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사랑했기에…생의 끝까지 써 내려간 시
복간시집 1권·유고작 2권
고인 1주기 맞춰 출간돼
"시인으로서의 삶 본보기"

지난 23일 오후 6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 제일횟집에서 고 박서영 시인(사진) 유고시집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횟집 방에 20명이 안 되는 이들이 모여 앉았다. 출판기념회라기보다는 조촐한 의식 같았다. 저마다 가슴에 담긴 슬픔을 정리하는 어떤 의식.

지난해 2월 3일 박서영 시인은 절정에 이른 그의 시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향년 50세. 출상하는 날 아침 창원시립상복공원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시인의 마지막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봤었다. 그 자리를 지킨 시인들의 망연한 슬픔이 담긴 표정들을 기억한다.

장례식 때 보았던 얼굴이 여럿 이날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성선경, 송창우, 김승강, 최석균 등 박서영 시인과 함께했던 문·청동인 작가들이다. 그리고 김시탁, 민창홍, 김륭, 정이경, 이서린 등 평소 박 시인과 친분이 깊었던 시인도 참석했다.

▲ 박서영 시인 1주기를 맞아 출간된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이서후 기자
최근 박 시인의 1주기에 맞춰 시집 세 권이 새로 나왔다. 문학동네에서 낸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걷는사람에서 낸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와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다. 이 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는 2006년 낸 첫 시집을 복간한 것이고 나머지는 유고시집이다. 유고시집 두 권에는 암 투병으로 하루하루 죽음을 예감하면서 써 내려간 시가 담겼다.

출판기념회에서는 저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다들 박서영 시인이 얼마나 철저하게 시인으로만 살았는지를 회고했다.

"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배운 게 많다." (성선경 시인)

"시에 있어서 원칙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쓰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보여준 사람이다." (출판사 걷는사람 대표 김성규 시인)

"웃음은 참 가벼웠지만, 시는 무거웠던 사람이었다." (김시탁 시인)

"결혼 생활이 참 외롭구나 싶을 정도로 글 쓰는 일에 집중하던 아내였다." (남편 장영득 씨)

그리고 그가 어떻게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을 시로 감싸 안으려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죽음을 통해서 삶을 완성하고자 했던 것, 삶을 죽음으로 감싸 안으려 한 것이다." (경남대 김경복 교수)

▲ 23일 열린 고 박서영 시인 유고시집 출판기념회에 성선경, 송창우, 김승강, 최석균, 김시탁, 민창홍, 김륭, 정이경, 이서린 시인 등이 참석했다. /이서후 기자
인사말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술자리가 시작되려 할 때 자리를 빠져나왔다. 참석자들의 슬픈 의식에 함께할 자신이 없었다.

횟집을 나오는데 입구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계속 울고 있다. 입구 한쪽을 차지하고 어떻게든 생선 찌꺼기라도 얻어내겠다는 태도다. 삶이란 게 이렇게 악착같은 것이다. 박서영 시인도 살고 싶었을 것이다. 악착같이 삶을 사랑했기에 그렇게 높은 정신으로 죽음을 극복하려 했던 게 아닐까.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물결들이 써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

이날 횟집에 모인 참석자들은 손에 받아든 시집 속 시인의 말을 보며 다시 한 번 물 밀듯이 밀려오는 슬픔을 감당해내야 했을 것이다. 그 슬픔 끝에 잔잔한 웃음이 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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