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립마산문학관 2층
백해 서인숙 작품·유품전
고인 수집 옛 물건들 눈길

▲ 서인숙 선생의 육필원고들./이서후 기자
이분 미적 감각이 남다르셨다. 문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미술 평론가라고 해야겠다. 고미술품을 표현하려고 문학이란 도구를 사용한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다.

지난 5일부터 마산문학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백해 서인숙(1931~2016) 선생의 작품 및 유품전 '조각보 건축, 시(詩)가 되다' 전시물을 보며 든 생각이다.

수필가이자 시인인 서인숙 선생은 경남 문단, 특히 마산 문단사에서 존재감이 묵직한 문인이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수필 '바다의 언어'로 등단, 이후 1979년 역시 <현대문학>에 시 '맷돌'을 발표하며 시인으로도 활동했다. 한국수필문학상, 경남문학상, 경남도문화상, 마산시문화상, 우봉문학상 등 여러 수상 경력과 한국여류수필가회, 마산교구가톨릭문인회, 마산문협, 경남펜 회장 등 이력만으로도 지역 문단에서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서 선생이 수집한 고미술품들. /이서후 기자
선생은 유달리 전통적인 물건에 애정이 깊었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당시 마산 창동에 있던 백자화랑 대표를 맡았는데, 아마 이 기간 유물과 고미술품의 매력에 푹 빠진 듯하다. 옛 물건들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한 결과로 나온 시들이 <조각보 건축>(동학사, 2010), <청동거울>(동학사, 2016)에 담겨 있다. 전시물 중에서 고미술 수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이유다.

"조각보를 깁는다/ 조선의 기와집 마을이 아닌 새로운 도시/ 높고 낮고, 삼각, 사각 색색으로/ 명주천, 모직천, 무명천이 이웃 되어 살고 있다" ('조각보 청춘' 중에서)

"저 시퍼런 갈증/ 영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립다/ 그리움은 강물로 흐느낀다/ 사랑이 죽음이 된 청동 꽃이여" ('청동거울' 중에서)

와당, 등잔, 청동거울, 자수, 반닫이, 조선사발, 토기, 보자기, 달항아리 같은 옛 물건은 물론 첨성대, 석불, 목어 같은 문화재를 소재로 한 시들이 이들 시집에 담겨 있다. 이번 마산문학관 전시에도 조각보, 백자, 민화, 청동거울 등 선생이 평소 수집한 옛 물건들이 많이 있다.

선생의 육필원고도 주목할 만한 전시물 중 하나다. 사인펜으로 쓴 굵고 시원시원한 글씨체를 통해 그의 반듯한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개중에 미발표 시도 보인다. 특히 "고해성사를 마치고 돌아보면/ 그 작은 고해방은/ 죄로 넘치고 있었다"로 시작되는 '허공'이라는 시는 가톨릭 문인이던 선생의 신앙적인 부분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 생애유품으로 전시된 것 중에는 2014년 1월부터 자녀에게 남기려고 차곡차곡 적어온 일종의 유언집도 있다. 또 지금 마산복음요양병원 자리에 있던 신성백화점 사가, 경남여성의 노래 악보도 있는데 모두 선생이 작사한 것이다.

선생이 돌아가신 지 3주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선생의 뜻을 잇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 ▼ 마산문학관에 전시된 1985년 서 선생 사진. /마산문학관
이번 전시회를 함께 준비한 서인숙 선생 추모 모임 회원들이 그렇다. 김명희 시인, 강지연 시인, 한후남 수필가 등이 참여한 이 모임은 한 달 동안 자료와 유품을 정리하면서 자신들이 선생에게 받은 소중한 선물을 내놓기도 했다.

"진정 백자 같은 시 한 편이라도 빚고 싶었다.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그러나 일그러지고 비뚤어져도 백자는 백자가 아닌가 스스로 위로해본다." (선생의 글 '유물의 미, 시학적 탐구' 중에서)

백자처럼 빛나던 서인숙 선생의 삶을 담은 이번 특별기획 전시는 4월 12일까지 이어진다. 문의 창원시립 마산문학관(055-225-7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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