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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클래식이야기]번지점프를 하다(2001)

쇼스타코비치 대표곡 사용, 왈츠로 함께한 추억 소환

2019년 04월 15일(월)
심광도 시민기자 webmaster@idomin.com

2005년 2월, 당시 25세의 꽃다운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매력적이었으며 눈빛은 깊고도 슬펐었다. 배우 '이은주',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의 여주인공 '태희'로 분한 그녀는 이렇게 얘기했었다.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아마도 그렇게 믿었었나 보다. 무엇이 그리 괴로웠을까? 그녀는 스스로를 생의 절벽 아래로 밀어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 우연히 우산 속으로 뛰어든 태희의 모습에 인우는 첫눈에 반한다. /스틸컷

◇운명적 사랑 = 1983년, 우연히 자신의 우산 속으로 뛰어든 태희의 모습에 인우는 첫눈에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그녀를 그리워하던 중 우연히 대학캠퍼스에서 그녀를 발견하고는 수줍게 그녀에게 접근하게 되고 결국 서로는 사랑하게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다. 서서히 마음을 확인해 가는 두 사람, 이젠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사실 태희에게 있어서도 인우는 운명 같은 사람이다. 그의 우산으로 뛰어든 날,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의 가방 속에는 우산이 있었으나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심장이 그녀를 움직인 것이다. 지금까지 만났던 남자에게 주려면 아까운 생각이 들던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소중한 라이터, 진정 사랑하는 이가 나타나면 주려던 것을 주며 너에겐 조금도 아깝지 않다던 태희의 고백은 그녀가 인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이 흐르고 입대를 기다리는 인우, 비가 내리는 길에서의 다툼은 오히려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고 그날 그렇게 풋풋하게 하나가 된 그들.

하지만 이제 곧 인우의 입대 날이 다가오고 '당연히 같이 가야지, 근데 혹시 좀 늦더라도 꼭 기다려야 해'라고 약속했던 태희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꼭 기다려야 한다는 그녀의 당부를 잊지 않았기에 쉽게 기차에 오르지 못하는 인우의 모습을 뒤로하고 그렇게 이제 17년이 지나 2000년이 된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 인우, 그는 새롭게 담임을 맡게 된 학생들에게 인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생들이 믿고 따르는 멋진 선생님이 된 그의 반에는 현빈이라는 남학생이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자신의 제자인 현빈에게서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태희를 느끼는 것이다. 결코 옛사랑과 닮은 것이라고는 없는 현빈, 반의 농구대표로 뽑힐 만큼 건장한 남자 학생에게서 말이다.

현빈의 휴대폰에서 울리는 음악은 태희가 해변에서 읊조리던 것이며 그녀가 그랬듯 물건을 들 때면 현빈은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현빈이 말하는 말 하나 하나가 옛날 태희가 자신에게 했던 것이어서 인우의 넋을 놓게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인우의 심장이 현빈에게서 태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 알고보니 태희는 가방에 우산이 있었지만 일부러 창밖의 인우를 향한 것이다. /스틸컷

◇악착같이 = 이제 인우의 눈과 귀는 현빈에게 향하게 되고 그런 그의 행동으로 인해 결국 학교에도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거리를 두려 노력해 보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을 느끼는 인우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추문에 힘겨운 현빈은 인우에게 저에게 왜 이러시냐고 쏘아붙이지만 그런 현빈에게 인우는 '나는 너를 이렇게 느끼는데 왜 날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느냐'며 흐느낀다. 인우는 '난 다시 태어나도 너만 찾아 다닐 거야, 악착같이 찾아서 다시 사랑할 거야'라고 그녀에게 고백했더랬다. 이제 죽음에서 환생한 태희가 악착같이 사랑을 찾아온 것일까?

반전은 여기에 있다. 사실은 현빈도 인우에게서 전생의 사랑을 느끼는 심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학교에서마저 쫓겨 나 모든 것을 잃은 듯 기차역 벤치에 멍하니 앉은 인우, 17년 전 사랑하는 여인을 애태우며 기다리던 그곳, 마침내 현빈은 옛날 태희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그 횡단보도를 건너 그를 찾아 온다. '미안해, 많이 늦었지?' '아니 지금이라도 와줘서 고마워'. 늦더라도 꼭 기다리라던 약속은 이제야 지켜지고 이제 그들은 함께 뉴질랜드로 향한다. 그곳엔 태희가 해 보고 싶다던 번지점프가 있다. 그들은 다음 생에도 악착같이 서로를 찾아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게 너야, 너인지 알 수 있어, 너 아니면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으니깐'. 이제 나란히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 불안한 듯한 인우의 표정과 달리 현빈의 얼굴엔 평온한 미소가 있다. 그런 현빈, 아니 태희의 얼굴을 본 인우의 얼굴에도 평온이 찾아오고 그들은 함께 번지점프를 한다.

◇왈츠 = 무심코 들어선 교실, 현빈의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울림, 그 선율은 인우로 하여금 운명적 사랑인 태희와 함께했던 바닷가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붉은 석양 아래서 함께, 어설프지만 행복한 춤을 추던 아름다운 장면에서 흐르던 선율, 바로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이다. 이렇게 간단히 제목을 이야기하더라도 이 곡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선율이지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2번' 중 6번째 곡 '왈츠2'이다. 왈츠 2이니 왈츠 1이 있을 것이고 모음곡 2번이니 1번이 있을 것이다. 2개의 모음곡에 총 3개의 왈츠가 있으니 그냥 왈츠라고 하면 헛갈릴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 사용된 왈츠2가 너무도 유명하여 그냥 왈츠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이 곡을 가리킨다 하겠다.

20세기 초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클래식과 접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 서유럽의 작곡가들은 유럽을 넘어 서반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다양한 지역의 음악과 형식적 결합을 시도하며 음악적 다양성을 추구하였는데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음악장르는 미국의 재즈였다. 재즈라는 장르는 비단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고 1차 세계대전 후의 소비에트연방에도 그 장르적 특성이 유입되어 적극적으로 수용되기에 이른다.

당시 미국에서는 재즈 오케스트라 형식이 유행하였고 그 중심에는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악단 등이 있었다.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1930년대에 접어 들며 이전에 추구했던 형식을 벗어나 영화음악 등을 작곡하며 대중에게 다가갔으며 실험적 장르인 재즈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이에 그는 1934년 세 개의 곡으로 구성된 '재즈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1번'을 발표하게 되고 이어 그 2번을 작곡하며 재즈에 대한 관심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곡이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로스트로포비치'에 의해 서방세계에 알려진 것은 1988년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 왈츠2가 쓰이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국내에서도 영화 <텔 미 썸씽>, <번지점프를 하다> 등에 사용됨으로써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는 곡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어 1999년 '재즈모음곡 2번'의 원본이 발견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왈츠2가 포함된 8개의 오케스트라 편성의 곡이 이미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후라 처음 소개되었을 때의 제목으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다.

▲ 휴대폰에서 울리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에 헤어진 태희를 떠올리는 인우. /스틸컷

◇인연 =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과의 첫 대면, 그 속엔 현빈, 아니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을 기어코 찾아온 태희가 있다. 이때 인우는 학생들에게 인연에 대하여 이야기했었다. 이 넓은 우주에서 엄청난 확률로 우리들은 만난 거라고. 옷깃만 스쳐도 억만 겁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운명 같은 인연인 것이다. 비록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도 소중한 인연들이 곁에 있다. 가족, 친구들…… 그 기나긴 세월을 함께했다면 결코 소홀히 대하지 말아야 할 일이지 않은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두 연인처럼 다음 생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나 인연을 이어갈 이들이라면 말이다.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나야지 하는 태희의 말에 나도 여자로 태어나면 어쩌지라고 걱정하는 인우에게 태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럼 또 사랑해야지'. 그들은 그렇게 다음 생으로 번지점프를 한다. 다시 만나 사랑할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학생들에게 인연을 이야기하던 인우의 말이 맞았다.

'인연이라는게 좀…징글징글하지?'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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