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보단 용서'잘못 감싸안는 이웃간 정
마을 수도 무단 사용자 붙잡아
주민 투표 결과 선처하기로

지난달 23일이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감천마을 김종규(83) 씨는 무학산을 오르던 중 단단한 무엇인가가 밟히는 게 느껴졌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바닥을 조금 파헤치니 수도 파이프가 나왔다.

물도둑이었다. 상수도가 연결되지 않은 감천마을은 무학산 수원지에서 나오는 물을 이용하는데, 누군가 중간에서 파이프를 연결한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파이프를 따라 범인을 찾아 나섰다.

파이프를 따라 산을 내려가던 주민들은 200m 고지에서 파이프가 다시 나뉘는 것을 확인했다. 파이프는 움막으로 이어졌는데, 100m 너비 안에서 3군데나 연결돼 있었다. 움막 주위로는 사과나무가 가득했다.

주민들은 지번을 확인해 범인 3명을 찾아냈다. 수십 년 전 감천마을에서 살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사람들이었다. 논밭에 사과나무 등을 키우고 있었다.

중죄였다. 수도법 제20조(수도시설의 보호)는 '누구든지 일반수도사업자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는 일반수도의 기존 수도관으로부터 분기해 수도시설을 설치하거나, 일반수도의 수도시설을 변조하거나 손괴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 감천웃담상수조합 송홍화(44·오른쪽) 대표와 물도둑 ㄱ 씨가 합의서를 작성한 후 악수하고 있다. /감천웃담상수조합

마을에서 의견이 나뉘었다. 젊은 사람들은 경찰에 고소해야 한다고 했고, 어르신들은 용서하자고 했다. 이에 표결을 거쳐 정하기로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선처 의견이 많았다. 마을 주민 대다수는 어르신들이었다.

논밭에 물을 끌어 쓴 이는 지난 13일 마을 주민 6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이어 주민들과 약주를 함께 마시고 잘 마무리 지었다.

송홍화(44) 감천웃담상수조합(감사 이학해, 이사 임종일·이덕규·박규식) 대표는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감천마을 어르신들이 인정을 베풀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한 번만은 물도둑을 용서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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