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총장 선출 방법을 두고 학생과 교수의 토론회가 있었다. 교수평의회에서는 '인제대형 직선제'라는 안을 내어놓았다. '인제대형 직선제'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구성된 선거인단의 투표와 결선투표가 주요 골자였다. 학생들은 충분히 동의할 수 있었다.

사실 총장을 대학의 구성원들이 직접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과 요구는 어제오늘 제기된 것이 아니다. 대학의 자주, 자율, 자치에 대한 요구는 수십 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러나 토론회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듯 학원 민주주의의 당위나 규범만큼이나 구성단위마다 참여와 의사가 얼마만큼 반영되는지, 그렇게 합의한 모형을 당사자들이 얼마만큼 수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실제 합의된 제도와 모형 속의 수치를 통해 당위와 규범이 누구에게, 얼마만큼 적용되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당위와 규범이라도 적용되는 대상을 한정하거나 제한적인 참여를 보장한다면 학교의 문턱 너머에서 요구되고 있는 더 많은, 더 깊은 민주주의와 괴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른 학교의 학생들이 경험하고 있듯 총장직선제라는 이름 아래에 사실상 교수직선제와 다름 아닌 할당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수에게만 시민권이 허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직선제와 참여에 대한 학생의 높은 요구를 어떻게 수치로 담보해야 할지가 우리의 숙제가 되었다.

학교는 학문의 요람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학교 운영과 학문·연구를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은 반쪽짜리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는 보편성의 담론에서 논의되어야지 '한국식 민주주의'와 같이 특수성의 담론에서는 민주주의가 가지는 당위와 규범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석훈 박사의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는 책이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다른 학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사 문 앞에서만 멈추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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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캠퍼스의 정문과 강의실 문턱에서도 민주주의가 멈추는 건 아닌가. 아, 효율성·경제성·CEO형 총장을 요구하는 대학도 이제 회사라고 봐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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