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배출 꼼꼼히 하는 이웃 아이
건강한 지구 물려줄 '훌륭한 인물'

폐휴지 꾸러미를 들고 아파트 1층 앞 쓰레기 수거장에 갔다. 그곳에서 여남은 살 되어 보이는 이웃집 사내아이가 웬 종이 상자를 늘어놓고선 씨름하고 있는 걸 보게 됐다.

"오, 쓰레기 버리러 나왔구나." "아뇨, 재활용품을 가려내는 중이에요." 쓰레기 분리수거장에는 페트병, 캔, 유리병,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종이류 등 재질별로 수거 용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아이는 곰바지런하게 하던 일을 계속했다. 들고나온 폐기물 상자 속에는 스티로폼 포장 용기와 페트병, 종이팩이 가득했다. 어린 녀석이라 영 마뜩잖아 보였는데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폐기물 겉에 붙은 상표와 비닐 등 이물질을 일일이 벗겨내고는 재질별로 모아서 배출하는 것이었다. 종이 상자와 우유팩은 내용물을 말끔히 비우더니 차곡차곡 접고, 발로 자근자근 밟아 부피를 줄이는 요령을 보아하니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듯했다. 다부지게 갈무리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대견스럽던지 담쏙 안아 주고 싶었다.

내가 가지고 나간 건 신문지와 각종 광고 잡지 등 폐휴지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그저 모두 같은 종이류이겠거니 생각해서 한데 묶은 채로 폐지 더미로 휙 던져버리고 돌아서려는데, 아이의 따끔한 질책이 귓전을 때렸다.

"광고 전단과 영수증 같은 건 재활용품이 아녜요. 따로 버려야 해욧!" 녀석의 말투가 짧고, 건조했다. 일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음을 감지했다. 계면쩍었다. 나를 가만히 응시하는 아이의 서늘한 눈빛이 묘한 죄책감마저 주었다.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비닐로 코팅된 종이와 약품 처리된 영수증 따위는 재활용할 수 없다는 걸 깜박했다. 아니, 자원 재활용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부족했던 탓에 저지른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와 같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 폐기가 지속하는 한 얼마 안 가 주요 천연자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한다. 더욱이 에너지의 97%, 광물자원의 90%를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원 재활용이 매우 긴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별생각 없이 태우거나 묻어버리는 쓰레기의 70%가 재활용품이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사안의 심각성을 외면한 꼴이 되었으니 얼른 잘못을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세대는 어른의 말과 행동 속에서 모범을 찾는다는 말이 언뜻 떠올랐다. "아, 그렇군! 내가 실수를 했구나…." 코팅된 광고지와 영수증 등을 일반 쓰레기용 봉투에 넣어 따로 배출하자 그제야 아이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띠었다. 그 모습이 하도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덕담을 덧붙였다. 아이에게 존중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거였다.

"넌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제가요?" "응! 세상을 바꾼 위대한 인물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힘이 세거나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 아니야. 너처럼 바르게 행동하고, 항상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이야." 아이는 내 말에 공감한다는 듯 또랑또랑한 두 눈빛이 샛별처럼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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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자원 재활용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작은 실천이야말로, 건강한 지구를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라는 걸 이 소년으로 하여금 새삼 깨닫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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