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직후, 지도에도 없는 깊숙한 산골 마을에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과 그의 아들 영남(구승현)이 불쑥 나타난다.

시끄러운 바깥세상과 달리 이 마을은 촌장(이성민)의 강력한 지도 아래 평화롭고 모든 게 풍족하다.

골칫거리는 단 하나. 인육 맛을 아는 쥐떼의 습격이다.

"귀때기 가진 것들은 모두 내 피리 소리에 반응한다"고 자신하는 우룡은 쥐떼를 쫓아내 주기로 하고 그 대가로 돼지 한 마리 값을 받기로 한다.

우룡은 쥐들을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지 않는 촌장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밝혀지는 마을의 비밀.

우룡은 아들의 기침병을 고칠 돈을 받고 마을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독일의 구전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기반으로 한국전쟁을 치른 시대적 상황과 미신, 토속신앙을 접목한 <손님>(감독 김광태).

영화 후반부터 절정에 이르는 그로테스크한 화면이 주는 강렬함 때문에 <손님>은 분명 판타지 호러의 포장지를 입고 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내면 마주하게 되는 섬뜩한 풍자와 시대적 광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살려고 지은 죄는 죄가 아니여."

궤변으로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고 외부인이 알려온 바깥세상의 진실을 숨기기 급급한 촌장.

우룡에게 친절을 베풀던 몇몇 이웃은 물론 마을 주민 모두 촌장의 선동에 야멸치게 등을 돌리는 현실은 빨갱이를 마치 만병통치의 수단으로 휘두르는 우리 사회를 관통한다.

정보를 차단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의 억울함을 모른척하고, 집단의 이기적 광기에 무고한 개인이 희생되던, 즉 약속을 어긴 마을사람에게 무당이 저주했던 "낮인데 해가 없고 밤인데 달이 없는 날"에 이 마을은 소멸한다.

적의와 경계로 가득한 눈빛으로 이들 부자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의 시선 뒤에 숨은 사연을 알기까지 느슨하면서도 어수선한 전개에 이어 이를 보상하듯 몰아치는 후반의 상황이 서로 삐걱대기는 하지만 이성민, 류승룡, 천우희 등의 연기는 스토리가 성기는 순간 정확히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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