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봉늪 제방공사 현장을 가다
환경단체 재검토 요구에 주민, 상습침수 고통호소 "숙원사업 공사 계속해야"
이번주 민관실무협 예정 "전체적인 늪 정비 기회"

"환경단체고 교수고 대안을 내놓으라니까 이 마을에서 살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턱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거라. 대봉늪 환경도 살려야 하지만 사람이 먼저 죽게 생겼소."

16일 오후 창녕군 장마면 대봉마을·대야마을 주민들은 화가 난 표정이 역력했다. 당장 올여름 비가 오면 마을로 물이 넘쳐 흐를 것이 뻔하기에 대봉늪 제방 축조 공사가 삐걱거리니 걱정이 태산이다. 대봉늪 제방을 쌓아야 하는 건 주민 생존권이 걸린 숙원 사업이다.

▲ 창녕군 장마면 대야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 대봉늪 공사현장. 현장소장과 마을 주민, 취재진이 16일 오후 현장을 방문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주민들은 한결같이 "타당성 조사다 뭐다 절차 밟는 데 12년 이상 걸렸다. 이제 와서 (환경단체가) 무작위로 대충 사업을 시행했다고 하니 황당하다"면서 "지난해 가을에도 마을회관이었던 자리까지 침수됐다"고 털어놨다.

이날 공사 현장에서는 제방을 쌓기에 앞서 배수펌프장을 만들고 있었다. 오래전 주민들이 홍수를 예방하고자 쌓아놨던 제방(1.5m)을 8m 높이(해발 15m)로 올리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기존 제방 앞쪽 120m까지가 대봉저수지이고, 이 제방의 뒤쪽 300m가량에 왕버들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다. 대봉늪 전체 규모 78만 4000㎡ 중 공사를 진행하는 구역은 2만 8000㎡ 정도다.

환경단체는 대봉늪을 가로질러 제방을 쌓는다고 지적했지만, 주민들이 수십 년 전 쌓은 제방 자체가 이미 늪을 가로질러 놓여 있었고 현재 그 제방 위에 높이를 올리는 상황이다. 군이 "환경운동연합이 주장하는 대봉늪 왕버들 군락지는 90% 이상 보존되며 기존 제방을 경계로 축조하는 공사"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어쨌든 우기에 집중호우가 100㎜가량만 쏟아져도 침수돼 버리는 마을 주민들로서는 환경보다 생존이 앞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반면 원시림 같은 대봉늪 왕버들 군락지는 지속 가능 보존 지역으로 지켜나가야 한다. 창녕군과 낙동강유역환경청, 경남환경운동연합, 경남도가 대타협을 통해 환경과 주민을 함께 살릴 묘안을 짜내야 할 시점이다.

▲ 현장사무소에서 현장소장과 담당공무원, 마을 주민들이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주민들 "생존 걸린 숙원사업"-환경단체 "늪 보존해야" = '대야 자연재해 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대봉늪 제방 축조 공사)'은 2018년 6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총사업비 62억 8200만 원을 들여 시행하는 행정안전부의 재해 예방사업이다. 국비 50%, 도비 35%, 군비 15%로 책정돼 있다. 도급사는 양산에 있는 ㈜한서종합건설이다.

경남환경운동연합이 주장하는 이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봉늪을 가로질러 제방 축조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대봉늪에 서식하는 법정보호종이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또 이 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부실하게 한 정황이 드러났으니 다시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과 창녕군은 "적법한 절차를 거친 주민 숙원사업이므로 중단이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군은 "대봉습지는 습지보전법에 따라 습지보전구역으로 지정된 곳이 아니다. 대봉습지는 화왕산 옥천계곡에서 장가, 대봉으로 흐르는 지방하천으로 농업용수와 배수시설 목적으로 관리하는 계성천"이라고 밝혔다. 또 "창녕군 장마면 대봉리 일원에 추진 중인 대야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공사는 매년 우기에 지역 주민 삶의 터전인 논밭 침수와 생존 위험을 겪는 대봉·대야마을 72가구 123명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군은 또한 사업 시행 전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주민·환경단체·창녕군·낙동강유역환경청 1차 간담회 때 박재현 인제대 교수가 '마을 도로 숭상안'을 제시했는데 주민이 반발해 환경단체에 다시 대안을 제안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뚜렷한 세부안을 내놓지 않았고 2월 2차 간담회에는 환경단체가 불참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경남환경운동연합 측은 "환경도 중요하지만 주민 생활환경도 중요하기에 군에서 대안을 검토해달라고 했다. 현재 우리가 내놓은 마을로 돌아서 쌓는 대안도 주민이 불편해하면 철회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부실 문제는 계속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경남환경운동연합이 주장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부실과 관련해 환경부는 "대봉늪 제방 축조공사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법정보호종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문헌 조사 결과 15종의 법정보호종 분포가 확인됨에 따라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를 부실하게 작성했는지를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대봉늪 주변 농경지. /창녕군

▲ 대봉늪 주변 농경지 지난해 침수피해 상황. /창녕군
◇실무협의회, 환경·주민 함께 살릴 대타협 이뤄내야 = 신진수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지난 15일 오후 한정우 창녕군수를 만나 대봉늪 제방 축조 공사도 진행하고, 대봉늪도 보존할 방안을 강구해보자고 논의했다. 한 군수는 이번 주 내로 실무협의회를 개최해 대안을 의논하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신 청장은 "오는 금요일쯤 주민 대표, 창녕군, 낙동강유역환경청, 경남도, 마창진환경연합, 전문가 2명 등과 실무협의회를 해서 주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면서 환경 부분도 고민해 구체적인 안이 나왔으면 한다"면서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과 환경단체 간 만남의 장을 마련해 불신을 해소하고 서로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왕버들 군락지인 대봉늪을 살릴 방법을 찾고, 주민들 피해도 막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봉늪 왕버들 군락지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어서 수년간 손도 대지 못해 오물이 방치돼 있다. 계속 손을 안 대면 나무가 하천 전체를 덮어서 또 다른 곳으로 물이 흘러넘칠 수 있다. 대봉늪을 전체적으로 정비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는 "이번에 환경단체, 낙동강유역환경청과 협의만 잘 되면 지속가능 보존을 위한 대봉늪 정비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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