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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 명사 - 진주시] 이정희 고문헌 학예연구사

“소멸 위기 고문헌 수집이 급합니다”

입력 : 2019-02-27 16:04:16 수     노출 : 2019-03-01 00:00:00 금
김종현 기자 kimjh@idomin.com

전국 대학 유일의 고문헌 학예연구사

Q. 고문헌은 뭐고, 고문헌도서관은 어떤 곳인가요?

“고문헌(古文獻)이라는 말은 다소 어렵지만 오래된 역사 기록물을 뜻합니다. 경상대 고문헌 도서관은 문중이나 서원 등 민간에 흩어져 소장되어 멸실 위기에 직면한 자료의 수집, 보존, 연구 및 대중화를 종합적으로 수행하고자 설립됐어요. 전국 대학 도서관 중에서 최초의 고문헌 도서관입니다. 경북에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과 비슷한 성격입니다.”

Q. 고문헌 도서관은 왜 생겼습니까?

“현재 고문헌도서관에 경남지역 고서 고문서 목판 등 7만 2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대학 도서관 고서실은 고문헌을 수집 보관하는 기능만 수행했어요. 그러다 보니 고문헌은 한문 해독이 가능한 연구자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이용자도 극소수였고요. 경상대 고문헌 도서관은 연구자뿐 아니라 지역민도 역사기록을 널리 공유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고문헌의 수집 열람을 위한 도서관 기능,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기 위한 기록관 기능, 전시 교육을 위한 박물관 기능의 장점을 두루 도입했습니다.”

Q. 전국 대학 유일의 고문헌 학예연구사라고 하는데요.

“전국의 대학에 학예사가 있지만 주로 박물관에 근무합니다. 고고학이나 미술사 전공자가 대부분입니다. 대학 도서관에 학예사가 있는 곳은 경상대가 처음이고, 고문헌 학예사도 처음이에요. 따라서 제가 대학 유일의 고문헌 학예연구사일 것입니다.”

Q. 도서관에 사서가 있는데 왜 고문헌 학예사가 필요한가요?

“도서관 사서는 도서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열람하는 업무 위주로 돼 있습니다. 고문헌은 단순히 도서의 개념, 열람의 개념의 성격이 아니에요. 자료를 보존 관리하고, 내용을 해석·전시하거나 대중화시키려면 그냥 사서로서는 안 됩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고문헌 기증자들도 기증 고문헌이 수장고에 보존 관리만 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기증자들도 자료의 활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문헌 학예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Q. 고문헌 학예사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고문헌 학예사는 자료를 수집하고, 수집된 자료의 내용을 분석하며 번역 출판, 그에 대한 의미 부여, 전시, 기증자의 문중에 대한 연구, 기증자의 연구, 전시품에 대한 설명, 학생들이 체험 실습, 현장 견학 안내 등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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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고문헌 학예연구사. /박일호 기자

고문헌은 과거를 연구하기 위한 객관화된 근거

Q. 고문헌이 왜 중요하죠.

“고문헌은 선조가 살아간 총체적인 삶과 사상이 담긴 역사 기록입니다. 기록은 책이나 문서, 목판 등의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그 속에는 그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등이 녹아있어요. 그 시대, 그 사람을 연구하려면 객관화된 근거가 필요한데 고문헌은 필수적입니다.” 

Q. 조선왕조실록 등의 자료가 있는데 지역에 따로 모아야 하나요?

“서울 중심(중앙)은 연구가 그나마 진행됐지만 지역에 관한 연구는 미약합니다. 왕이나 치자의 연구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통해 진행됐습니다. 그런 자료는 왕 중심, 통치자 중심, 위정자의 관점에서 보는 역사예요.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통치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민란입니다. 그러나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생존권 싸움이자 투쟁이에요. 그래서 그것을 지역에서 보면 민란이 아니고, 항쟁이 되는 것이죠. 농민항쟁은 관리의 부정부패에 대한 지역민의 생존권 투쟁이고 위정자의 관점에서 보면 패역 무리가 난을 일으켜 권력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역에서 지역의 자료를 가지고 연구해야만 객관적인 연구가 가능합니다. 현재 인물 연구도 전국적인 명망이 있는 사람이나 높은 벼슬을 한 사람 위주로 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지역에도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거나 높은 벼슬을 하지 않았더라도 많은 인물이 살고 갔어요. 명망가들만이 우리 민족의 총체적인 삶은 투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남명입니다. 지역에 자료가 없다면 남명에 대한 연구가 ‘남명집’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것에 그쳤을 것입니다. 그나마 지역에 자료가 남아 있어 수많은 제자가 어떻게 학문으로 연결돼 오늘날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퍼즐 맞추기예요. 지역의 자료가 남아 있어야 그 퍼즐 맞추기가 가능한 것입니다. 아주 보잘것없고, 유명하지 않은 인물의 문집까지도 있어야 퍼즐이 맞게 됩니다.”

Q. 기증받은 자료 중 그런 게 있나요?

“산청 신등면에서 살다간 단계 김인섭 선생이 남긴 일기를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단계 김인섭 선생이 13세 되던 해(1839년)부터 77세 되던 해(1903년)까지 64년 동안 썼던 일기입니다. 총 29권으로 구성됐으며, 자신이 읽은 책과 교우 관계 및 살림살이 등의 내용이 자세하게 수록돼있습니다. 이를 통해 19세기 당시 농촌사회의 모습과 임술농민봉기가 발발하기 직전 농민들의 동향, 민란이 진정한 뒤 새로 부임한 단성현감과의 갈등에 대한 기록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왕조실록에서는 볼 수 없는 기록이에요. 이는 조선후기 사회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07호로 지정돼있습니다. 특히 이 자료는 중앙과 통치자의 관점이 아닌 지역민의 시각에서 역사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남 지역 고문헌

Q. 현재의 경남의 고문헌 중 어느 정도 모았나요?

“경남의 고문헌은 서부경남 위주로 많이 분포돼 있습니다. 서부경남이 남명학파의 주요 활동무대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기증받은 자료는 산청을 위주로 한 서부경남이 대부분입니다. 올해부터는 동부경남 조사도 병행해가면서 자료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려 합니다. 경상대 고문헌 도서관이 진주의 고문헌 도서관이 아니라 경남의 고문헌 도서관이 돼야 하고 그러려면 경남 전체의 자료가 모여야 합니다. 경남의 자료 중에서 다른 지역의 대학으로 흘러간 것도 많습니다. 경상대에서 자료를 모으기 전에 이미 유출된 것이죠. 소중한 자료는 돈을 주고 사 갔고, 보물 등으로 지정된 것도 있습니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지역에서는 고문헌의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경남지역 문중을 방문해 보면 고문헌이 거의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문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각한 것은 바로 고문헌 도서관이 생기면서부터입니다.”

Q. 고문헌은 주로 지역의 명망가 집에서 보관하고 있을 텐데요. 아직도 기증을 망설이는 집안이 있나요?

“망설이는 집안이 많습니다. 종손들은 대부분 기증하고 싶어 합니다. 관리하기 어렵고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요. 문제는 지손입니다. 아직 ‘우리 문중에 넘겨둔 것은 집안에서 지켜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경상대의 본격적인 활동에 힘입어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옛날에는 집안에 내려오는 문서가 있으면 후손들이 보고 연구하고 공부도 할 수 있었습니다. 조상을 알기도 하고 과거시험을 준비하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해석할 수 있는 자손이 거의 없어요. 집안에서 보관한 할 뿐 활용하지 못합니다. 그럴 바에야 지금은 대학에 넘겨줘서 연구하게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이 바뀌는 게 다행입니다.”

Q.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면 어떤 절차를 거치나요?

“먼저 학예사가 상담을 합니다. 자료가 어느 정도 있는지, 가치는, 소장 사유는, 소장자가 어떤 분인지 등을 사전 조사합니다. 그리고 소장자와 기증 절차를 논의하죠. 원만하게 합의되면 자료를 인수한 뒤 분류와 소독처리를 하고 원본은 지하 수장고로 들어갑니다. 기증 분량에 따라 문고를 설치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 기증자를 초청해 견학시키고 감사의 사례를 하고, 언론에 홍보까지 해서 기증자의 뜻이 잘 알려지도록 합니다.”

Q. 보관을 위해 어떤 조치를 합니까?

“고문헌은 다루는 과정에서 쉽게 훼손됩니다. 훼손을 최소화하려고 중요한 자료를 고해상도 스캐너(책을 뒤집지 않고 펼친 상태에서 복사 가능)로 스캔해 원본은 별도로 보관합니다.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거쳐 남명학고문헌시스템(http://nmh.gsnu.ac.kr)에 올려 누구나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책에 수록된 한자(漢字)를 모두 문자화하여 본문이 검색되도록 하는 작업은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서 모든 자료를 하진 못했습니다. 고서는 글자가 규격화되지 않아 한자를 하나하나 입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우리 지역 고문헌을 모두 디지털화하여 인터넷 서비스를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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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헌을 디지털화하는 남명학고문헌시스템. /박일호 기자

남명학고문헌시스템

Q. 남명학고문헌시스템은 뭔가요?

“남명학고문헌시스템은 행정안전부 국가DB 구축사업의 지원을 받아 경상대 도서관 문천각에 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 경상우도지역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데 기초자료가 되는 유학자 문집, 기록류, 고서 해제, 고문서, 책판 등을 디지털화해 DB로 구축한 것입니다. 경상대는 남명학고문헌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무려 10년이나 걸렸으며 6700만 자를 디지털화 했습니다.”

Q. 남명학고문헌시스템은 왜 필요한가요?

“고문헌은 수집 보존도 중요하지만 활용도 중요합니다. 활용을 잘하려면 DB가 필수적입니다. DB는 고문헌의 내용을 검색할 수 있도록 문자로 변형하는 것입니다. 고문헌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경상대고문헌을 방문해야 하고, 원본을 열람하면 훼손되기 쉽습니다. 또 열람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요. 그러나 고문헌이 디지털화되어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이용자는 연구실이나 안방에서 정보를 검색 열람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조선왕조실록에서 지진이 몇 번 일어났는지 찾으려면 그 많은 실록을 다 뒤져야 했지만, 지금은 ‘지진’이라고 검색하면 1초도 안 돼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또다시 그런 작업을 해야 합니다. 2011년에 끝난 뒤 추가로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경상대 고문헌 도서관에는 2011년 이후 많은 양의 자료가 축적됐습니다. 따라서 ‘시즌 2’처럼 추가 사업을 해야 합니다. 1차때 40억 원이 들어갔습니다. 예산을 확보하는 게 관건입니다. 경남도나 정부 차원에서 예산을 지원해야 합니다.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해 보관하는 작업은 학교에서도 가능합니다. 다만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도민과 국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경남도에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청년 일자리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습니다. 고문헌도서관은 경상대에서 운영하지만 경상대만의 것은 아닙니다. 경남도의 귀중한 문화자산입니다.”

Q. 현장을 많이 가볼 텐데 현재 실정은 어떻습니까?

“매우 급합니다. 지난 주말에 한 마을을 갔었습니다. 한때 80가구가 살던 마을인데, 지금은 20가구뿐이에요. 고문헌이 관리가 안 될뿐더러 그냥 버려진 경우도 많습니다. 소장자가 돌아가시면 일부는 자식이 가져간 경우도 많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말입니다. 앞으로 5~10년이 고비입니다. 그 안에 자료를 수집하지 않으면 대부분 소멸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시기적으로 매우 급합니다. 정리와 디지털은 차후의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자료를 수집하는 게 시급합니다. 자료는 지역을 떠나는 순간 종잇조각이 되고 맙니다. 빨리 수집해야 합니다. 고문헌 도서관이 만들어지기까지 15년이 걸렸습니다. 기증받을 자료는 아직도 많습니다. 서부 경남은 대학의 경남문화연구소에서 어느 정도 기초자료조사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동부 경남은 조사조차도 안 돼 있어요. 상황이 아주 심각합니다. 경남도의 역할이 아주 큽니다.”

Q. 고문헌도서관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가

“저는 산청에서 태어나 경상대 한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학년때 하권수 교수를 따라 중재 김황 선생이 살던 ‘내당서사’라는 곳에 갔었습니다. 그곳은 경남에서 가장 많은 고문헌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에요. 대청마루에 오래된 문서가 꼬챙이에 끼여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벽장 속에는 먼지가 쌓인 고서가 가득했습니다. 허 교수는 열람하고 싶은 고서를 찾아 차용증을 써주고 빌려와 복사하고 나서 돌려주는, 그런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어요. 당시 경상대 도서관에는 고서실이 없어 연구를 위해서는 호별방문을 해서 열람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3학년 때는 내당서사에서 논어 등을 배웠습니다. 그때 고서를 잘 관리하고 편하게 열람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군 제대 뒤 공군부대가 들어선 금산면과 남강댐 숭상으로 수몰되는 대평면 등지에서 고문헌 조사 연구보조원으로 일하면서 고문헌을 직접 만지며 조사 방법과 과정을 참관했습니다. 이후 몇 차례 조사 정리 작업을 하면서 언젠가는 고사전담 사서가 필요할 것이란 생각에 사서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잠시 대학행정실과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경상대 남명학관에서 고서를 담당할 서사로 일하겠느냐는 제안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승낙했습니다. 일용직이지만 상관없었어요. 2003년부터 고서 디지털 작업에 관심을 뒀습니다. 고문헌 원본은 고문한도서관이 소장하지만 내용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지역민에게 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국가 DB구축 사업을 시작했고 ‘남명학 관련 고문헌 디지털화 사업’의 계획서를 제출했지만 번번이 탈락했습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결국 남명학고문헌시스템을 전국 대학 도서관 최초로 구축했습니다. 이후 900만 건의 고문헌 열람이 이뤄졌어요. 이후 고문헌을 보존관리할 집을 짓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2018년 드디어 고문헌도서관이 개관했습니다. 고문헌도서관의 기증 고문헌은 7만 점을 넘어섰습니다. 신분도 학예연구사가 됐어요. 경상대가 고문헌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은 거점 국립대학이 지역에서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산학 협력도 중요하지만 민학 협력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동안 이상경 총장님을 비롯한 학교 측의 관심과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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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대 박물관 고문헌도서관 전경. /경상대학교

※ 경상대 고문헌도서관은

지난해 2월 개관한 경상대 박물관·고문헌도서관은 지하 1층, 지상 5층, 전체면적 9178㎡ 규모로 17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경상대 고문헌도서관은 옛 ‘문천각’을 새로 개편해 개관하는 것으로, 현재 7만여 점의 자료와 24종, 2490점의 문화재를 소장한 경남 유일의 고문헌 전문도서관이다. 고문헌도서관은 도서관을 기반으로 삼아 기록관의 보존기능과 박물관의 전시 및 사회교육기능을 결합한 ‘라키비움’ 개념을 도입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졌다. 수집된 고문헌 보존과 운영을 위해 보존처리실·방범방재실·공조설비실·디지털제작실과 고문헌 열람실·고문헌 전시실·체험실습실·세미나실 등을 두루 갖췄다. 고문헌전시실에서는 남명 조식 선생의 일대기를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한 ‘남명의 하루’ 등이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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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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