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녀 결혼 앞두고 하늘로
무덤 지키며 울던 정혼자
눈물 떨군 곳 매화나무 자라

옛날 중국의 어느 강마을이어요.

그 강둑에 갈대꽃이 저녁 햇살에 하얗게 피어나는 모습이 마치 연인이 흔드는 손길처럼 보였어요. 갈대꽃 속에서 총각과 처녀의 사랑 얘기가 갈대꽃처럼 피어나고 있어요. 해님이 남은 햇살 한 자락을 환하게 갈대꽃 속에 비추어 주었어요.

총각이 처녀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지며 처녀의 발그스레한 볼을 바라보고 있어요.

"자기야, 하늘에 개가 세 마리 있는데 무슨 개인지 아니?"

"하늘에 세 마리 개? 응- 알았다. 복슬이, 삽살이 또?"

"크으-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런 개는 우리 뒷집에 사는 개 이름이야. 하늘에 사는 개는 무지개, 안개 , 번개이지."

"에구, 무슨 그런 개를?"

두 사람은 마주보고 깔깔거리며 갈대꽃 숲에서 일어나 정답게 손을 잡고 강둑을 걸었어요. 손을 잡고 강둑을 걸으면서 총각이 처녀에게 넌지시 말했어요.

"자기야, 우리 이제 약혼한 사이이니 자주 만나서 살림 차릴 설계도 하자."

"그래도 아니지. 아직은 서로 자주 만나는 것은 일러."

두 사람이 도란거리며 강둑을 걸어가자, 하늘의 별들이 그들의 사랑만큼 초롱초롱 눈을 떴어요. 총각이 그가 즐겨 부르는 휘파람으로 흥겨운 노래를 부르자 처녀는 그 휘파람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듯 걸었어요.

다음날 아침입니다.

총각은 창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눈을 떴어요. 오늘은 약혼녀와 함께 좋은 비단 옷을 사러가기로 약속을 해서 다른 날보다 더욱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었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도련님, 도련님 ! 큰일났어요 !"

"어허, 아침부터 무슨 소란이냐?"

총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걱정이 되었어요. 처녀 집의 하인 덕쇠가 이렇게 아침 일찍 달려와 다급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았어요.

"도련님, 글쎄, 글쎄."

덕쇠는 말을 못하고 연신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음을 터뜨렸어요. 총각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루로 달려 나가 울고 있는 덕쇠의 등을 두드렸어요.

" 이 사람아, 무슨 일인가?"

그래도 덕쇠는 말을 하지 못하고 총각 앞에 퍼지고 앉아 울음을 더 크게 터뜨렸어요. 총각은 그런 덕쇠의 등을 천천히 다독이며 타이르듯 말했어요.

"이 사람아, 사연을 말하고 울기나 하게."

덕쇠는 그제서야 울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띄엄띄엄 말했어요.

"도련님, 글쎄 어제 밤에 우리 집 아가씨가……."

"뭐? 아가씨가? 아가씨가? 어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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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은 덕쇠에게 더 묻지도 않고 바람처럼 건너 마을 처녀 집으로 달려갔어요. 총각이 숨을 식식거리며 처녀 집 앞에까지 달려가니, 벌써 처녀 집에서는 울음바다가 되어있어요. 처녀 어머니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대문 밖에까지 흘러나왔어요.

"에구, 귀한 딸 하나 약혼까지 했는데.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밤사이에 저승길로 가다니."

총각은 처녀의 집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어요.

집으로 돌아온 총각은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방에서 시름시름 앓았어요. 그의 머릿속에 처녀의 그 환한 웃음이 꽃처럼 피어나다가 그 환상이 안개처럼 흔들리더니 처녀의 옷자락이 되어 자기를 끌고 어디론가 가는 것 같았어요. 총각은 그 옷자락을 부여잡고 흐느끼며 뒹굴었어요.

어느 날 오후, 총각이 방안에서 실신한 사람처럼 뒹굴다가 흐릿한 그의 눈빛에 처녀의 옷자락이 안개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았어요.

"아앗. 자기야."

총각은 잡힐듯 하는 그 옷자락을 따라 집을 나섰어요. 마을 앞 강둑을 지나 양지쪽 산으로 처녀의 옷자락이 흔들렸어요. 총각은 그런 처녀의 뒤로 숨을 몰아쉬며 따라갔어요.

그 옷자락이 양지쪽 한 곳에 있는 무덤 앞에 다다르자, 머뭇거리다 무덤 속으로 휘익 사라졌어요.

총각은 그제서야 정신이 바짝 들었어요.

"아, 내가 그녀의 무덤 앞에 왔구나."

총각은 무덤 앞에 꿇어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그의 눈에서는 빗방울처럼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내려 무덤 앞 잔디에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날부터 총각은 하루도 쉬지 않고 처녀의 무덤 앞에 꿇어앉아 미친 사람처럼 엉엉 울었어요. 그렇게 무작정 울고 나면 처녀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었어요.

청년이 처녀의 무덤 앞에 앉아 며칠을 그렇게 울다가, 신기한 일을 발견했어요. 총각의 눈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그곳에 여태까지 한번도 보지 못하던 나무 한 그루가 쑤욱 올라왔어요.

"아하, 하늘의 뜻이구나. 이 나무를 약혼녀 본 듯이 바라보며 가꾸라는 것이로구나. "

총각은 그 귀한 나무를 조심스럽게 집으로 옮겨 오기로 마음먹었어요. 평소 처녀를 대하듯 그 나무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와 햇살이 잘 드는 마당 한쪽에 정성을 다하여 심었어요.

그날부터 총각은 그 나무를 지성으로 가꾸었어요. 심한 바람이 불거나 소나기가 쏟아지면 나무가 걱정이 되어 그 곁을 떠나지 못했어요. 나무의 숨소리를 들을 만큼 지극정성으로 나무를 돌보았어요.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잠시 숨을 고르자 나무가 멀리 오는 봄 소리를 들을 즈음이었어요. 총각은 하루도 쉬지 않고 나무 곁에서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보살피다 깜짝 놀랐어요.

"아하, 꽃망울, 와, 이 추위에 이렇게 작은 꽃망울이? 그녀의 눈망울 같구나."

총각은 숨을 멎을 듯이 꽃망울에 입술을 대고 비비며 어쩔 줄을 몰랐어요. 그 꽃망울에서 처녀의 향긋한 내음이 살아나는 것을 느낀 총각은 꽃망울 앞에서 떠나갈 줄을 모르고 숨을 거칠게 쉬며 울먹이기 시작했어요.

해가 기울고 하늘에 별이 총총 돋아날 때까지 총각은 꽃망울 곁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 아름다운 사랑의 총각을 내려다보고 소곤거렸어요.

"아! 너무도 아름답고 열렬한 사랑이다. 하느님께 말씀 드려 총각을 한 마리 새가 되어 그 꽃나무를 돌보도록 하자."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별이 총총걸음으로 사라지자, 꽃나무에는 여태 보지 못하던 한 마리 새가 날아와 앉아서 울었어요. 총각이 평소 즐겨 부르던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어요.

"휘리리 휘릭."

강마을 강둑에서 들리던 휘파람 소리로 그새가 울었어요. 뒷날 사람들은 그 나무를 매화나무라고 부르고 그 새의 이름을 휘파람새라고 불렀어요.

누가, 왜 총각을 휘파람새로 다시 나게 했을까요?

매화나무의 꽃말은 고결, 충실, 인내, 맑은 마음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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