 아래 경남도민일보에 입사했던 김해연 기자. "(거기)진짜 청소 많이 했습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내 인생에서 경남도민일보 7~8년은 뺄 수 없는 시기죠. 저에겐 첫 직장이고, 거기서 배운 사회생활 기초나 가치, 규범이 지금까지 나의 가이드라인이 됐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1999년 5월 11일 창간호 찍는 날이었어요. (마산)중리 윤전공장에서 신문 던지고 세리머니를 했어요. 진짜 나오는구나 감격했습니다. 발행 전까지 힘들었거든요. 3월 15일에서 4월 19일로, 두 번 연기됐다가 5월 11일에 결국 했습니다. 시간도 많이 들고, 돈도 많이 들고 하니까 두 차례나 연기됐죠."

▲ 황원호 목수. /유은상 기자

◇지금 신문은 어떻나

황 목수는 이 질문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다.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라며 뜸을 들이다가, 예를 하나 들었다.

"불만부터 말하면 (도내)국회의원 활동을 주로 앞면에 계속 쓰는 건 이해가 안 돼요. 별 의미 없어요. 자기 독자적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짜다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지면 낭비라고 봅니다. '도내 우수 국감 의원' 같은 기사…."

"(국회의원들이)협찬이나 광고 연결을 많이 시켜주는 모양이죠? 그런 노예가 될 필요가 있나. 어차피 배고픈 회사 아닙니까. 그럴 각오를 하고 들어온 것 아니에요? 애초에 사시가 '약한 자의 힘' 아니에요?"

다소 냉정하게 들렸던 이 평가에 김해연 기자가 힌트를 얻은 모양이다.

"(사시 약한 자의 힘)그걸 지켜낸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게 가장 잘한 일입니다."

"아직도 그 문패를 걸어놓은 자체가 대단합니다. 사시를 잘 지켜내고 있는 게 가장 잘한 일입니다. 약한 자의 힘은 보수 진보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고 봅니다. 정치이념이나 편을 떠나 이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자들을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로 의미 있는 슬로건입니다."

▲ 김해연 기자. /유은상 기자

◇경남도민일보에 기대하는 기사는

영어 '킬러 콘텐츠'를 끌어들이면서 "경남도민일보가 어떤 기사를 썼으면 좋겠나"하고 물었다. 무슨 답이든 달려들 준비가 돼 있는 황 목수.

"종이신문을 계속 보게 하려면 이슈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끊임없이. '로봇랜드'를 보세요. 집중조명을 하세요. 아는 사람이 거기서 건설업하고 돈 벌어먹고 삽니다. 그런데 이래 말합니다. 사업이 되고 안 되고는 상관없다, 나는 내 돈만 벌면 된다. 공사만 되면 아무 상관없다는 건데 이래가 되겠습니까?"

"아파트 미분양문제도 그렇습니다. 지금 마산에만 월영부영 4300가구, 북마산 회원동 일대에 8000, 현동에 또 천몇백…. 내년 내후년 되면 미분양만 1만 5000가구 이상 나옵니다. 이런 걸 파고 또 파야되는 것 아니에요? 마산이든 창원이든 진주든 통영이든 그런 이슈를 끝까지 파야 합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김 기자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요즘 신문의 가치가 왜 자꾸 떨어질까요? 정확한 근거는 없어도 다들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게 고발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가 그만큼 깨끗해진 건지, 신문이 더 파헤치지 않는 건지. 어쨌든 다음날 아침에 신문 펴봤을 때 뭔가 땡기는 그런 게 있어야 합니다."

진행자 미숙으로 이야기가 겉돌다가 다시 황 목수가 받았다.

"우리가 창간 직후에 했던 게 낙남정맥이었어요. 그 길을 걸으면서 환경파괴가 너무나 심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즉시 환경으로 돌려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산행은 산행대로 하고, 환경파괴 문제를 이슈화했어야 했습니다. 왜 난개발이 됐는지 반드시 짚었어야 했습니다."

"나는 그때 낙남정맥 끝내고 같은 맥락에서 '남해안 해안선 따라 걷기'를 하고 싶었어요. 많이 걸었습니다. 남해 해안선을 걷다보면 바닷가 양지 바른 곳, 전망 좋은 곳마다 무덤이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좋은 데는 전부 가족묘예요. 그것도 환경파괴입니다. 그런 걸 오래 감시하고 써야돼요. 뚝심 있게 밀고나가야 합니다."

◇창간 20년에 해야 할 일은

여기서는 인터뷰 자리와 달리 답변 순서를 살짝 바꾼다. 앞에 언급된 사시와 관련된 행사 주문을 김 기자가 했다.

"사시 '약한 자의 힘'을 걸어놓고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역사를 지역사회에 보여주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노동문제나 굵직한 정치현안을 우리는 이렇게 바라봤다 하는 점을 알렸으면 합니다."

"사실 밖에서는 경남도민일보가 그런 사시를 갖고 있는 걸 잘 몰라요. 그런 행사를 하면 그거였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아 그집 문패가 그거였구나 하고 느끼게끔."

같은 맥락에서 "5월 11일 자 20주년 창간기념호 때 제호를 빼고 약한 자의 힘을 넣자", "아니다 차라리 제호 옆에 약한 자의 힘을 붙여라"는 제안도 나왔다.

"(재직 당시)그때는 약한 자의 힘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사시는 이념을 떠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진보 보수 차원이 아니라, 그게 과연 뭘 의미하는지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겁니다. 진보나 개혁 쪽으로 선을 그을 필요가 없습니다. 보수에도 약한 자가 많잖아요.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리고 황 목수의 제안.

"인력 육성! 콘텐츠가 살아남으려면 그만한 인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자 재교육이나 파견, 해외연수로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콘텐츠를 생산합니다. 그 콘텐츠는 더 지역적이어야 합니다."

"기사든 유튜브든 지역이슈 발굴에 최대한 앞장서야 합니다. 그러려면 인력육성에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특히 이슈를 파고 치고나갈 수 있는 뚝심 있는 기자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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