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낙태 금지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4월 11일은 길이 기억할 만한 날이다. 여성 인권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낙태에 관용적이고 그 반대 국가일수록 낙태를 엄격히 규제하는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낙태 권리에 관한 한 인권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결정은 군복무자 공무원 가산점 폐지, 여성가족부 설립, 호주제 철폐, 성매매 처벌에 이어 여성 인권 역사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여성 인권의 진전이 이번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직접적으로는 '미투운동'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낙태에 허용적인 나라라도 각기 차이가 있다. 낙태 규제 철폐 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난 프랑스와 독일은 임신 14주까지 낙태가 허용되며, 이탈리아는 90일, 스웨덴은 18주까지다. 네덜란드의 경우 제한이 없으며, 북한과 중국은 낙태를 규제하는 법 자체가 없다. 중국은 성별에 따른 선택적 낙태는 금지되어 있다. 헌재가 제시한 낙태 허용 기간은 임신 22주이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 3명의 재판관은 소수의견으로 헌법불합치가 아닌 단순위헌 의견을 냈다. 헌재의 다수 재판관이 낙태 규제가 전면적으로 풀릴 것을 두려워하여 단순위헌 결정을 하지 않은 것은, 여성의 낙태권을 제한 없이 인정하는 것이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을 고려하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법률이 제정될 2020년까지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될 여성들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하루빨리 법률이 도입되어야 이런 폐단을 줄일 수 있다.

종교단체의 반발과 달리 헌재의 결정은 태아의 생명을 무시해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임신을 인위적으로 중단하는 것보다는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는 일이 더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오히려 이번 결정을 계기로 그 중요성이 더 부각되었다. 성평등에 기초한 성교육, 피임기구의 보급, 사후피임약의 도입 등이 확대되고, 여성이 피임과 임신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 낙태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여성 인권의 강화는 무분별한 낙태가 아니라 오히려 낙태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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