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숱한 사연과 메시지도 나의 거울
이 봄 '깊이 들여다보는'시간이 되길

우리가 기도라 하면 '아뢰고 구하는 것'이 전부라 생각할지 몰라도 기도에는 '보고 듣는' 기도도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조금은 성숙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특히 이 봄에 우리가 해야 할 기도가 보고 듣는 기도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겨울이 따뜻해서 그런지 예년과 비교해 꽃들이 일찍 피었고, 얼마 전 꽃샘추위 때문에 조금은 움츠렸지만, 이내 눈이 부시게 활짝 피어났고 한창 꽃잎을 휘날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꽃들도 곧 다 떨어지겠지만, 한동안은 이 꽃들 때문에 전국 방방곡곡이 들썩거리게 될 텐데 제발 나들이에만 열중하지 마시고, 꽃이라도 제대로 보았으면 합니다.

꽃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꽃은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꽃으로 피어나기까지의 숱한 사연들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꽃에 대한 예의이고, 이러한 진지함이 바로 기도인데 꽃의 숨은 진실과 교감할 수 있는 자라야 자신도 보고, 하늘의 음성도 듣게 될 것입니다.

꽃을 보고도 꽃이 말하는 메시지를 듣지 못하거나, 꽃을 보고도 나 자신을 보지 못하는 자의 기도는 닫힌 기도입니다.

그러나 열린 기도는 꽃을 알고, 나를 알고 하늘을 아는 기도입니다. 추위와 미세먼지 속에서도 때를 따라 꽃을 피우는 꽃의 겸손을 아는 것과 함께 이미 봄이 완연한 데도 꽃이 없는 자기 자신을 깊이 바라보며 참회하는 것이 기도이고, 비록 때를 놓쳤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려는 맹세도 기도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열매를 위해 자신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꽃의 자리가 열매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꽃과 열매는 하나이고 철 따라 달라지는 몸짓 하나하나가 흉내 낼 수 없는 순종입니다. 그러나 꽃이 없으면 열매가 없다는 것이 자명함에도 꽃도 없이 열매만 고집하려는 것은 탐욕이고, 반역이고 죄악이며 이런 기도는 형제를 울릴 뿐 아니라 하나님마저도 슬프게 하는 나쁜 기도입니다.

기도가 살아야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꽃도 삽니다. 꽃과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이고 꽃이 나에게 거울이듯이 나도 꽃의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꽃이 꽃다우면 사람도 사람다워야 합니다.

지금 이 나라 어디에도 철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이번 봄에는 이 나라 어디서든지 꽃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들과 어떤 꽃이라도 자세하게 바라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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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과 듣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이듯이 기도와 사는 것도 하나입니다. 어저께 벚나무 밑에 있었는데 요란한 소리가 들려 무슨 소린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꿀벌이 나는 소리였습니다. 꽃과 벌을 뗄 수가 없듯이 꽃을 보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도 있을 텐데 이번 봄에는 우리 모두가 꽃을 보면서 철이 들고 기도의 내용이 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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