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 구조가 낳은 불안한 동거…고용 불안·취업난, 홀로서기 못하는 '2030'부모 기대 사는 캥거루로

여기 복닥복닥 3대가 모여 사는 가족이 있다.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할아버지 곁으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손주가 달려온다. 참으로 단란해 보이는 가정의 일상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대기업 협력회사 소장으로 30년을 일한 50대 가장은 2년 후로 다가온 정년퇴직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다.

은퇴 후 전원에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겠다고 다짐했건만 여전히 그에겐 숙제처럼 자식 부양이 남아 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25살에 세 아이의 아빠가 된 아들은 독립할 생각이 전혀 없다.

월 150만 원의 수입으로는 독립해서 도저히 현재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들은 "받을 만큼 받고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입장이지만 평생을 다닌 직장 역시 불황 여파로 정년마저 불투명한 상황에 놓인 50대 가장은 마음이 복잡하다.

〈SBS 스페셜 - 우리 집에 신 캥거루가 산다〉 방송 화면.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찌감치 독립한 간호사 ㄱ씨는 계약직으로 전국 각지의 병원에서 일했다. 메르스 사태가 터졌던 지난해에도 두려움과 싸워가며 일했건만 또다시 그녀는 '해고'도 아닌 '계약 해지'를 통고받았다.

버티고, 싸워봤건만 그녀는 결국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표한 2012년 우리나라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로 나타났다. 미국(47.8%) 다음으로 높은데 증가폭으로 따지면 미국마저 제친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성과가 대부분 상위 10% 소득층에 집중적으로 배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벌들만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서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취업난에 허덕이고, 취업이 된다 한들 비정규직에 내몰리고 있다.

재벌들이 아무리 엄청난 돈을 번다고 해도 고용인원을 늘린다거나 노동자들에 대한 혜택이 강화되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지난 4일 방영된 (밤 11시)는 '자녀 부양,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라는 부제와 함께 다양한 가정을 비췄다. 캥거루족은 학교를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용어다.

다큐멘터리는 서른을 훌쩍 넘긴 아들을 '아기'로 바라보며 끼니에서 벌이까지 뒷바라지하는 부모에서부터 '나중에 봉양할 테니 지금은 받을 수 있는 만큼 부모의 도움을 받겠다'며 손을 내미는 자식 때문에 노후에 대한 고민이 깊은 부모 등의 이야기를 다뤘다.

자식에 대한 헌신이 유별난 대한민국 특유의 정서와 맞물린 각각의 가정사로 가볍게 시작했지만 이내 '신 캥거루'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고용 불안으로 독립할 수 없는 젊은이들의 현실과 함께 이는 곧 부모 세대의 노후가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또 그나마 아직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모 세대 덕분에 한국 사회의 불안정한 구조가 버텨지는 기형적 현실을 건드린다.

이는 젊은 시절 남편은 중동에서, 아내는 식당에서 일을 하며 자식 공부와 사업을 뒷바라지했던 칠순을 넘긴 노부부의 현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파트까지 팔아 아들의 사업을 도왔지만 외환위기 당시 아들은 사업에 실패했다. 이후 고학력의 아들은 재기하지 못했고, 노부부는 곰팡이가 가득한 지하 셋방에서 막막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구조, 그나마도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불안한 고용형태. 이 때문에 다시 등장한 '신 캥거루족'에게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고 비난하며 개인의 선택 혹은 노력으로 해결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대리운전을 병행해 적은 수입을 보완하려는 세 아이를 둔 가장과 매 끼니를 챙기느라 일상을 잃어버린 부모를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아들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지만 뒷맛이 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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