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비친 자신에게 반한 청년
목동 매력에 빠진 요정들 한명이 사랑 독차지 원해

넓은 초원에 양떼들이 놀고, 한가운데에는 푸른 호수가 잔잔하게 펼쳐진 곳이지요. 그 경치가 정갈한 한 폭의 수채화를 펼쳐 놓은 것처럼 아름다웠어요.

호수에는 요정(님프)들이 호숫가 조약돌 언덕에 앉아 수다를 꽃처럼 야단스럽게 피워 올렸어요.

"나르시스, 목동 말이야. 정말 멋진 청년이야."

"아주 미남이야. 그 하얀 우윳빛 피부, 오뚝한 콧날, 훤칠한 키, 정말."

"나르시스는 양떼를 모는 일 이외에는 상관하지 않는대."

"우리가 간혹 그에게 미소를 보내도 본체도 하지 않아."

그때, 그 요정들 중에서 나르시스를 특별하게 짝사랑하고 있는 프레 요정이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가 시샘이 가득 묻은 말로 톡 쏘듯이 말했어요.

"나르시스가 나와는 눈빛을 주고받아 언젠가는 나는 그를 내 친구로 만들 거야."

프레 요정의 말에 다른 요정들이 햇살처럼 화안하게 웃으며 부러운 척했지만 그들도 나르시스에 대한 사랑의 욕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은 프레 요정을 비아냥거렸어요.

"치이, 착각은 자유라고 하지. 프레, 나르시스가 너에게만 눈빛을 주는 것 같지만 우리들 중에도 그의 눈빛을 받은 친구가 있어."

그 요정들의 마음속에는 나름대로 나르시스에 대한 자기만의 사랑을 더 깊게 키우고 싶어 했어요. 나르시스를 짝사랑하고 있는 프레 요정은 호숫가 바위 위에 턱을 괴고 인형처럼 오뚝하게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다른 요정들에게 나르시스의 사랑을 빼앗길까봐 무척 걱정이 되었지요. 어떻게 하면 나르시스를 자기만의 친구로 삼을까 궁리를 했어요.

"나르시스가 양떼를 몰고 이 호숫가를 지날 적에도 나를 본 체하지 않고 철저하게 무시하는 저 오만을 내가 꼭 꺾을 거야."

그녀는 호숫가에 있는 조용한 숲속을 걸으며 자신과 나르시스를 생각했어요. 자신이 나르시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어요. 다른 요정이 나르시스의 사랑을 빼앗아 나르시스와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프레 요정에게 가슴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아픔이었어요.

"안 돼, 절대로 안 돼. 나르시스를 다른 요정에게 빼앗겨서는 안 돼. 차라리! 차라리! 차라리!"

프레 요정은 절대로 나르시스를 다른 요정에게 빼앗기지 않는 방법에 골몰했어요. 그녀는 호숫가를 거닐며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최후 수단을 마음먹었어요. 호숫가에 있는 조용한 신전을 찾아갔지요.

▲ 봄비가 내린 어느 날 교정에 핀 수선화. /경남도민일보 DB

◇저주의 소원

그녀는 신전에 들어가자, 신전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다음, 복수의 신을 향하여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어요.

"복수의 신이여, 나르시스가 처음 보는 사람과 사랑에 폭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해 주세요. 그러고는 그 사랑이 깨지게 해 주세요."

신전 안은 조용했어요. 프레 요정의 이상한 기도를 들은 '복수의 신'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묘한 웃음을 머금고 기도의 답을 했어요.

"프레야, '복수의 소원'을 비는 이가 많지만 너처럼 어려운 부탁은 처음이구나. 요정의 기도인데 들어주어야지. '처음 보는 사람, 그 사랑이 깨어지게' 알았다."

복수의 여신은 그 말의 뜻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요정의 기도라 어떻게 거부할 수도 없었어요.

오늘도 나르시스는 양떼를 몰고 요정들의 수다가 한창인 호숫가를 지나가게 되었어요.

"와! 미남이다. 저 푸른 눈빛을 봐."

"저 큰 가슴을 봐." "나르시스! 나르시스! 여길 봐요."

호숫가의 요정들이 미소를 지으며 나르시스에게 두 손을 들어 하트를 날리고,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등 여러 가지 사랑의 표시를 했어요. 그러나 나르시스는 그런 요정들에게 눈 하나 돌리지 않고 그가 항상 가는 '맑은호수' 쪽으로 양떼를 몰고 가버렸어요.

나르시스는 그런 요정들의 소리를 못들은 체하고, 오직 양떼를 모는 일에만 열중하고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어요.

"이 세상에서 아름다움이란 것이 참 찾기 어려워. 사람의 얼굴도 그래. 저렇게 수다로 시끄러운 것보다 조용한 구름, 조용한 호수, 말없는 미소 그런 것들이 더 좋은 데 말이야."

나르시스는 그런 생각만 하고 요정들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어요. 그럴수록 요정들은 더 안달이 났어요. 그 호숫가의 요정들 중에서 가장 화가 난 요정은 프레 요정이었어요.

프레 요정은 나르시스가 자기에게만은 눈길을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큰 실망을 했어요. 그녀는 그녀만이 아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사랑의 복수'를 생각했어요.

나르시스는 '맑은호숫가'에 오자 양떼를 자유롭게 풀어 놓았어요. 그는 목이 말라 호숫가에 가서 두 손으로 물을 떠서 벌컥벌컥 마셨어요.

나르시스가 잔잔한 맑은 물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내려다보며 자기와 가까이 할 수 있는 정말로 아름다운 친구를 생각했어요.

◇자신과 사랑에 빠진 그

맑은 호수에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고여 있고, 하얀 구름이 양떼처럼 동동 떠가고, 밝은 햇살이 싱글거리며 물빛을 곱게 비추었어요. 그런 호수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나르시스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지며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아. 연못 속에서 나를 보고 방긋이 웃는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가 처음 보는 가장 사랑스러운 얼굴이구나. 아! 뽀얀 피부, 짙은 눈썹 , 방긋이 웃는 저 얼굴. 내가 웃으면 방긋이 따라 웃는 저 얼굴. 아, 내가 '처음으로 사랑'하고 싶은 얼굴이다."

나르시스는 호수에 비친 청년의 얼굴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그 호숫가를 떠날 수가 없었어요. 나르시스는 그 얼굴이 자기의 얼굴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지요. 나르시스는 아직 거울이란 것을 통하여 자신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지요. 나르시스는 양떼들이 길을 잃고 넓은 풀밭으로 이리저리 흩어져도 호수 속에 비치는 그 청년을 사랑하고 함께 놀고 싶었어요.

나르시스가 호수 속의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향해 손을 흔들며 함께 놀자 했어요. 그러자 호수 속에 비치는 그 소년도 나르시스에게 손을 흔들며 호수 속으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나르시스는 망설임도 없이 호수 속으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갔어요.

그가 '뽀르륵' 물거품 하나를 남기고 호수 속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갔어요. 호수가 문을 닫는 것 같았어요.

프레 요정은 나르시스가 호수 속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간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요정들과 수다가 한창이었어요.

그 다음 해였어요.

나르시스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 그 연못가에 예쁜 꽃이 피어났어요. 물속에다 자기의 얼굴을 비추라고 물가에 꽃이 피었어요. 그 꽃이 바로 수선화이지요,

나르시스는 누구를 사랑했나요?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사랑'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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